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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사건' 증인 한만호의 울분",검찰, 군대암기사항 외우듯 교육시켜"

道雨 2020. 5. 23. 11:07

 

'한명숙 사건' 증인 한만호의 울분
"검찰, 군대암기사항 외우듯 교육시켜"

[取중眞담] 9년 전 '한명숙 9억 사건' 핵심증인 한만호 전 대표 출소하던 날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두 가지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잊고 지냈을지 모른다. '한명숙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을 취재했던 기억을 다시 일깨운 '두 가지 계기'란 핵심 증인(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죽음을 전해들은 것과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가 최근 '한만호 비망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019년 9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몇 달 전 한만호(58)씨가 죽었다는 소문을 언뜻 들었다"라고 처음으로 한만호 전 대표의 부음을 전했다. 의미심장하게도 "'검찰주의'의 희생자, 고 한만호'"라는 제목을 단 글에서였다.

강 전 국장은 한만호 전 대표가 일찍 죽음에 이르는 이유로 '오랜 감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불면과 술로 인한 육체적 병'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홧병' 등을 언급하면서 "사인이야 어쨌든 한만호씨가 '검찰주의자'들이 만든 참극의 희생자인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일갈했다.

이렇게 한만호 전 대표의 부음이 전해진 지 8개월 만에 '중요한 보도'가 나왔다. <뉴스타파>가 '한만호 비망록'을 입수해 그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한 것이다. 기자가 그토록 입수하고 싶었던 자료였다.

'한만호 비망록'은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 관련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 등을 친필로 적은 '옥중비망록'이다. 그 양이 무려 '29권 1200여 쪽'에 이르는데 그 양보다는 거기에 기록된 내용이 충격적이다. 재판에 나가기 전 검사들이 그를 어떻게 '교육' 혹은 '연습'시켰는지 등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검찰의 "마술사" 같은 언론플레이와 서울시장 선거개입 의혹, 한나라당 유력 인사 6억 원 전달 의혹 덮기 등이 담겨 있다.

한만호 전 대표의 쓸쓸한 죽음과 <뉴스타파>의 충격적인 '한만호 비망록' 보도는 기자를 9년 전으로 데려갔다.

2011년 6월 13일 새벽, 한만호 출소하다


한만호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검찰수사(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과정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이를 뒤집어 검찰을 크게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기자는 당시 선고공판을 포함해 총 24차례 열린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재판장 김우진 판사)에 거의 다 들어가 취재했다. 검찰과 한 전 총리 변호인들의 불꽃 튀는 공방으로 재판이 새벽까지 진행되는 날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전 총리의 16차 공판이 예정돼 있었던 지난 2011년 6월 13일 새벽, 출소하는 한만호 전 대표를 서울구치소 앞에서 만났다. 취재기자로서는 유일한 인터뷰였다. 의아스럽게도 한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의 핵심증인이 출소하는 현장에는 그 어떤 취재기자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당시 진보언론들조차도 이미 한 전 총리를 '유죄'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운동권 출신 A검사의 전언에 따르면, 한 진보언론의 기자들은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A검사에게 위로문자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을 때에는 '사필귀정'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기자는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다이어리'를 써오고 있는데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2011년도 다이어리'를 보면 한만호 전 대표 출소에 관한 메모가 이렇게 적혀 있다.

'0시 한만호씨 출소('한명숙 기획수사 비망록') *서울구치소→취재 감'

실제로 기자는 지난 2011년 6월 13일 어두컴컴한 새벽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한만호 전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예정됐던 시각보다 30분 늦은 새벽 12시 30분에서야 구치소 문을 나섰다. 그가 출소하기 전 서울구치소의 한 관계자는 취재기자 유무를 확인한 뒤 그것을 '어딘가'에 보고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 전 총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터라 법무부와 검찰이 그의 출소를 민감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2010년 12월 20일 510호 법정에서 진실을 밝혔다"


기자는 출소하는 한만호 전 대표 옆을 따라붙으며 '출소 인터뷰'를 진행했다. 딱 '2분 38초' 동안의 짧은 인터뷰였다.

