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의 성금 사용 등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지난 10일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의 성금 사용 등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지난 10일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상징적 인물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성금 사용 등에 문제를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30여년 ‘동지’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정의연 전 이사장)와 정의연에 실망을 밝히자, 위안부 인권 운동 자체에 대한 의혹 제기까지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의연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 기부금 가운데 평균 41%가 피해자 지원에 쓰였으며, 나머지는 위안부 문제 연구, 추모 사업, 역사 교육 등에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윤미향 당선자 딸의 미국 유학비 관련 의혹을 제기했는데, 윤 당선자는 ‘간첩 조작 사건’으로 재심에서 일부 무죄를 받은 남편의 형사 보상금 등으로 유학비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정의연과 윤 당선자는 소상하게 설명해 진위를 밝히고, 정의연 운영 과정에 미흡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빌미로 ‘위안부 인권 운동’을 흔들려는 정략적 의도는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윤 당선자를 공격하면서, 박근혜 정부 때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윤 당선자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외교부로부터 듣고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합의가 무산된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외교부의 ‘검증 태스크포스(TF) 보고서’를 보면, 당시 정부는 ‘피해자 단체’와 접촉은 했지만,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에서 일본 비판 자제’ 등 핵심 내용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위안부 인권 운동’은 한 단체나 개인의 전유물이 아닌,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피해자, 활동가,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 일궈온, 세계사적인 인권 운동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군에 끌려가 큰 고통을 겪고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은,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입을 열고, 활동가들과 연대해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왔다.
여기에 전국 곳곳에서 인권운동가들, 수요시위에 참여한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힘을 보탰다.
한일 시민사회는 역사를 부정하려는 우경화에 맞서 연대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과도 손을 잡았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전시 성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은 경청해야 하지만,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논란을 우리 사회가 위안부 인권 운동의 의미를 더욱 성찰하고,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 피해자 치유에 기초한 해결이라는 목표를 향해, 다시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2020. 5. 12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