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대통령의 사퇴 그 이상’을 원한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민심은 매우 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책임자인 박 대통령은 당연히 사임해야 하며, 그 길만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외침이었다.
집회 참가자들뿐만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박 대통령 사임 요구는 이미 50%를 훌쩍 넘어섰고,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민심은 단지 박 대통령의 퇴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개조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의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킨 기폭제일 뿐,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우리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응축돼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는 반칙과 특권,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 체계,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한 채 윗사람이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서글픈 현실 등, 모순과 비정상으로 점철된 우리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지금 국민의 시선은 박 대통령의 사퇴를 떠나 그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를 밑바탕부터 뜯어고쳐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열망이 곳곳에서 분출한다.
그래서 추락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고, 퇴행의 늪에 빠진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를 혁신하자는 외침이다.
집회 현장에서 터져 나온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말은 이런 정서의 압축적 표현이다.
문제는 국민의 이런 폭발적 열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분출하는 열망에 답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적 열망을 감지하기는커녕, 자신의 권력기반을 계속 유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실 박 대통령이 지금 처한 상황은 아무리 둘러봐도 사임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2선 후퇴니, 내치와 외치의 분리니 하는 말도 실제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정운영 능력 부재가 확인된 대통령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국방과 외교를 맡는다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도덕적 권위가 땅에 떨어진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을 인정할 군인이 누가 있겠으며, 자기 나라에서 외면받는 대통령을 나라 바깥에서 제대로 상대해줄 리도 만무하다.
1년4개월이나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이 2선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나라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정 문란의 방관자이자 옹호자였던 새누리당이야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말할 자격도 없으니 논외로 치자. 그러나 야당 역시 분출하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갑자기 몰아닥친 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선도할 능력도, 국민의 뜻을 정치 현실에서 구체화할 복안도 없다. 정국 수습 방향을 놓고 우왕좌왕을 계속하는 것도 결국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비전과 준비가 없다는 징표이다. 이래서는 야당의 미래도, 나라의 장래도 없다.
이미 민심의 둑은 터졌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참여로 결국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런 열망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강물이 돼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혼란상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 2016. 11. 7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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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씨제이 협박, 그것만으로도 탄핵감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2013년 말,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씨제이(CJ)그룹을 이끌고 있던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결국 외국으로 나가 지금껏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청와대와 최순실씨가 재벌 기업들을 압박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게 한 것과 별개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권력자의 사적인 이해 때문에 국가권력을 무기 삼아 민간기업 경영활동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조 전 수석의 말대로 박 대통령이 이를 지시했다면 그것만으로 탄핵감이다.
<엠비엔>(MBN)이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보면, 조 전 수석이 손경식 씨제이 회장에게 한 말은 충격적이다. 그는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납니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이 부회장의 퇴진을 재촉한다. 이를 거부하자 그는 “그냥 쉬라는데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라고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누나로, 당시 구속돼 있던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었다.
조 전 수석은 이 부회장 퇴진 요구가 박 대통령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중간에서 확실하게 전달해 드렸습니다”라고 대통령의 뜻임을 거듭 강조했다.
조 전 수석은 이에 앞서 손 회장에게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 손 회장은 임기를 2년가량 남겨두고 2013년 7월 갑자기 물러났다.
청와대가 씨제이그룹 경영진을 이렇게 압박한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씨제이가 자사 방송채널의 토론·개그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는 내용을 방송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광해>를 배급한 것 등을 눈엣가시로 여긴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을 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 아니겠는가.
조 전 수석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당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법치를 짓밟고 권력을 사유화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는 별개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 2016. 11. 7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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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함성이 곧 헌법이다
릴레이 특별기고 도올 김용옥
민중은 루비콘강을 건넜다…결론은 단 하나, 하야!