- 지난해 12월 법정에서 했던 진술은 그대로 유지되나?
"그렇다. 저는 2010년 12월 20일 510호 법정에서 김우진 재판장에게 진실을 밝혔다. 사실대로 정직하게."

- 한명숙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준 적이 없다는 건가?
"물론이다. 한 전 총리의 누명은 곧 벗겨질 것이다."

- 얼마 전 검찰이 압수해간 '비망록'에 검찰이 회유하고 협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완전히 통제된 15개월간 독방 시절 동안 쓴 비망록, 증언과 관련된 서류와 증거, 대질 증인의 위증을 요약한 것, 집필 중인 참회록과 진술서 등 모든 정황을 설명해줄 30여 권의 노트와 1만여 장의 서류를 모두 빼앗겼다."

- 마지막으로 검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수사는 잘못된 사람의 말을 믿고, 잘못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현 서울시장 당선을 돕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세력을 척살하기 위해 저질러진 아주 잘못된 수사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수사를 다시 생각해서 반성해야 한다."


검찰은 한만호 전 대표가 출소하기 나흘 전인 지난 2011년 6월 9일 그의 감방을 압수수색하고 비망록을 압수해 갔다. 당시 한명숙 공동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씨는 출소를 앞두고 옥중에서 검찰이 지난 지방선거 직전에 공표한 한 총리 사건을 어떻게 기획했고, 짜 맞춰 왔는지를 밝히는 '진실과 참회의 자필 비망록'을 준비해왔다고 한다"라고 전한 바 있다(2011년 6월 11일). 기자가 '2011년도 다이어리'에서 '한만호 비망록'을 '한명숙 기획수사 비망록'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인터뷰하는 동안 서울구치소의 한 관계자는 기자 옆에서 인터뷰 내용을 훔쳐 기록하려다가 당시 구치소에 나와 있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에게 저지 당하기도 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전화로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라고 '어딘가'에 또 보고했다.

"검사들이 변호사의 입장이 돼서 질문을 던졌다"



한만호 전 대표 출소 인터뷰는 <한만호 "한명숙 전 총리 누명, 곧 벗겨질 것">(관련 기사 : http://bit.ly/12qFCMq)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됐다(2011년 6월 13일). "30여 권 노트와 1만여 장 서류 빼앗겨"라는 그의 발언을 부제로 배치했다.

그런데 '2분 38초'의 출소 인터뷰 가운데에는 검찰을 자극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당시 담당 변호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보도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검찰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군대암기사항을 외우듯 교육시켰다"라고 한 대목 등이다. 검찰의 교육 내용에는 '총리 일정을 피해서 자금제공 날짜를 잡는 방법'이나 '변호사 질문을 피하는 방법' 등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보도하지 못한 기자와 한만호 전 대표의 문답은 이렇다.

-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진술하라, 저렇게 진술하라'고 검찰이 교육시켰나?
"73회에 걸친 출정 기간에, 특히 기소된 이후에 출정을 나가면 늘 하루 3, 4시간씩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군대암기사항을 외우듯 교육시켰다."

- 검사들이 (공판을 대비해) 한 전 총리 쪽 변호사 대역도 했나?
"검사들이 변호사의 입장이 돼서 질문을 던졌다. 총리님 일정을 피해서 자금제공날짜를 잡는 방법, 변호사 질문을 피하는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


당시 보도하지 못한 출소 인터뷰 내용은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한 '한만호 비망록'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검찰은 한만호 전 대표를 매주 불러 '테스트'(TEST, 한 전 대표의 표현)했다.

