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가난의 품격, 그리고 혼자 노는 즐거움

道雨 2021. 1. 14. 14:41

가난의 품격

 

가난한 사람에게도 품격과 품위가 있다.

부귀와 권세와 이익 앞에 당당했던 이덕무의 삶과 철학은 자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하나가 '선귤당'이라면, 다른 하나가 '청장관'이다. 

선귤당(蟬橘堂)은 '매미()'과 '귤()'을 취해  지은 자호다. 이덕무는 말하였다.

"내가 예전 남산 부근에 살고 있을 때 집의 이름을 선귤이라고 했다. 집이 작아서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다는 뜻에서였다."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했던 이덕무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청장관(靑莊館)은 이덕무가 죽음을 맞은 곳이다. 생전 그의 글과 기록을 모두 모아 엮은 책의 제목 또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다. 이덕무를 대표하는 자호이자 당호(堂號)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청장관을 호로 삼은 까닭을 박지원이 증언하였다.

 

"청장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욕심없고 순박했던 이덕무의 삶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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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는 즐거움

  - 내가 나를 벗으로 삼다.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자칫 뜻을 잃기 쉽다. 

세상의 찬사와 비난에 지나치게 귀를 귀울이면 마음만 혼란해진다. 오히려 서책 속 옛사람과 자연 만물을 벗 삼아 고요하게 사는 것이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을 늘려보라.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곧 또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혼자 노는 즐거움이 바로 그곳에 있다. 

 

 

 

*** 「문장의 온도」(이덕무 지음, 한중주 엮고 옮김. 다산초당)에서 일부 발췌하여 옮겨온 것이다. 

*** 이덕무의 산문집으로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가 있고, 그의 글과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이다.

 

*** '무사 백동수'로 유명한 백영숙이 이덕무의 처남이다.

 

 

이덕무(李德懋)

 

* 출생1741(영조 17), 사망1793(정조 17)

* 조선 후기의 학자. 규장각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하고 조사하여 교정하였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칠십 리 눈길을 걷고>, <이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 규장각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했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전주. 자는 무관(懋官), 호는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형암(炯庵)·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성호(聖浩)이다. 서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병약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총명하여 가학으로 문리(文理)를 터득했다. 약관의 나이에 박제가·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 巾衍集〉이라는 시집을 내어 문명을 중국에까지 떨쳤다. 이후 박지원(朴趾源)·박제가·홍대용(洪大容)·서이수(徐理修)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고염무(顧炎武)·주이존(朱彛尊)·서건학(徐乾學) 등 중국 고증학파의 학문에 심취하여, 당대의 고증학자였던 이만운(李萬運)에게 지도를 받았다.

1778년(정조 2)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심염조(沈念祖)의 서장관으로 청의 연경(燕京)에 갔다. 이때 기균(紀均)·당악우(唐樂宇)·반정균(潘庭均)·육비(陸飛)·엄성(嚴誠)·이조원(李調元)·이정원(李鼎元)·이헌교(李憲喬)·채증원(蔡曾源)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돌아올 때 그곳의 산천·도리·궁실·누대(樓臺)·초목·충어(蟲魚)·조수(鳥獸)에 이르는 기록과 함께 많은 고증학 관계 서적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그의 북학론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1779년 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초대 규장각 외각검서관(外閣檢書官)이 되었다. 근면하고 시문에 능했던 그는 규장각 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장원하여 1781년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이 되었으며, 사도시주부·사근도찰방·광흥창주부·적성현감 등을 거쳐, 1791년 사옹원주부가 되었다. 그는 규장각의 도서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전통편 大典通編〉·〈규장전운 奎章全韻〉·〈기전고 箕田攷〉·〈도서집성〉·〈국조보감〉·〈규장각지〉·〈홍문관지〉·〈검서청기 檢書廳記〉·〈시관소전 詩觀小傳〉·〈송사전 宋史筌〉 등을 정리·교감했다.

1793년 병사했는데, 정조는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장례비와 유고집인 〈아정유고 雅亭遺稿〉의 간행비를 내렸다. 서화(書畵)에도 능했다. 저서로는 〈영처시고 嬰處詩稿〉·〈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기년아람 紀年兒覽〉·〈사소절 士小節〉·〈영처문고 嬰處文稿〉·〈청비록 淸脾錄〉·〈뇌뢰낙락서 磊磊落落書〉·〈영처잡고 嬰處雜稿〉·〈관독일기 觀讀日記〉·〈앙엽기 盎葉記〉·〈입연기 入燕記〉·〈열상방언 洌上方言〉·〈예기고 禮記考〉·〈편찬잡고 編纂雜稿〉·〈협주기 峽舟記〉·〈천애지기서 天涯知己書〉·〈한죽당수필 寒竹堂隨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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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책 소개

 

최근에 다산초당에서 발간한 「문장의 온도」(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고 옮김)를 감명깊게 읽고, 여기에 소개한다.

 

이 책의 겉표지에 써진 글만으로 충분히 좋은 소개가 될 듯 하다.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 이 책의 부제목이다.

 

* 가장 빛나는 것들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때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을 더 많이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바로 소소한 일상이다. 크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루하루마주하는 작은 것들, 그러니까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노을의 빛깔에서, 눈 내리는 밤의 풍경에서, 활짝 핀 꽃과 차 끓는 소리에서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덕무의 글은 우아하고 훌륭하다. 그의 재주와 식견을 잊을 수 없다."  (정조 이산)

 

"만약 공자와 같은 성인이 다시 나타나 여러 나라의 풍속을 관찰한다면, 마땅히 조선에서는 이덕무의 글을 살펴볼 것이다."  (연암 박지원)

 

"그의 문장은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  (반정균 - 청나라 지식인)

 

"이덕무의 글은 기이하고 괴이하며 또한 날카롭고 새롭다.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시풍을 열었다."  (소호당 김택영 - 구한말 한시가)

 

이상 책표지에 소개한 사항과 더불어 특별한 사람이 책갈피에 더해졌으니,

 

"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  (대통령 문재인)

 

추가 : "어떻게 글을 머리와 가슴으로만 쓴단 말인가? 글이란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  (한정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