겨울이 오고 있다. 아니, 봄이 오고 있다. 아니, 혁명이 오고 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진실한 혁명! 잔인한 4월보다 더 잔인한 달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너무 슬프다. 우리 조선의 민중이 너무 가슴아파한다. 내가 왜 이렇게 갑자기 먹구름 낀 죽음의 계곡에 갇히어 절망의 탄성을 발하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묵시문학이 말하는 아비규환과도 같은 혼돈 속에서, 나는 기묘하게도 <도올의 로마인서강해>라는 희한한 성서주석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너무도 슬프기에, 너무도 깊은 슬픔을 이겨낼 수 없었기에 나는 유대인 바울이라는 인물의 심정의 심연에 기대어 나의 슬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로마인에게 보낸 이 바울의 서한은 예수라는 인물이 죽은 지 불과 25년 만에 쓰인 것이며, 그 서한이 완성된 후 15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된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국가는 멸망해버렸고 유대인은 흩어져 향후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서글픈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인서>에 새겨진 장엄한 논리는 기독교를 탄생시켰고,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킨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다. 향후 2천년 동안의 찬란한 서구문명의 도덕적 뼈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로마인서>는 인간혁명의 매니페스토였다.
나는 이 조선 역사의 가장 심오하게 슬픈 이 시점에서 바울의 매니페스토를 뛰어넘는 우리 민중의 매니페스토를 선포하고자 했다.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역사”라고 말한 그 뜻을 새롭게 밝히고자 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박근혜 대통령의 두번째 사과 담화를 들었다. 그 담화는 전혀 사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첫번째 사과 담화보다도 더 사악하게 짜인 자기정당화의 변명일 뿐이었다. 자기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변명하는 구질구질한 언사였다.
그 담화를 가장 가소롭게 들었을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령과 박지만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자기 죄악의 유일한 근원으로 공표하는 박근혜는 무의식적으로 최순실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최태민의 사교에 빠진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국민들은 박근혜의 언행 전부를 사교로 간주하고 있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종로 일대 행진에 도올 김용옥이 시민·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통나무출판사 제공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대국민 담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은밀한 지지세력에게 “나는 아직 건재하며 굳건하게 버틸 것”이라는 사인을 보내는 일종의 암호였다. 이미 자기의 지지세력이 사라졌다는 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한 영혼이었다. 하다못해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의 내정을 둘러싼 절차상의 하자에 관하여 일말의 반성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병준은 제대로 된 학인이라 말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로고스적 상황 판단이 있어야 하고, 절차적 논리가 있어야 하며, 주어진 상황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그러한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누구라도 이성적 판단력이 있다면, “여야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했어야 했다.
그렇게 현명한 자세를 취했더라면 그는 이 난국을 타개하는 정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석이 아닌 사석(捨石)이다. 그는 입 뻥끗할 때마다 여유가 있어 보이고 단호한 듯이 보인다. 한마디로 고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기회를 탐하기만 하는 갈욕의 노예일 뿐이다.
자진사퇴 있을 수 없다구? 잘해보시게나!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 혼란과 부도덕성 증가시킬 뿐
바울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선포하노라.” 나는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피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원고지 위에 펜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내가 집필하는 서재의 작은 창문으로 노도와 같은 민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느샌가 민중의 틈바구니에 끼어 종로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실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쓰나미였다.
종로 대로로부터 광화문 네거리 주변을 꽉 메운 인파는 1만·2만으로 셀 수 있는 그런 풍류가 아니었다. 20만·30만의 인파가 외치는 함성은, 순간 나의 의식의 장에 저 바이칼호로부터 대흥안령을 거쳐 백두·두륜에 이르는 거대한 광야의 지맥을 연상시켰다. 최근 나는 동북3성의 고구려·발해성을 답사하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맞았다! 그래! 맞았다! 이게 바로 내가 살던 고향이었어! 자동차가 사라진 텅 빈 종로와 질풍노도와 같은 인파의 홍류는 해방된 고조선의 영고·동맹제와도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곳은 억압도, 착취도, 사기도 없었단다! 조그만 밭뙈기 하나 있으면 못살 일도 없었고, 잘살게 해준다고 꼬시는 사람도 없었단다!
내 주목을 크게 끈 천 명 가까운 한 시위대는 바로 중고생 집단이었다. “중고생이 일어났다! 중고생이 분노했다! 박근혜는 물러가라! 사과 말고 사퇴하라! 새누리도 공범이다! 재벌기업 해체하라!”
내가 중고생 시위대 앞에서 같이 종로를 활보하자, 내 주변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기억 못하세요? 고대 농악대 82학번 아무개예요. 저 선생님하고 같이 길거리 데모하면서 최루탄도 무척 함께 뒤집어썼잖아요!” “그래그래 맞다! 너 아무개 아니냐?”
