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⑤ “검찰의 ‘삼인성호’작전..모해위증교사”
(뉴스타파 / 심인보 / 2020-05-25)
https://www.youtube.com/watch?v=ykr79AFC0eQ&feature=youtu.be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핵심 증인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위기에 몰린 검찰은 한만호의 동료 죄수 2명을 반격의 카드로 내세웠다. 이들은 법정에 나와 한만호의 진술 번복이 거짓이라며 검찰의 기소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증언을 했고 언론은 이들의 증언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증인은 법정에서 또 다른 인물, ‘죄수H’를 반복적으로 거명했다. 자신들보다 한만호와 더 가깝게 지냈고 더 자주 얘기를 나눈 인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죄수H였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H를 어렵게 찾아내 그의 증언을 들었다.
죄수H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검찰 측 증인이었던 최OO 씨와 김OO 씨를 포함해 자신까지 3명을 검찰이 불러 한만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기 위한 진술 연습을 시켰다는 것이다. 최초에 협조를 거부하자 아들과 조카를 별건으로 수사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도 했다.
죄수H는 어떻게 한만호와 알게 됐으며, 왜 검찰의 진술 조작에 협조했을까, 그러면서 정작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죄수H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면회를 하면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의 증언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객관적 자료 등을 통해 검증했다.
▲ 죄수H가 뉴스타파에 보낸 자필 편지. 뉴스타파는 죄수H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실관계 검증했고, 올해 초 면회를 가서 인터뷰를 했다.
“한만호, 검찰에서 거짓말 했다며 도움 요청”
한 때 상장사 대표였으나 2006년 경제범죄로 구속된 죄수H는 2010년 3월 서울 구치소의 독방에 수감돼 있었다. 3월 30일 죄수H가 있던 서울 구치소로 한만호가 이감돼 왔다. 한만호는 자신이 구속됐던 사건, 즉 한신 에리어타워 사기 분양 사건과 관련한 형이 확정돼 기결수의 신분으로 통영 교도소로 이감을 갔다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서울 중앙지검 특수부의 요구로 다시 서울구치소로 옮겨 온 것이다.
“저는 서울 구치소 A 관구 4상 2방 독거 수용실에 수용중이었고 통영 교도소에서 서울 구치소로 온 한만호는 5중 2방으로 이동 배정되었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한만호와는 운동 시간 때 처음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한다.
“독거실 수용자들은 운동을 오전 또는 오후 중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었는데, 그 때 한만호 씨는 왜인지 모르게 저에게 오후에 운동하러 나오라고 했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독거실 수감자들의 운동장은 한 명의 교도관이 모두를 감시할 수 있도록 피자판 모양으로 생겼는데, 각 운동실 사이에는 약 2미터 높이의 담장이 있었다. 한만호와 죄수H는 이 담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 죄수H가 편지에 직접 그린 독거실 수용자용 운동장 구조
운동 시간 때 대화를 시작으로, 한만호와 죄수H는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장에서 뿐 아니라 죄수들이 검찰에 출정을 갔을 때 대기하는 장소인 구치감에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당시 한만호가 죄수H에게 털어놓은 얘기는 몇 달 뒤 법정에 나와 증언한 얘기와 똑같았다. 즉, 자신이 검찰에서 허위 진술을 했는데 그 내용이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만호는 도움을 요청했다. 검사들에게 자신의 고백을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죄수H가 다른 사건으로 검사실에 자주 출정을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위의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있으니, 제가 아는 검사에게 위의 사실을 이야기 후 (한명숙)수사팀에게 전달해 달라고, 자기는 검찰이 무섭다고, 추가 건으로 압박당하고 있다고..”
- 죄수H의 편지 중
“검사들에게 한만호 주장 전달했지만...”
죄수H는 처음에 한만호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만나 얘기를 들으며 의문이 나는 점은 질문도 하면서 한만호의 주장을 자체적으로 검증해봤다고 했다. 결국 한만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 죄수H는 2010년 8월 말 자신이 출정을 나가던 검사실의 검사에게 한만호의 얘기를 전달했다고 한다.
