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자료, 기사 사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 나와, 예술가 ‘정치검열’ 확인...“리스트 방대” 증언도

道雨 2016. 10. 11. 17:20

 

 

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 나왔다

 

 

 

작년 5월 문화예술위 회의록 보니

권영빈 위원장 “우리가 심의위원 선정하면, 리스트 따라 해당기관서 ‘된다, 안된다’ 얘기”
한 위원은 “결국 청와대서 배제…” 발언도
도종환 의원 “정치검열 윗선 지시 명백해져”

 


도종환 의원이 <한겨레>에 공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년 5월29일 회의록.
도종환 의원이 <한겨레>에 공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년 5월29일 회의록.

 

 

정부의 ‘예술 지원 정치검열’과 관련해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회의록을 통해 확인됐다. 또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 선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발언까지 공개됐다. ▶관련기사 8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한겨레>에 전문을 공개한 2015년 5월29일 예술위 회의록을 보면,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은 “(기금 지원)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해놓고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겁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어 “또 하나는… 참 말씀을 드리기가 힘든데요. 심의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율적인 심의가 원만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원 금지 대상을 적시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며, 지원 심의 또한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음을 토로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예술위의 기금지원심의 운영 규정에 대한 안건을 논의했다. 권 위원장은 상황을 정리하며 “우리 예술위원들이 추천해서 책임심의위원들을 선정하면, 해당 기관에서 그분들에 대한 신상파악 등을 해서 ‘된다,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지원을 심의하는 위원 선정 또한 예술위 외부의 ‘해당 기관’에서 결정한다는 얘기다.

 

이런 발언을 두고는 지난해 ‘예술 지원에 대한 정치검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제기된 ‘비판적인 예술인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폭로가 처음으로 정부 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권 전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블랙리스트라고 했는지 어떤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존재 의혹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특정 연극에 대한 잇단 지원 배제의 배경으로 제기됐다. 당시 ‘세월호’를 다룬 윤한솔 연출의 퍼포먼스 <안산순례길>이 예술위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고, 박근형 연출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예술위 지원사업에 선정되고도, ‘2013년 연출작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빗댔다’는 이유로 예술위로부터 신청 포기를 종용받은 바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도 의원은 “예술위가 블랙리스트가 있음을 인정한 발언으로, 심사 개입, 정치검열이 ‘윗선’의 지시였다는 점이 명백해졌다”고 지적했다.

 

2015년 11월6일 예술위 회의에선 ‘청와대 개입’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회의록에 기록돼 있다.

한 위원은 “○○○ 부장이 공문을 준 게 뭐냐 하면 심사위원 추천권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을 추천했습니다. 안 받아졌습니다… 결국 그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한 정황으로 들린다.

 

도 의원은 “예술위의 위증과 허위자료 제출 및 청와대 개입 등에 대해 상임위 차원에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

 

 

 

정부 비판 예술가 ‘정치검열’ 확인...“리스트 방대” 증언도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실로
박근형 연출에 이윤택 작가까지
지난해 ‘표적검열’ 주장했지만
정부문건으로 확인된 건 처음
문화계 블랙리스트 반발 거셀듯

 

 


 

 

 

정부에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문은 수년 전부터 떠돌았다. 하지만 첫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지난해 9월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당시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술위가 1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심의위원에게 요구해 윤한솔 연출의 <안산순례길>을 선정작에서 제외했다”며, 문화예술인에 대한 광범위한 블랙리스트 존재 가능성을 주장했다.

 

유 의원은 “(예술위 직원이) 심사 자리에서 ‘세월호와 관련돼 곤란하니 빼줬으면 좋겠다. 위에서 윤한솔을 정치적 인물이라고 생각해 중간에서 힘들다’더라”는 한 심의위원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전했다.

해당 작품은 예술위가 주관하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는데, ‘윗선’의 정치적 반대 탓에 배제됐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동안 설만 무성하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10일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예술위 회의록은 ‘블랙리스트’ 존재를 정부 문건으로 처음 확인한 것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파문은 정치검열로 상징되는 현 정부 문화예술정책의 뇌관을 건드리게 됐다.

 

이날 도 의원이 공개한 2015년 5월29일 예술위 회의록을 보면, 블랙리스트에 의한 문화예술인 길들이기 시도는 좀더 명확해진다.

회의록에서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은 “(기금 지원)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해놓고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겁니다”라고 발언했다.

 

현 정부 전직 고위 관계자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제기한 바 있다. 지난해 이 관계자는 <한겨레>에 문화예술계 등 각계를 망라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언급했다. 그는 “리스트 명단이 1만명이 넘어갔다고 들었다. 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는 이 리스트를 대조해가며 일했지만, 윗선을 핑계로 댄다는 말이 나와 얼마 전 산하단체로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정도 리스트라면 안 걸릴 사람이 없다”며 블랙리스트의 규모가 방대하다고 전했다.

 

블랙리스트와 정치검열은 서로 톱니처럼 맞물려 있다. 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은 정치성향을 이유로 예술위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예술위의 지원 대상에 대한 정치적 배제는 놀라운 수준이다.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대본 공모 지원, 우수 작품 제작 지원 사업 등에 이미 선정된 작품임에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됐고, 예술위 직원으로부터 지원금 포기를 직접 종용받았다. 연극계는 박 연출가가 전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하했기 때문에 표적 검열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윤택 작가·연출가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희곡 분야 심사에서 작품 <꽃을 바치는 시간>이 100점을 맞아 1순위를 기록하고도 선정 대상에서 탈락됐다. 심사위원들이 반발하자 문예위는 직접 심사위원이 선정한 지원 대상 102명을 70여명으로 대폭 줄여 발표했다. 이 작가는 지난 대선 때 고교 동창인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은 예술계 정치검열 문제를 내부 증언 녹취록을 통해 폭로한 바 있다. 지원 사업 선정 과정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계 인사들이 선정되고도 탈락되는 일이 여러차례 일어났음을 공개했었다.

이번에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정부 문건으로 확인되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게 됐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