이렇게 저렇게 나는 또다시 30년 전 6월항쟁의 열풍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당시 “왕정이냐? 민주냐?”라는 글을 발표하고 단식에 돌입했다. 대학생 박종철군의 고문살인 조작·은폐로 시작하여 이한열군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치던 민중의 민주화를 향한 절규는 드디어 100만 인파를 이루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향하는 노제의 장엄한 광경을 노정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과 현금의 11월항쟁은 매우 성격이 다르다.
6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폭압적 무단정치의 타도였으며, 그 대상은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였다. 다시 말해서 투쟁 목표가 민중 밖에 치립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재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11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가냘픈 여인허수아비를 둘러싸고 놀아난 행정·입법·사법·언론·문화·체육·국방 전반의 국가체제의 부패요, 괴멸이요, 야비한 기만성이다.
그 대상도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가 없다. 최순실이 대상이 아니라, 그 야비하고 비열하고 저속한 이를 국가 최고의 실세로 만들어 놓은 장기간에 걸친 국가권력체제의 농간이요 농단이요 농권(弄權)이다!
투쟁 목표가 민중 안에 거미줄처럼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재적 혁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자발적 각성의 힘에 의하여, 민중 스스로를 개혁하고 개벽하는 어려운 혁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험로의 종착역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종착이야말로 진정한 시발인 것이다!
광화문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무대 위로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말도 아주 소박하게 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왔다. 그녀는 말했다. “
하야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요. ‘하야’라는 말은 위엄 있는 대통령 인격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말이잖아요? 그러나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에요. 대통령으로서의 위엄과 위신과 인격과 국정수행 능력을 다 상실했잖아요.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는 불쌍하고 외로운 병자일 뿐이에요. 박근혜는 빨리 청와대를 걸어 나와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빨리 박근혜를 입원시켜줍시다.”
11월 항쟁의 투쟁 대상은 국가체제 부패와 야비한 기만성
거대한 찬사의 함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우리 민중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바스티유 감옥은 이미 터졌다! 노론-친일파-친미·반공 세력의 강고한 족쇄는 이미 풀렸다!
나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민중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민중의 함성에 떠밀려 무대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그대들은 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입니까? 최순실-최태민이라는 터무니없는 인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입니까? 이 순간 여러분께서 단상에 서 있는 도올을 바라보는 그 가슴에 뭉클거리는 감정,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모든 일치된 언어, 그것은 바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철학이요, 이 시대의 정언명령이며, 이 시대의 헌법입니다. 헌법은 조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투쟁으로만 획득되는 민중의 양심이며 양식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괘상(卦象)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그 분노의 불길로 우리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를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 존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체제의 압박을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은 정권의 변화를 뛰어넘는 우리 의식의 혁명이며, 제도의 혁명이며, 가치관의 혁명이며,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소망의 혁명입니다.
우리 모두 헌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혁명은 어떠한 정치적 술수나 타협으로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순결한 민중의 순결한 의지의 표출로써만 가능한 혁명입니다. 어떠한 감언이설의 교사에도 속지 마십시오.
명(命)이 혁(革)파될 때까지 조금도 행진을 늦추지 마십시오. 혁명 완수의 그날까지 행진! 행진! 행진!”
이것은 과연 무슨 말인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청와대가 환관으로 득실거리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이 난국을 예언한 것도 나 도올이었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운위한 것도 나 도올이었다(
<한겨레> 2014년 5월3일치 1면 세월호 참사 특별기고).
그런데 나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직후에 <시비에스>(CBS) 김현정 앵커와 한 대담에서,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하야를 자유롭게 논하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나는 “하야”에는 반대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그 역설적 논리의 진의는, 쉽게 하야하고 나면 그만큼 박근혜는 쉽게 면죄부를 획득할 것이며, 또한 더욱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박근혜라는 허상을 조장해온 정계, 관계, 재벌, 보수언론, 보수여론주도층이 다 같이 쉽게 면죄부를 획득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사태의 죄악은 모두 박근혜·최순실과 그 주변의 사기집단 몇 명으로만 귀결되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성의 기회를 유실하고 만다. 비록 지지부진하고 더러운 변명의 추태가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존속시키는 것이 오히려 박정희-박근혜 패러다임의 실상을 폭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의 논리는 지금 박근혜의 두번의 사과와 독선적인 신임 총리 지명 사태만으로도 설 자리를 잃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금치산자와도 같은 인물이 되어버렸고,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인 민심이 완벽하게 이반되어버렸다. 이러한 사태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선택은 많지가 않다.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의 혼란과 국민의 분노와 정계의 부도덕성을 증가시킬 뿐이다.