"변호인 답변을 피해 가는 법이나 윽박지르는 방법" 등을 교육한 뒤 이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를 '테스트'했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를 "시험 본다"라고 표현했다. 한 전 대표는 "출정 전날 방에서, 운동장에서 시험을 준비했다"라고 적었다. 이러한 교육과 테스트를 두고 "사냥개 노릇을 시켰다"라고 하면서 "검찰은 오로지 한 총리만을 겨냥해서 마녀사냥 했다"라고 썼다.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특히 검찰은 처음에 한 전 총리가 '433'('4억 원, 3억 원, 3억 원 세 차례 나눠 전달했다'는 뜻)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332'로 바꾸었다가 '333'으로 하자고 최종 합의했다. 한만호 전 대표가 금액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까 봐 '333'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만호 비망록에는 검찰의 선거개입 의혹을 짐작게 하는 '일화'도 적혀 있다. 검찰이 서울시장 선거 전에 계속 지지율과 여론조사결과를 점검·분석했다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 차이가 나자 한 검사는 "한 사장님, 시장선거 하나 마나 아닙니까?"라며 흐뭇해 했다고 한만호 전 대표는 전했다. 검찰은 이렇게 지지율과 여론조사 결과를 점검하면서 증인들의 허위진술을 언론에 흘리는 '언론플레이'도 병행했다. 한 전 대표는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밖에도 충격적인 내용은 더 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한만호 전 대표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상당수 '검찰의 정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성공하면 가석방, 감형, 수감 편익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전 대표와 접촉해 대화 내용 등을 검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그들을 "공작원" "감시원"이라고 불렀다.

'한만호 비망록'은 '한명숙 사건' 진실규명의 출발점

한명숙 전 총리의 9억 원 수수 사건은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났다. 대법원이 지난 2015년 8월 20일 '8 대 5'로 상고를 기각하며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장은 현재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확정한 항소심(2심)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1심에서는 총 23차례(선고공판 제외) 공판과 현장검증 등을 통해 꼼꼼하게 쟁점들을 확인한 반면, 2심에서는 단 3차례(선고공판 제외)만 공판을 열었고 심지어 핵심증인인 한만호 전 대표는 부르지도 않았다.

1심의 무죄를 뒤집고 유죄(징역 2년 벌금 8억8000만 원)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거를 보강하는 등 더 꼼꼼한 재판이 진행됐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2심의 재판장은 지난 2018년 2월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던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판사였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한만호 전 대표에게 행한 부적절한 행위는 조만간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을 통해 반드시 규명되길 바란다. 검찰에서는 모두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만호 비망록'에 대한 조사는 한명숙 전 총리 9억 원 수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2월 20일 510호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던 한만호 전 대표는 죽을 때까지 그 번복된 진술을 유지했다. 진술 번복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한,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결의에 찬 증언"이었다(2011년 1월 7일 1심 재판부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 중에서). 비망록에도 자기 진술의 신빙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나온다.

"진술 번복으로 보복을 당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사실대로 진술했다."
"진술 번복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어찌 하늘로 머리를 들 수 있나?"

 

구영식(ys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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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이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재판 일지

▲ 1차 곽영욱 사건(5만 달러 수수 의혹)
- 2009년 12월 4일 <조선일보> '한명숙 전 총리 수만불 정치자금' 보도
- 2009년 12월 29일 불구속 기소
- 2010년 1월 28일~4월 9일 13차례 집중심리, 현장검증 등을 거쳐 1심 무죄판결(주심 김형두 판사).
- 2012년 1월 13일 2심 무죄 판결(주심 성기문 판사)
- 2013년 3월 14일 대법원 무죄 확정

▲ 2차 한만호 사건(9억 원 수수 의혹)
- 2010년 4월 8일 <동아일보> '한 전 총리 새로운 혐의 수사 시작' 보도
- 2010년 6월 2일 서울시장 선거, 한 전 총리 0.6%포인트 차이 석패
- 2010년 7월 20일 불구속 기소
- 2010년 12월 6일~2011년 10월 31일 한만호 사건 1심(주심 김우진 판사). 23차례 공판(선고공판 제외), 10여 명 증인신문, 현장검증 거쳐 무죄 판결.
- 2013년 9월 16일 한만호 사건 2심. 단 3차례(선고공판 제외) 공판, 2명의 증인 신문 후 징역 2년 벌금 8억8000만 원 선고(주심 정형식 판사)
- 2015년 8월 20일 대법원 '8 대 5'로 상고 기각. 유죄 확정.

*강기석, <무죄-만들어진 범인 한명숙의 헝거게임 그 현장의 기록>(2016년, 레디앙)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