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측근) 비리

촛불, 이게 나라다 

道雨 2016. 11. 17. 10:38

 

 

 

촛불, 이게 나라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쳤다.

이게 나라냐.

그 거대한 불의 물결을 보면서 생각했다.

바로 이게 나라다.

그 나라의 규모와 역동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드러났는데, 그에 분노하면서도 처음엔 정치인·지식인들의 입에서 ‘하야’나 ‘탄핵’이란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일에 대한 공포, 봉건시대 사고의 흔적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대통령은 그걸 믿고 버티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둘 켜진 촛불은 침침한 두려움 속에 잊고 있었던 상식을 밝혀줬다.

봉건시대에도 무도한 임금은 임금 취급을 안 했다.

무왕이 폭군 주(紂)를 치고 주(周)나라를 세운 것을 두고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 되느냐”고 묻자, 맹자는 “일개 사내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하물며 민주공화국에서야 자격 없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건 시민의 특권이다. 헌법·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주권자가 ‘파면’시키는 탄핵 절차가 제도화돼 있다.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고의였든, 꼭두각시처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든 상관하지 않는다. 파면시키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건 거기에서 파생하는 당연한 권리다.

 

 

청와대는 대통령 임기 단축이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지만, 헌법은 부적격자의 임기 중단을 엄연히 예정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느니 없느니 논쟁하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가. 그 낡은 사고를 단박에 걷어낸 것도 촛불의 힘이다.

 

하야나 탄핵이 헌정사에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이런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도록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기는 일이요,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완성하지 못한 채, 고장난 체제에서 살고 있다는 슬픈 증명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서 질서 있는 수습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질서 있는 퇴진’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한 질서의 가치는 무색하다.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은 “질서의 가치가 무질서의 가치에 경의를 표해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 말이 이제 명쾌하게 다가온다.

촛불은 거대한 무질서로써 헌정 질서를 바로잡는 질서의 대열이 됐다.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가측성을 촛불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은 이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틀 안에 갇혀 시키는 일만 하고 사는 건 쉽다. 대통령도 그랬고, 그 밑의 수족들도 그렇게 살았다.

스스로 고심하고 틀을 깨는 결단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위대한 시민들은 그 길로 나섰다.

앞에 어떤 사태가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촛불은 입추의 여지 없는 광장에서 그랬듯 묵묵히 길을 틀 것이고, 시민들은 이 나라를 움직여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촛불을 뒤쫓아가는 정치권과 국가기구들의 본질도 환히 드러날 것이다. 정치권의 어느 세력, 어느 정치인이 민주공화국을 완성할 의지가 있는지, 혼란 속에서 제 이득만 챙기려 하는지 시민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

조만간 보게 될 최순실씨의 공소장은 검찰이 수사·소추기관으로서 존속할 가치가 있는지를 검증할 마지막 무대가 될 테고, 헌법재판소가 판단의 몫을 맡게 될 경우에는 그 또한 같은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도한 권력과의 지난한 대결을 마치고, 촛불은 새로운 설계도의 나라를 만들어낼 것이란 믿음을 100만분의 1 촛불로서 간직하게 됐다.

 

 

 

박용현, 정치 에디터,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