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나치·일제·유신의 공통점, 대통령은 그렇게 부러운가

道雨 2015. 9. 15. 14:46

 

 

 

 

나치·일제·유신의 공통점, 대통령은 그렇게 부러운가

[주장] 국정교과서보다 '사관학교'·'유치원' 명칭부터 재고해야

 

 

 

 

1) 독일 1934~1945년
2) 일본 1903~1945년

3) 한국 1973~1996년

 

세 나라(독일, 일본, 한국)의 이 시기 공통점은 무엇일까?

위 시기는 독일, 일본, 한국에 국정교과서가 존재하던 때이다.

독일 역사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가 존재했던 시기는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던 나치 독일(제3 제국, Drittes Reich)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 모든 독일 국정교과서는 제국교육부(Reichserziehungsministerium)가 저작권을 소유하면서 엄격하게 통제하여 나치 사상을 획일적으로 전파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무터킨더의 독일교육 이야기> 박성숙 참조).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후 악명 높은 비밀경찰 게슈타포로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갔다. 공산당을 비롯한 정당과 의회를 해산했다. 히틀러는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이 되어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결국,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일으켰다.

전후 독일은 하나의 교과서로,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나치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국정교과서를 없애버렸다. 현재는 16개 주별로 다양한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아예 자유발행제를 시행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였다고 자부하던 일본은 군사무장을 통해 침략을 본격화한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3년부터 조선을 식민지로써 지배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일본 제국주의의 시대, 바로 그 시기에 일본에 국정교과서가 존재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러일전쟁을 전후한 1903년에 소학교(초등학교)에 국정교과서를 도입했고,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중학교까지 국정교과서가 도입됐다.

일본에 국정교과서가 존재하던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조선에서 발행된 교과서에는 큼지막하게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라는 다섯 글자가 찍혀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의 교과서 편찬과 인쇄 등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독하던 시기이다.

내용은 어땠을까?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신민 교육을 위하여 발행한 당시 교과서에는 일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국어독본>(당시 국어는 일본어 의미) 교과서에는 '명치천황어제(明治天皇御製)'라는 일왕의 유훈을 실어 식민지 조선의 어린 학생들에게 일왕의 말을 외우도록 했다. <조선어독본>에는 한일강제 합병을 맞아 조선 백성들이 남대문에서 일본기인 '히노마루'를 들고 환영하는 내용과 삽화가 들어있다. 곳곳에 일장기 그림과 일제 찬양 내용으로 넘쳐났다.

일제 강점기 조선 학생들이 배웠던 교과서는 식민지 조선의 미래 백성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고, 조선의 얼을 없애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랬던 일본도 2차 대전 종전 후, 국정교과서를 통한 국가주의적 교육이 전쟁의 한 원인이라고 판단하여 국정교과서를 없앴다. 지금까지도 일본 우익들이 국정교과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다수의 일본 국민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후소샤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이 일어났던 것도, 일본이 국정제가 아니므로 가능했다.

유신과 5공 군사정권에나 존재한 국정교과서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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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국어교과서(당시 국어는 일본어임), 우상: 교과서 삽화. 경성의 남대문의 한일합방을 축하하는 조선인과 일본인들이라는 해설이 달려있다. 우하 : 당시 조선어 교과서로 히노마루를 '우리 국기'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 : 일제강점기 지리와 조선어교과서.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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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도 교과서는 국정제가 아니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통하여 장기집권을 획책한다. 그 10월 유신 직후인 1973년 국사 교과서 검인정 제도를 폐지하고 국정교과서를 도입했다.

당시에도 사학계와 교육계를 중심으로 국정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교과서 제작비를 근거를 내세워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당시 교과서는 10월 유신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하는 헌법 개정"이라고 기술했고, 뒤이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국정교과서에는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라고 적었다. 이렇듯 당시 국정교과서는 낯 뜨거운 정권 찬양과 홍보로 넘쳐났다.

당시 학교는 군사정권의 이데올로기 홍보 수단이었다. 국정교과서는 이런 거짓 이데올로기를 미래 세대에게 주입하는 목적에 가장 적합하고 철저하게 복무한 첨병이었다.

국정교과서가 폐지되기 시작한 것은 군부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간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이다. 우리 사회의 부분적 민주화와 더불어 과거 군부독재시대에 획일화된 국정교과서도 비판받았다. 결국, 정권 홍보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던 국정교과서는 폐지되기에 이른 것이다.