“저는 한만호의 모든 진위를 파악하려다보니 선거가 이미 끝난 뒤에야 최초로 한만호의 이야기를 전00 검사께 이야기했습니다. (검사다운 정의로운 검사임) 전00 검사는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그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라면서 그럼 우리 부부장 검사인 홍00 검사께 사실대로 이야기하라 하여 홍00 검사 방에서 위의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죄수H는 전 모 검사와 홍 모 검사의 주선으로 당시 한명숙 사건을 수사했던 특수부 소속 검사까지 만나 한만호의 얘기를 전달했다고 한다.
뉴스타파는 당시 죄수H가 한만호의 얘기를 전달했다고 하는 전 모 검사와 홍 모 전 검사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현직인 전 모 검사는 뉴스타파 질의에 전혀 답변하지 않았다. 홍 전 검사는 “죄수H를 알고는 있지만 피의자로 조사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피의자로 조사한 적은 없는데 죄수H를 알고 있다면, 뭔가 다른 건으로 죄수H를 만난 적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 전 검사는 그러나 죄수H를 불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퇴직한 검사로서 과거의 일을 불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실제 뉴스타파가 죄수H의 출정 기록을 확인한 결과 홍 전 검사 방으로 출정을 간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죄수H가 한만호의 주장을 검찰에게 전달한 시점은 2010년 8월 말, 이미 서울시장 선거도 끝났고 검찰이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을 기소한 시점이었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한만호의 주장을 받아들여 모든 일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온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검찰의 설득과 회유
죄수H가 한만호의 주장을 검찰에 전달한 이후, 검찰은 죄수H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료 죄수였던 김 씨가 “검찰에 협조하라”며 죄수H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죄수 김 씨는 몇 달 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게 될 바로 그 죄수였다. 동시에 서울 중앙지검 특수부는 H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죄수H와 증인 김 씨의 출정 기록을 확인한 결과 2010년 8월 31일 죄수H와 증인 김 씨가 같은 검사실에 소환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죄수H와 증인 김 씨는 같은 사건에 연루된 바가 없었다. 그날 검찰은 죄수H에게 별다른 얘기도 하지 않고 외부 통화 등의 편의만을 제공했다는 게 H의 주장이다. 죄수H의 동향을 파악하고 회유를 하기 위한 사전 정지 단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증인 김 씨는 검찰과 어떤 관계였기에 죄수H를 설득하고 함께 검사실에 출정을 나가기도 한 것일까. 김 씨의 출정 기록에서 수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김 씨는 2010년 3월 15일부터 서울 중앙지검 1020호 검사실에 출정을 가기 시작한다. 4월 말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마치 직장에 출근하듯 같은 검사실에 불려 나갔다. 1020호 검사실은 한명숙 2차 뇌물 사건, 즉 한만호 사건을 수사하던 중앙지검 특수1부였다.
▲ 빨간 동그라미가 증인 김 씨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1020호에 출정을 간 날이다. 공교롭게도 4월 1일 한만호가 같은 10층 특수부에 불려간다.
한만호는 4월 1일부터 같은 10층, 특수 1부의 다른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즉, 검찰이 한명숙 사건으로 한만호를 처음 소환한 4월 1일을 전후해 김 씨 역시 특수 1부에 집중적으로 소환됐다는 말이다. 단순 사기범이었던 김 씨가 특수부 사무실에 반복적으로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 죄수H는 김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미 그해 서울시장 선거 전부터, (김 씨는) 검찰에 협조를 하고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검찰하고 한 몸이었고...”
- 죄수H 인터뷰 중
검찰 증인으로 나선 또 다른 죄수 최 씨의 출정 기록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최 씨의 출정 기록을 확인한 결과 2010년 6월부터 8월 사이, 김 씨와 같은 날 같은 검사실에 출정을 다닌 횟수가 12번이나 됐다. 둘이 같이 출정을 다닌 검사실은 1104호, 강력부 검사실이다. 최 씨는 마약, 김 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인물인데 전혀 다른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두 사람이 이렇게 같이 출정을 다닌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당시 수사팀은 대검찰청을 통해 “당시 김 씨와 최 씨가 함께 출정을 다닌 검사실은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던 특수부 검사실이 아니어서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아들 수사하겠다 협박… 어쩔 수 없이 검찰에 협조”
그러던 중, 앞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2010년 12월 20일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검찰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검찰은 죄수H를 계속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죄수H는 출정을 거부했다. 자신이 전해준 한만호의 얘기를 듣고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검찰을 불신했기 때문이다. 죄수H의 출정 기록에는, 당시 그가 검찰의 출정을 거부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 죄수H의 출정기록.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뒤 검찰에서 출정을 요구하지만 H가 거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월28일은 H가 다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날인데, 이날 특수부 수사관이 법원으로 찾아와 검사실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고 H는 주장했다.