지금 정가에서 나도는 해법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1)하야 (2)탄핵 (3)거국내각.
우선 우리 국민은 하야와 탄핵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탄핵은 현행 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당 간의 합의에 의한 정치적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하야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아닌 초법적인 도덕적 선택이다. 이 도덕적 선택의 일차적 주체는 박근혜라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이 자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도덕적 선택을 자발적으로 내릴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러한 인격체라면 어찌 최순실 게이트의 사태에까지 당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탄핵의 주체가 정당이라고 한다면, 하야의 주체는 국민이 된다. 하야를 하게 만드는 사역자가 국민이라는 뜻이다. 이 국민은 반드시 혁명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각성된 국민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탄핵은 문제가 많다. 정당 간의 합의도 어렵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전 과정은 장기화될 것이며, 박근혜는 면죄와 휴식과 도덕적 마비를 얻는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은 국민이 바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강하다. 국민의 소망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실 탄핵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헛수고일 뿐이다.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 국민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거국내각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이 말의 함의를 정확히 깨닫기에는 너무도 많은 역사적 언어가 필요하다. 그 핵심을 말하자면
거국내각이란 국회가 국체의 전권을 쥔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려면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탈당해야 하고, 일체 정무에서 손을 떼야만 가능한 것이며, 특검도 거국내각이 구성한 엄정한 수사기관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실상 거국내각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우며, 그 실제 내용으로 말하자면 하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종 결론은 단 하나만 남는다! 하야! 하야! 하야! 그리고 또 하야!
하야를 강행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힘은 정객에게 있지를 않다.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국민을 위하여 국민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여기 내가 말하는 “평화로운 사태”라는 말의 함의에 모두가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집권자들은 국민의 분노나 항거나 시위를 과소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집권의 야욕을 허심하게 내려놓지 않는다면, 또다시
북한의 위협을 도발시키거나, 혹은 계엄사태를 구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이렇게 케케묵은 수법에 농락당하지 말아야 한다. 군대도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명령이 아닌, 자체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야 할 것이다. 군대는 국가의 군대이며, 국민의 군대이다. 경찰, 군대 모두 폭력적 사태를 유발하는 일체의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제로다!
언론도 국민의 열기를 파생시킬 수 있는 불확정한 사태에 대하여 정의로운 판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미 보수와 진보, 야당과 여당, 지배자와 피지배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직 불행한 사태의 저지를 위하여 박근혜의 하야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사태의 죄악을 죄악으로서 깨끗하게 종결시켜야만 한다. 오늘 이 위대한 혁명의 국면에, 대인의 우환을 지닌 모든 동포들은 민주의 제물로서 모든 아집을 버리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규탄하는 ‘2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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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호성 휴대폰서 최순실 ‘지시사항’ 녹음 확보
‘수사 뇌관’ 최씨 지시사항 담긴 통화내용 확보
박 대통령 지시 없이 기밀문서 넘겼을 가능성 낮아
검찰이 6일 새벽 구속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한테서 압수한 휴대전화가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핵심 열쇠로 떠올랐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비선실세’ 최순실씨(구속)와 어떤 내용의 통화를 했는지 확인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어느 정도 개입됐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지난달 29일 정 전 비서관의 자택에서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최순실씨의 청와대 국정 개입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과 메모를 입수해 집중 분석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이 통화 내용에는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국정과 관련해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의 ‘지시 사항’을 놓치지 않기 위해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어떤 청와대 문건을 최씨한테 넘겼는지, 최씨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앞서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말맞추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3일 밤 11시30분 그의 어머니 집 앞에서 체포해 다음날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6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이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며 최측근에서 보좌해 온 정 전 비서관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대통령을 향한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 없이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한 국가기밀 문서를 넘겼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 5일 오후 2시 열렸던 영장심사를 포기했다. 변호인 역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는 검찰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을 감수함으로써
청와대 국가기밀 자료 유출 책임을 자신이 떠안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같은 날 구속영장이 발부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영장실질심사에는 출석했지만,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데 대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대통령을 보좌한 사람들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씨와의 친밀한 관계를 인정한 만큼, 사건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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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다보스포럼때 朴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찍혀"
오동진 "MB때는 청계천에서 괴물 나온다고 <괴물2> 제작 막아"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지난 2004년 7월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이 손경식 CJ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사퇴를 종용한 배경과 관련,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가 아주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고 7일 분석했다.