박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명예회복위원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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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의 국정교과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보도한 당시 언론 기사(동아일보). 박근혜 정부의 현 국사편찬위원장인 김정배 당시 교수(네모 안)도 다양성 훼손을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있다. 찬성측 논리는 '교과서 제작비' 문제로 나와 있다.
ⓒ 인터넷캡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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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하는 대부분 학자와 교수들, 역사 담당을 비롯한 현장 교사들, 심지어는 보수적인 언론사들마저 국정교과서 도입을 반대하거나 우려하고 있다. 이를 밀어붙이려는 새누리당의 교육문화위원회 위원들도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으며, 심지어 보수교육감 중에도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국정교과서 도입의 최일선에 서 있는 주무장관 황우여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한 바 있다. 김재춘 청와대 교육비서관도 이전에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국정교과서가 폐지되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국정교과서 재도입 시도가 얼마나 코미디인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국사 교과서 편찬 기준을 만들기 위해 모인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도입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현 위원장인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1973년 유신 시절 국사 국정교과서 전환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것 역시 코미디이긴 마찬가지다.

현 정권은 '쇼'를 하고 있고, 국정교과서 개편에 찬성하는 처지를 밝힌 이들 대부분이 말 바꾸기를 하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의리도, 학자적 양심도 없어 보이는 행동이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0일, 국정교과서 도입이 청와대의 지시 때문에 추진되기 시작했다며 교육부의 공문을 공개했다. 청와대의 강력한 지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삶의 목표이자 정치를 하는 목표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아니다.

대통령은 분명히 이전 유신 시절의 국정교과서처럼 아버지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10월 유신 쿠데타를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이라고 후세에 알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것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법이 국정교과서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교과서 회귀 선언은 독재 회귀 선언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렵게, 조금씩 이루어온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학자, 교수, 교사 심지어 보수교육감과 보수언론까지 반대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시행 국가가 소수 있지만 국정제를 폐지하였다가 다시 도입한 나라는 없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국정화 회귀를 단행할 것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개인적 목적 달성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국정화 회귀는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교육의 후퇴이자 역사의 퇴보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개인적 목적에 이용하니 대통령 자격까지 운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으면,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활동하면 된다.

국정교과서 부활이 아니라 교육계 일제 잔재 청산할 때

국정교과서는 나치나 일제, 군사독재시대에나 어울리는 제도이다. 한마디로 일제의 잔재, 군사독재의 유물이다. 현대교육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이런 현대교육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제도가 국정교과서이다.

지금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일제와 군부독재의 잔재인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육계에서 그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먼저, 사관학교나 유치원과 같은 학교 명칭부터 재고해야 한다. '유치원(幼稚園)'이라는 명칭과 사관학교(士官學校)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로 알려졌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황국신민학교의 약자)라는 비판에 초등학교로 바뀐 것을 모두 기억한다. 유치원과 사관학교라는 명칭을 더는 고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유치원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부산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일본식 교육기관에, 독일식 표기를 빌려 붙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회에 일본식 표현인 유치원을 유아 학교로 바꾸자는 법안이 몇 차례 제출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군사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라는 명칭도 비슷해 보인다.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이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만주에 세웠던 '신흥무관학교', 중국 쑨원이 근대식 장교 양성을 위하여 세웠던 '황포군관학교'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사관학교라는 명칭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1895년 신식 군대가 편성되면서 이들을 훈련하고 지휘할 초급 무관을 양성 기관의 이름도 군관학교였다.

사관학교나 유치원이라는 명칭이 정말로 일제식 표현이고, 일제의 잔재라면 더는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또한, 교실의 높은 교단, 운동장 조회대, 단속 위주 교문지도, 운동장 애국조회, 사정회, 액자 속의 태극기, 친일파의 동상과 기념관 등등 교육계와 학교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제 잔재들을 걷어낼 때가 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청와대가, 교육부가 못하면 교육청에서라도 앞장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 일은 일제 유물이자 군부독재의 잔재인 국정교과서 부활 시도가 아니다. 교육계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광복 70주년을 기념할 자격이 생긴다. 그래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 흘린 선조들을 추념할 자격이 생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김행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