죄수H가 출정을 계속 거부하자 검찰은 몸이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가 다른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날 검찰 수사관이 법원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특수 1부 1128호 신00 계장이 위의 재판부 재판대기실까지 찾아와서 저보고 반강제적으로 왜 출정을 거부하느냐 하여, 이후로도 출정 요청시 역시 거부할 것이니 더는 요청치 마라 했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어쩔 수 없이 검사실에 출정을 나가도 H는 증언 협조를 거부했다.
“외적으로는 계장들이나 검사들이 “최00이 그러는데, (한만호로부터) 들은 내용이 있다고 그러는데 그 내용에 대해 말해줄 수 있냐?” “나 그런 거 말해줄 내용도 없고 협조할 내용도 없다” 하고서 몇 번 제가 거부를 하고 부르면 또 나가서 거부하고…”
- 죄수H 인터뷰 중
그러자 검찰은 H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죄수H의 아들과 조카를 별건으로 조사하겠다며 검사실로 소환했다는 것이다. H가 주식매매에 아들과 조카 명의의 계좌를 이용했는데, 그 차익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며 H의 아들과 조카를 검사실로 불렀다. 그러면서 죄수H에게는 “아들이 미성년자이므로 금융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는 부모의 기명 날인이 필요하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출정에 응하라”고 구치소 직원을 통해 전달했다. 죄수H의 아들은 1991년 생, 만 20살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결국 어린 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이런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한,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을 보고서 출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검찰이 재소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들까지 불러 별건 조사를 시도했다는 H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사실일까. 그대로 믿기 어려운 주장이어서 검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H의 아들과 조카가 검찰청에 출입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H의 아들에게 동의를 얻어 검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확인 결과, 2011년 2월 14일 H의 아들과 조카가 서울 중앙지검 1128호에 출입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H의 출정기록에도 같은 날, 같은 검사실에 출정을 간 사실이 남아있었다.
▲ 죄수H의 조카(위)와 아들(아래)의 서울중앙지검 출입내역. 2011년 2월 14일 H의 아들과 조카는 함께 서울지검을 방문했다. 이들이 방문한 1128호는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던 특수1부였다.
H의 아들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당시 검찰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말했다. “갑자기 검사실로 가게 돼서 좀 당황했는데 아버지가 걱정말라고 얘기해줬다. 어떤 일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거기에 있는 검사분을 도와주는 거라고 들었다”라고도 말했다.
“아들 주식 산 부분으로 인해서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더라고, (협박)하면서 저를 (증언하라고) 종용하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일단은 그러면 너네가 갑이지만, 차후에는 내가 갑이 돼야겠다, 해서 그 부분 때문에 제가 이 악물고 또 얘네들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를 (보자) 했었죠. 하고서 걔네들(검사들) 조작하는 그런 모든 부분에 제가 협조를 했었던 것이거든요.”
- 죄수H 인터뷰 중
H의 아들과 조카를 왜 소환했는지 검찰에 물었다. 검찰은 당시 H가 한만호에게 “출소 뒤 한명숙에게 돈을 받으면 건설회사를 인수해 동업을 하자”고 제안을 한 것으로 파악돼, 실제 아들과 조카를 통해 건설 회사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H의 아들은 이에 대해 당시 검찰에서 받은 구체적 질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H의 아들은 1991년생으로 당시 만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여서 H가 아들을 통해 건설사를 인수하려고 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한만호 죽이기 위한 ‘삼인성호’.. 검찰에 집체교육 받았다”
2011년 2월, 아들과 조카를 겨냥한 검찰의 압박에 죄수H는 결국 당분간 검찰에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상습 사기범 김 씨, 마약 사범 최 씨, 그리고 검찰에 한만호의 진실을 전달한 죄수H가 검찰의 지휘 아래 한 팀이 된 것이다. 이 팀의 목적은 한만호의 법정 진술을 탄핵하는 것, 즉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한만호의 진실을 알고 있던 죄수H를 가담시켜 입을 막을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팀을 이룬 뒤 이들은 검찰청 특수부 검사실에서 무엇을 했을까.