기자 출신인 오동진 평론가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미경 부회장 하면 CJ엔터테이먼트 만들고 CJ E&M을 실질적으로 경영해 오던 부회장인데, (2014년말) 갑작스럽게 사실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갔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도 굉장히 의아해했던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최근에 이 뉴스가 불거져나오면서 마치 모든 일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듯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요새 생각이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마 '한국의 밤' 행사에 주인공으로 가수 싸이와 CJ엔터테인먼트 이미경 부회장이 부각이 됐었던 것 같다"며 "그 주변의 문고리 3인방이라든가 등등 주변 인사들이 과잉충성이 이루어지던 때에 아마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당시 CJ그룹은 다보스포럼때 이미경 부회장과 박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가 급작스레 이 부회장 모습을 배제한 사진으로 교체하는 등 소동을 벌여, 청와대의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었다.
그는 또 "영화나 케이블 프로그램, 특히 CJ가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 중에서 Saturday night live라는 SNL 같은 프로그램들 보면 풍자 코미디프로그램이잖나"라며 "아마 2012년 대선정국에서 대선후보들을 패러디했던 그런 코너인데요. 이건 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현직 대통령들을 다 대상으로 했던 건데, 어쨌든 그런 부분들이 늘 불편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영화 쪽에서도 이제 마찬가지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인 것 같다. 아마 MB정부 이후부터 계속해서 보수적 정부에서는 '영화계가 이른바 좌파의 온상이다, 그런 좌파의 색깔을 갖고 있는 영화들을 많이 만든다', 이렇게 보고 있었던 시선들이 굉장히 많고 거기에 이른바 메이저 스튜디오라고 하는 CJ엔터테인먼트가 그런 작품들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하고 좀 부채질한다, 이런 시선들이 있었던 게 사실인 것 같다"며 "가장 대표적인 게 아마 <변호인>이겠죠"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만을 넘기는 관객을 모았었는데 그때 많은 관객들이 광해를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했던 경우가 많았고, 그때도 이 영화를 대통령 후보 중의 한 명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서 보고 그때 당시 뉴스가 많이 나왔죠. 많이 울었다는 얘기도 했었다"라고 상기시켰다.
그는 '이런 압박들이 있은 후에 CJ의 영화 성향이 바뀌었냐'는 질문에 "다 바뀌었다"며 "CJ만 바뀐 게 아니고요. <변호인>을 만든 투자배급사 NEW도 그 이후에 <연평해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영화계에서는 보험을 든다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국제시장>을 만들고 그다음에 <인천상륙작전>...CJ가 그전에 <광해, 왕이 된 남자> 등등을 만들어서 현 정권의 눈밖에 나 있는 것을 <국제시장>으로 많이 커버했다,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그 이후에도 최근까지 <인천상륙작전> 등등을 만들면서 영화계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가 일단은 이재현 회장의 석방에 대한 갈망이 굉장히 많았고, 현 정권과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작동하고 있다, 이런 얘기들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더 나아가 "NEW 대표의 장인이 예전에 <민중과 지식인>의 (저자인) 한완상 선생이시다"라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변호인> 만들고 나서 그런 정서적인 어떤 경영상에 있어서도 그런 심리적 압박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먼저 <연평해전>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돌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MB때의 영화 탄압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괴물2>도 만들어지려고 했었다. <괴물2>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모든 투자가 완료된 상태에서 그 직후에 투자가 다 철회됐었는데 그게 MB정부 때"라면서 "왜냐하면 <괴물1>은 괴물이 한강에서 나오는 거나 <괴물2>의 설정은 청계천에서 나오는 거였다. 그래서 MB정부 초반에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치적 중 하나인 청계천에서 괴물이 나오느냐', 이런 것이 문제가 돼서 투자가 다 철회됐었다"고 밝혔다.
최병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