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최순실씨가 대구 소재 영진전문대 교수로 취임한다. 직책은 부설유치원 부원장. 육영재단 부설유치원 원장으로 있다가 자리를 옮긴 것이다. 당시 육영재단의 ‘실질적 운영자’는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이었다. 최씨가 ‘아버지 품’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가야 했던 배경에는 육영재단의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최씨는 대구에 연고를 두고 있었다.
학력 날조로 교수 됐나?
당시 육영재단 내부는 시끄러웠다. 최태민 일가의 전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구에서는 최씨의 이성동복인 오빠 조순제씨가 최태민을 등에 업고 영남재단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1990년 육영재단을 동생에게 넘겨주고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다.
대체 최씨는 어떻게 교수에 채용된 걸까? 당시에는 전문대학들의 상황이 열악해 교수를 하겠다는 지원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교수로 채용될 수 있었다.
단국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수료했다는 최씨. 한편, 정식으로 입학하지 않은 ‘청강생’이었다는 지적도 많다. 최씨가 ‘연구자정보시스템’에 기재한 출신대학은 국내에 있지 않다. 미국 LA에 있는 켈리포니아 퍼시픽 스테이츠 유니버시티(PSU)이다. 여기서 학사(1981년), 석사(1985년), 박사(1987년) 학위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씨가 교수로 취임한 시점(1988년)에는 이미 PSU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학위로 교수에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씨의 미국 학위에 관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PSU가 어떤 대학인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사설학원’에서 받았다?
연방정부에서 승인하는 학위과정 인정기관에 등록된 대학에서 받은 학위라야 학력을 인정받는다. 이게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이다. 6개의 인가협회가 지역별 학위인증 기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온라인 원격 강의나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들의 경우, 80여개의 전국적인 인가협회로부터 인정 심사를 받는다.
최씨가 학위를 받았다는 PSU는 이 80개 인가기관 중 하나인 ACICS(Accrediting Council for Independent Colleges and Schools)에 등록돼 있다. ACISC의 홈페이지에서 PSA를 검색해봤다. PSU가 등록(인정)된 날짜는 1996년. 최씨가 학위를 받을 당시에는 비인정 대학이었다. 사설학원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얘기다.
PSU의 소재지는 ‘3424 Wilshire Blvd, LA’. 한인타운 내에 있다. 구글 어쓰로 검색을 해보니 대학교 간판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서상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는 자신이 포털에 게재한 글에서 “(PSU의) 172명 등록학생 중 94%가 외국인”이며 “재단 이사장, 총장, 교직원, 교수까지 모두 한국사람”이라고 밝혔다.
유아교육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도 날조된 것으로 보인다. PSU에는 유아교육 관련 과가 아예 개설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가 ‘연구자정보시스템’에 기재한 사항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각에서는 최씨가 작성한 논문을 토대로 PSU가 아닌 ‘Pacific Western University’(PWU)에서 학위를 취득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PWU는 애당초 정식인정을 받지 못한 곳이었다. 2006년 '학위장사' 등의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폐쇄 조치를 당한 ‘원격강의 전문 학원’에 불과했다.
최순실 교수일 때 정윤회는 같은 대학 시간강사
최씨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 동안 영진전문대 교수 겸 부원장 자리에 있었다. 교수에서 물러난 최씨는 정윤회씨를 만나 1995년 결혼하게 된다. 최씨가 교수직을 그만둔 때는 최태민이 사망(1994년)하기 직전이었다.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씨 역시 영진전문대와 인연이 있다. 1993년 1년 동안 이 대학 관광과에서 시간강사로 재직한 바 있다. 최씨와 정씨가 최장 1년 동안 영진전문대에서 함께 근무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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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영진전문대 방문 2014년 9월. 당시 학교 핵심관계자는 구속 중이었다ⓒ 방송화면 캡처 |
2014년 9월 박 대통령이 영진전문대를 찾는다. 대구 창조경제센터 출범식에 참석하면서 이 대학을 전격 방문한 것이다. 취임 후 카이스트에 이어 두 번째 대학 방문이었다. 당시 청와대와 교육부는 ‘기업맞춤형 인재육성 현장 방문’이라고 말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대통령 방문 직후 재단 핵심들 풀려나
당시 영진전문대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설립자 최달곤씨와 그의 아들이 공사 대금 수십 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또 다수의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한창이었다. 이런데도 5분 거리에 있는 경북대를 제쳐놓고 재단 핵심인물들이 구속 중인 대학을 방문한 것이다.
박 대통령 방문 뒤 한 달 만이다. 설립자와 그의 아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공금 20억 원을 빼돌리고, 32억 원에 달하는 교비를 횡령한데다, 법인 돈 12억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아 구속 중이었는데도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것이다. 이 와중에 대학은 전국 전문대 가운데 최고 수준의 국비지원사업을 따냈다.
최씨가 날조된 학위로 교수 노릇을 했으며, 전남편 정윤회씨가 몸 담았던 대학. 이곳에 박 대통령이 장관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러자 구속 중이던 재단 설립자와 그의 아들이 풀려났고, 대학은 최고수준의 국비지원을 받았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