죄수H는 검찰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H와 김 씨, 최 씨는 때로는 2명씩 짝을 지어, 때로는 3명이 모두 함께 검찰청 특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죄수H는 당시 검찰 조사를 ‘집체 교육’이라고 표현했다.
“최00, 김00을 지속적으로 집체교육하고 있던 검찰은, 이때부터는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던 저의 입을 막기 위해 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저를 합류시켰습니다.”
- 죄수H의 편지 중
집체 교육의 순서는 이랬다고 한다. 검찰이 PC로 작성한 진술서를 이 3인에게 손으로 베끼게 해 자필 진술서를 만든다. 그리고 이 진술서를 가지고 반복 연습을 한다. 연습을 하다가 말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진술서를 수정한다. 심지어 영상녹화실에서도 이들의 진술을 녹화했다고 한다. 죄수H는 영상녹화실에서의 녹화를 “헐리우드급 연기”라고 표현했다.
“(기자: 진술연습을 할 때 (검찰이) 딱 써놓은대로 이렇게 연습을 시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딱 걔네들(검찰)이 작성해놓은 대로 연습을 했고 중요한 건 1048호에서 3자가 같이 모였어요. 최00하고 김00하고 저. (연습할 때 서로) 말이 틀리니까. 그래서 말을 거기다 같이 맞춰요. 검찰이 PC에다 써주는 대로 베꼈고 그걸 확대하고 재생산해서 만든 것들입니다. 걔네들도 그렇고 저도 그랬어요.”
- 죄수H 인터뷰 중
죄수H의 출정 기록에는 2011년 1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던 특수 1부에 스무 차례 출정한 기록이 남아있다. 거의 대부분 증인 최 씨의 출정 기록과 겹친다. 다만 증인 김 씨는 당시에 이미 출소한 상태여서 출정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비교가 불가능했다.
죄수H는 이 모든 과정을 “검찰이 한만호를 죽이기 위한 삼인성호”의 계획이라고 표현했다. 즉 세 명의 죄수에게 증언을 연습시킨 뒤 한 사람씩 법정에 내보내 한만호의 진술을 탄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김 씨가 나가 증언을 하고, 변호인 측의 반박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두 번째로 최 씨가 나가 증언을 하고, 그래도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죄수H 자신이 나가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얘네들이 증인으로 나가서 한 전 총리 측 증인들이 말하는 것하고 잘 안 맞을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어긋나는 부분은 그 다음 사람이 증인 나가서 복구하고 그러고서 또 복구하고 그런 거예요. 한만호를 죽이기 위한.. 쟤(한만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얘 진술에 대한 번복을 하기 위한 몰이꾼 3명일 뿐이었으니까..”
- 죄수H 인터뷰 중
이런 관점에서 보면, 증인 김 씨와 최 씨가 법정에서 반복적으로 죄수H를 지목하며 “한만호의 진술 번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라고 주장한 이유도 짐작이 된다. 죄수H에게 ‘마무리’를 맡기려고 했던 검찰의 계획대로 먼저 나선 두 증인이 복선을 깔아둔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에 따르면, 증인 김 씨와 최 씨가 법정에 나와 증언을 했을 때 한만호도 검찰이 이들에게 모종의 교육을 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김 씨와 최 씨가 관련 증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이들에게 사건 얘기를 구체적으로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죄수H의 증언은 한만호의 의심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죄수가 검사실에 출정 조사받으며 검사에게 식사 접대”
죄수H의 증언은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죄수H에게 아주 사소한 기억이라도 검증 가능한 것이 있으면 기억해내줄 것을 요청했다. 죄수H는 자신이 ‘집체 교육’을 받으면서 검사와 수사관 등에게 이른바 ‘한턱’을 낸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밖에 있는 직원이나 친지를 시켜서 고급 음식을 배달시켜 줬다는 것이다. 유명한 식당과 고가의 호텔 식당에서도 음식을 배달시켰다고 했다. 뭔가 객관적인 기록과 근거를 남기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했다. 검사들은 죄수H가 시킨 음식을 “잘 먹었다”고 한다.
