야당의원: “장관, 교과서 국정화 어떻게 하겠다는 보고가 왜
없느냐?”
교육부장관: “......”
야당의원: “차관이 학자일 때는 국정교과서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교육부차관: “일부에서 국정 전환하자는 주장 있기 때문에… 이
문제 검토 중…”
야당의원: “국사편찬위원장은 유신 때도 국정화에 반대하지
않았느냐?”
국편위원장: “그 당시로서는
그랬지만…” |
국감장에서 벌어진 ‘말 바꾸기 쇼’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피감기관 대표로 나온 정부 측
3인의 말 바꾸기는 도를 넘었다. 불과 며칠 전 언론에 나와 공개적으로 했던 말까지 뒤집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추진’을 ‘검토’로 바꿔치기했다. “국정교과서 추진할 것인가?”라는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미리 말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장관 취임 직후부터 ‘국정화’를 입버릇처럼 외쳐온 그가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다. 지금
국정화에 대해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단다. 앞뒤가 영 안 맞는다.
지난 8월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황 장관은 “검·인정을 하다 보니 7가지 교과서로 가르치는데 이것이
혼란스럽다”며 “9월까지 (국정교과서 추진을) 매듭을 짓겠다”고 확언한 바 있다. 그런데 국회 국감장에서는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 추진 사실을
인정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춤으로써 야당이 적극 공세로 돌아서는 걸 일단 막아보자는 꼼수다. 박근혜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인데도 저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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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 국정화는 소수저자의 독단”이라며 반대 글
기고(1973)했던 김정배 국편위원장> |
학자 땐 ‘반대’, 감투 쓰더니 ‘찬성’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원래 국정교과서 반대론자였다. 1973년 박정희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자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 찾으려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소수 저자 만에 의한 (국정)교과서는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던
그가 고위공무원이 되더니 “현재는 독재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정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편다. 말을 바꾸기 위해 자기모순에
빠지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1993년 국사편찬위원 자격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유신 때 국사책을 국정교과서로
획일화해 역사인식의 경직성 또는 국수주의적 사고 등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며 “국사교과서는 (국정이 아닌) 검정으로 해줬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다시 국정제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김재춘 교육부차관도 딴 소리를 했다. 김 차관 역시 국정교과서 반대론자였다. 자신이 발표한
논문(2005,2009)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며 “국정제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통제 목적에서 유지되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랬던 사람이 이젠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 작업의 주역인 김정배 위원장과 김재춘 차관. 학자 땐 국정화 반대하다가, 박근혜 정권이
하사한 감투 하나씩 쓰더니 국정화 지지로 급선회한다.
그래봤자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다.
정부가 내세운 ‘국정화 당위성’은 엉터리
정부여당은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면서 몇 가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교과서 다양성에 의한 혼란 ▲현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 ▲교과서 단일화로 인한 수능 준비 수월 ▲사교육비 감소에도 영향 ▲균형 잡힌 역사교육은 국가의 책임 ▲많은 국민과 지식인들의 요구
등의 이유로 국정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저들의 주장이 맞는 건지 검증해볼 수 있는 자료가 나왔다. 현직 역사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가 그것이다.
‘국정화 사유(통일된 교과서 필요, 좌편향 교과서 수정 등)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가
98.6%에 달한 반면, ’동의한다‘는 1%에 그쳤다.
‘단일 교과서가 수능 준비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절반(49.7%)을 차지했고,
도움은커녕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45.9%에 달했다. ‘수월해 진다’고 답한 경우는 4.4%에 불과했다.
국정교과서와 사교육비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 ‘사교육비가 (대폭 혹은 소폭) 증가할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60%)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영향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경우(39.8%)가 많았으며 ‘사교육비가 감소할 것’이라는 답한
경우는 0.2%에 그쳤다.
98.6%가 반대, ‘빨간불’ 무시하려는 정부
이쯤이면 정부여당의 ‘국정화 당위성’ 주장은 엉터리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국정제를 왜
강행하려는 걸까? 대체 누가 밀어붙이기에 학자로서의 신념도 내팽개치는 걸까?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번 여론 조사결과에서 이에 대한 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국정화 추진은 누구의 의지가 가장 크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박근혜’라고 답한 경우가 69.1%로 압도적이었다. 다음으로 뉴라이트계열 학자(26.2%), 황우여 장관(2.2%)
등이었다. 뉴라이트도 박 대통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렇다면 국정화 추진은 ‘박 대통령에 의한 박 대통령을 위한 일’이라는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가 된다.
타당성과 현실성뿐 아니라 심지어는 명분과 국민여론 까지, 가리키는 건 그 어느 하나도 국정화에 대한 당위성과
거리가 멀다.
이런데도 정부는 여론의 ‘빨간불’을 무시하고 폭주할 기세다.
극소수의 이익과 목적을 위한 일을 다수에게 강요하는 것, 이게
파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