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영생 권력’ 검찰

道雨 2020. 12. 2. 09:11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영생 권력’ 검찰

검찰개혁을 이렇게 시끄럽게 끌고 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뜩이나 민생이 고달픈데, 끝없는 ‘추미애-윤석열 충돌’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9부 능선에 오른 검찰개혁을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 분명하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힘을 빼고 나눠, 통제와 견제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개인적으로는 국민의 선택과 위임으로 작동하는 민주적 정치 과정에 검찰이 멋대로 개입하고 판을 흔드는 검찰권력 과잉 시대를 끝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꼽고 싶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를 좌지우지한 역사를 우리는 오래 겪어왔다. 철권을 휘두르던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민주화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그러나 관료 권력기관에까지 온전히 민주적 통제가 미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법치의 외관이 중요해지면서 검찰이라는 관료기관의 힘은 갈수록 세졌다.

그나마 권위주의 정권에선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조종했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에 독립성을 주고 수사에 아예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패했다. 제어장치 없이 독립성만 보장하자, 검찰은 폭주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엔 개입하지 않되 통제와 견제 시스템을 갖추는 쪽을 택했다.

그러자 검찰이 팔다리 잘리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수사권 조정 같은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개혁의 정당성을 흔들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검찰은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구조다. 제왕적 총장이 어떤 맘을 먹느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독점적 강제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결과 앞에 한국 사회는 전율한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역대급 수사력을 투입해 표창장부터 사모펀드까지 탈탈 털었다. 대통령의 인사권, 국회 청문회라는 정치 과정은 뭉개버렸다. 정작 권력형 비리라 할 중대 혐의는 아직까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뒤이어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대통령 직함을 35번 언급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해 끼워넣은 짜깁기 공소장을 썼다. 이를 받아 당시 미래통합당은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국민의 선택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한 행보였다.

검찰의 과잉·표적 수사는 수구 매체, 보수야당 등과 때로 합을 맞춘 듯 진행됐다. 보수야당 대상 수사는 지지부진 지리멸렬했고, 총장은 조선·중앙일보 사주와 회동했다. 검찰이 수사하면 수구 매체가 부풀리고, 또 검찰은 수사 확대로 답하는 ‘증폭의 나선 구조’가 가동됐다.

한동훈 검사장이 4·15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혐의) 찾아다닌다’는 채널에이 기자에게 “그건 해볼 만하지”, “그런 거 하다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화답한 검·언유착 사건에선, 유권자의 선택을 흔들려는 ‘기득권 동맹’의 욕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윤 총장은 이런 한동훈을 보호하려 ‘3겹 방어막’을 쳤다.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 검찰이 내미는 마법의 주문이 ‘살권수’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정의라는 주장이다. 살권수를 외는 순간 과잉수사는 기개, 편파수사는 산 권력과 죽은 권력에 대한 균형잡기로 포장된다. 그러나 산 권력, 죽은 권력은 그저 메타포일 뿐이다. 민주화된 국가에선 ‘죽은 권력’ 야당도 의석수만큼의 산 권력을 누린다.

누대 정권에서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은 그야말로 ‘영생 권력’이다. 이 모든 권력의 비리를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정의이다. 그러나 윤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검찰개혁”이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정치적 중립을 박차고 ‘선택적 정의’를 정당화한 터다. 물론 선택은 검찰이 한다.

 

통제를 벗어난 국가기관이 스스로 권력화한다는 경고는 현대 정치학과 사회학이 공히 내놓은 통찰이다.

선출되지 않은 영생 권력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검찰개혁이다.

 

 

손원제 ㅣ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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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2317.html#csidxab44a2c954e01c7982f27ac1ce85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