“조카가 (한 번) 사오고 윤00이라는 직원이 한 7-8번 사오고.. 간식이 수육, 족발, 그리고 담배 이런 것들. 이게 뭐냐 하면요, 제가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 검사들, 부장들, 그리고 우리들.. 최00 김00까지 같이 먹는 용으로 한 10인분 씩 그렇게 사오라고 해서 계속 먹였어요.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서.”
- 죄수H 인터뷰 중
당시 수사팀은 대검찰청을 통해 뉴스타파에 H로부터 접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사실일까.
당시 음식 심부름을 했다는 직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H의 조카에게 검찰 출입기록이 있는 날 카드 사용내역을 발급 받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11년 3월 1일 오후 5시 10분, H의 조카가 검찰청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1시간 전인 4시 5분, H의 조카는 한 초밥집에서 52만 5천 원을 결제했다. 해당 초밥집을 찾아가 보니 검찰청으로부터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이 식당은 2011년에도 영업 중이었으며 당시 초밥 도시락 1인분에 3-4만 원 정도 였다고 했다. 최소한 10인 분 이상을 사갔다는 얘기다.
▲ 죄수H의 조카 검찰 출입 내역(위)과 카드 사용 내역(아래). 검찰청에 들어간 3월 1일 오후 5시 10분으로부터 한 시간 전 초밥집에서 52만 5천 원을 결제했다.
H의 조카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청이 무턱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나. 삼촌(죄수H)이 검사실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초밥을 사오라고 제게 전화를 걸어 초밥을 사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50만 원어치 초밥을 누가 먹겠는가”라고도 덧붙였다.
죄수H가 말한 ‘집체 교육’은 사실일까? 당시 세 사람이 출정을 다녔던 서울 중앙지검 1128호의 엄희준 검사는 뉴스타파가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을 하지 않았다.
특수 1부의 부부장이었던 임관혁 검사는 “한명숙 사건의 공판에 관여했을 뿐 수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수 1부장이었던 김기동 전 검사는 “당시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원론적인 답변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대검찰청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당시 수사팀은 대검찰청을 통해 “죄수 H는 한만호에게 위증, 즉 진술 번복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조언을 한 인물이어서 다른 2명의 증인과 교차 확인을 하기 위해 함께 소환했을 뿐 진술연습 등 집체 교육을 했다는 건 명백한 허위”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쏘지 못한 ‘세 번째 화살’
증인 김 씨와 최 씨, 죄수H는 검찰이 법정에서 한만호의 진술 번복을 탄핵하기 위해 준비한 ‘세 개의 화살’이었다. 세 개의 화살 가운데 두 개는 검찰의 뜻대로 쏘아졌고, 과녁을 명중시켰다. 2011년 2월 21일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7차 공판에 증인 김 씨가 출석해 증언을 했고, 3월 7일 8차 공판에는 증인 최 씨가 출석했다. 언론은 이들의 증언을 대서특필하며 한만호가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내용이 허위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검찰이 준비한 세 번째 화살은 끝내 쏘지 못했다. 자신의 법정 증언이 다가오자, 죄수H가 폭탄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제가 최00, 김00을 통해서 말했어요. 제가 이번에 증인 나갈 건데, 나 이번에 법원 나가면 양심선언 할 거다. 저 검사 저 새끼가 다 조작했고 저 놈이 조작해서 이렇게 다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리고 이 검사 뿐이 아닌 그 지휘 라인 전체가 이렇게 주목했다는 거를 내가 양심선언할 거다, 하고서 제가 (검찰청) 출석 거부를 내버려요.”
- 죄수H 인터뷰 중
실제로 3월 말 부터 4월 사이 죄수H의 출정 기록에는, 그가 특수 1부의 출정 요구를 4차례 거부한 사실이 남아있다. 그가 검찰에 협조하기 시작할 당시 결심한 것처럼 이번에는 그가 ‘갑’이 된 것이다. 검찰이 아들을 이용해 협박했을 때는 검찰이 ‘갑’이었지만, 이제 검찰의 기획을 폭로하겠다고 하면서 본인이 ‘갑’이 됐다는 뜻이다. 이렇게 결국 죄수H의 법정 증언은 무산됐다. 죄수H가 법정에 나가서 하려고 했던 ‘양심선언’은 그로부터 9년 뒤, 뉴스타파가 그를 찾아낸 이후에야 마침내 성사된 셈이다.
검찰은 죄수 H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수사팀이 H를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짧게 답변했다.
▲ 죄수H의 출정기록. 특수부 1128호에 계속 출정을 다니다 2011년 3월 28일부터 출정을 4차례 거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증인 김 씨, 위증은 부인했지만 ‘횡설수설’
뉴스타파는 죄수H의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그와 함께 ‘집체 교육’을 받았다는 증인 최 씨와 김 씨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약 사범 최 씨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과거 전화 번호는 이미 바뀐 상태였고, 과거 주소지에도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의미있는 행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명숙 1심 재판 2년 뒤인 2013년, 최 씨가 “검찰에 영향력을 발휘해 동료 죄수의 구형량을 깎아주겠다”는 명목으로 1,700만 원을 받아 챙겨 기소가 됐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최 씨가 구치소에서 검사와 죄수들을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뉴스타파는 상습 사기범이었던 김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그를 잘 안다는 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지인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 씨의 아버지로부터 김 씨와 그 형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아 소개를 받았다”면서 김 씨를 알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연예인들과의 친분을 활용해 공연 기획사로 업종 전환을 할테니 투자를 하라”는 김 씨의 말에 속아 3-4억 원을 투자했지만 어느 날 김 씨 형제가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바람에 돈을 모두 날렸다고도 했다. 김 씨의 지인은 김 씨가 법정에서 증언한 것처럼 건설업에 종사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니예요. 건축업 했던 놈이 아니에요. (전혀?) 전혀 아니지. 지가 무슨 건축업을 해. 그래서 한만호를 알았다? 그래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갔다? 이거 거짓말이에요. 내가 알고 있기로는.”
- 검찰 측 증인 김 모 씨 지인 인터뷰 중
이와는 별도로, 김 씨가 출소 이후 또 다른 사기 혐의로 다시 기소된 사실도 확인됐다.
김 씨와는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한명숙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라고 밝히자 전화를 바로 끊던 김 씨는 이후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본인이 보도 내용에 포함된다는 문자를 보내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지시를 받고 위증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해명은 출정 기록과도, 그 자신의 법정 진술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우선 김 씨는 법정에 나와서는 “한만호를 구치감에서 처음 만난 2010년 4월 1일 한명숙 총리한테 돈을 줬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는 “(한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일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얘기여서 감옥에서 한만호를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법정에서는 “출소한 뒤에는 한명숙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는데,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는 “한명숙 사건 때문에 출소한 이후에도 검찰에 다녀서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죄수H와 함께 특수부 출정을 다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죄수H와 함께 특수부 사무실에 가본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죄수H와 김 씨의 출정 기록을 보면 같은 날 같은 특수부 사무실에 출정을 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검사들 위증교사 및 직권남용.. 재심도 가능”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한 인하대 법률전문대학원의 김인회 교수는, 죄수H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검사와 수사관들의 불법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사실 관계는 더 정확하게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증인의 증언이 위증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위증교사 또는 모해위증교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검사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도록시킨 것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에도 해당될 것으로 보입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률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중
또 위증이 확인될 경우 원칙적으로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도 말했다. 다만 위증에 대한 확정 판결이나 그에 준하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증인 김 씨와 최 씨의 위증 그리고 이를 지시한 검사들의 (모해)위증교사에 대한 수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증인의 증언이 위증이라고 한다면 그 재판은 잘못된 증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재심을 통해 바로잡아야 합니다.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경우이기 때문이죠. 잘못된 증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서 재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 재판주의에 의하더라도 다시 재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위증을 했다는 확정판결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서는 당시 위증을 한 것으로 지금 의심을 받고 있는 분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고 기소도 필요하고 재판을 거쳐야 하겠죠.”
- 김인회 인하대 법률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중
뉴스타파는 <죄수와 검사> 두 번째 시즌을 통해 우리 사법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을 다시 취재해 보도했다. 그 결과 핵심 증인 한만호의 비망록을 발굴해 공개했고,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검찰의 중대한 범죄 행위 의혹을 폭로했다. 취재 내용이 수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을 다시 재판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가능성이 있다.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는, 검사와 죄수들이 결탁한 ‘검은 생태계’를 더욱 깊이 파헤칠 예정이다.
출처: https://newstapa.org/article/Ap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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