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 지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작호론(作號論) : 명(名), 자(字), 호(號)
- 이름[명(名)]과 자(字)와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 머리말 : 호(號)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최소한 셋 이상의 호칭을 지니고 있었다. 명(名)과 자(字)와 호(號)
명(名)이란 ‘이름’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과 같다.
자(字)는 관례(冠禮, 성인식)를 치르고 짓는데, 그 까닭은 ‘이름을 귀하게 여겨서 공경하기 때문’이다.
관례를 치르고 나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字)를 지어 부르도록 했다. 다, 자를 지을 때는 반드시 이름(名)과 연관 지어 짓도록 했다.
관례는 대개 15~20세 때 행해진다. 명(名)과 자(字)는 부모나 어른 혹은 스승이 지어주는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반면, 호(號)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뜻한 바가 있거나 마음이 가는 사물이나 장소에 따라, 또는 어떤 의미를 취해서 제멋대로 지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지어줄 수도 있는 호칭이다.
(예)
* 자신이 좋아하는 지명(地名)을 호로 삼음 : 율곡(栗谷, 이이), 교산(蛟山, 허균), 연암(燕巖, 박지원)
* 마음에 품고 있는 뜻과 의지를 호로 표현 : 퇴계(退溪, 이황), 초정(楚亭, 박제가), 순암(順菴, 안정복)
*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좇아 호를 지음 :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의 이름 혹은 호를 따옴 : 단원(檀園, 김홍도), 완당(阮堂, 김정희)
* 고전(古典) 속에서 자신의 뜻과 철학을 찾아 지음 : 면앙정(俛仰亭, 송순 : 孟子), 남명(南冥, 조식 : 莊子)
* 스스로를 희화화한 해학적인 호 : 삼혹호(三酷好, 이규보 : ‘시, 거문고, 술을 심하게 좋아함’), 어우당(於于堂, 유몽인 : ‘쓸데없는 소리로 뭇사람을 현혹케 한다’)
* 자신의 용모나 특징을 드러냄 : 표암(豹菴, 강세황 : ‘등에 있는 흰 얼룩무늬가 표범의 털 무늬와 닮았다’), 미수(眉叟, 허목 : ‘눈썹이 길어 눈을 덮었다’)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 부록 1 : 자설(字說) : 자(字)란 무엇인가?
# 이름(名) 이외에 자(字)를 지은 까닭은?
태어난 후 가장 먼저 갖게 되는 것은 ‘이름(名)’이다.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그 사람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는 만큼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다.
예기(禮記)에서는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서는 안 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밝힘.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나라의 이름으로 짓지 않고, 해와 달 혹은 간지(干支)로 짓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흠집으로 짓지 않고, 산과 하천의 이름으로 짓지 않는다.
- 『禮記』, 「曲禮 上」
옛사람들은 이름을 귀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 역시 금기로 여겼다.
- 기휘(忌諱, 임금이나 성현의 이름을 피해 쓰도록 함).
- 피휘(避諱, 문장에서 임금이나 높은 이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획의 일부를 생략함)
이름을 귀중하게 여기고 공경했기에, 성인이 되는 관문인 관례(冠禮)를 치르고 나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멋하고 자(字)를 지어 부르도록 한 것이다.
자(字) 역시 대부분 부모나 친척 혹은 어른이나 스승이 지어주는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지어 사용할 수 없었으나, 간혹 본인이 직접 자(字 )를 짓는 경우도 있었다.
관례를 치르고 자(字)를 갖게 되는 것은 곡 성년이 되었다는 징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옛사람들에게 자(字)는 이름 못지않게 중요했고, 이때부터 이름대신 자(字)를 불렀기 때문에, 자(字)는 곧 특정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 자(字)는 이름(名)과 연관 지어 짓는다!
관례의 의식을 치르고 자(字)를 받을 때는, 그렇게 자(字)를 지은 뜻과 의미 혹은 이유 등을 밝히는 글을 꼭 함께 지어줬다.
자(字)를 지을 때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는데, 자(字)는 반드시 이름(名)과 연관 지어 짓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개 자설(字說)은 이름(名)과 자(字)의 상호 연관성 혹은 상호 보완성을 밝히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예)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변계량이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자(字)에 대해 쓴 「효령대군자설(孝寧大君字說)」
효령대군의 이름인 ‘보(補)’는 ‘깁다’, ‘떨어진 곳이나 해진 곳을 꿰매다(또는 고치다)’는 뜻을 지닌 글자다. 변계량은 이 보(補)와 상호 연관성이 있는 글자로 ‘선(善)’자를 취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허물을 깁는[補] 일을 잘하는[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허물을 저질렀다면 선(善서)으로 이를 기우면[補]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善)은 ‘잘하다’ 또는 ‘착하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변계량은 ‘보(補)와 선(善)’의 이러한 상호 연관성을 이유로 들면서, 효령대군의 자(字)를 ‘선숙(善叔)’이라 지어준 것이다.
(예)
이덕무는 16세에 관례를 치르고 지었던 명숙(明叔)이라는 자(字)가 너무나 흔해 자(字)를 짓는 본래의 뜻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28세 때 이를 고쳤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이름인 덕무(德懋)와 상호 관련성이 있는 자(字)를 『서경(書經)』의 ‘덕무무관(德懋懋官)’이라는 구절에서 찾아냈다.
여기에 나오는 ‘덕무무관(德懋懋官)’의 유래를 살펴보면, 중국의 고대국가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정벌하고 새로이 상(은)나라를 세운 탕왕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중훼가 천하의 민심이 탕왕에게 있는 일곱 가지 이유를 밝히면서, 그 가운데 세 번째로 든 것이 다름 아닌 ‘덕무무관(德懋懋官)’이다. 그 뜻을 해석하자면, ‘덕(德)이 많은[懋] 사람에게는 벼슬[官]을 성대하게[懋] 내려주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서얼이라는 신분 굴레에 매여있지만, 어진 임금이 나와 서얼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한다면 자신을 알아보고 등용할 것이라는 이덕무의 뜻과 소망까지 담고 있는 듯한 ‘자설(字說)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자(字)는 이름의 뜻과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도 하고, 혹은 그 이름의 결점을 보완해주기도 하고, 혹은 이름이 지닌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짓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이름[名]과 ‘상호 연관성’이나 ‘상호 보완성’을 갖도록 짓는 것이 좋은 자(字)가 된다.
# 자(字)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명(名)과 자(字)와 호(號)로 대표되는 호칭은 제각각 그 나름 알맞은 용도가 있었다.
- 명(名) : 족보나 간직과 같은 공식 문서나 기록에 사용
- 자(字) : 윗사람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사용. 아랫사람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다.
- 호(號) : 아랫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부를 수 있었다.
(예)
이황은 이이보다 35세 연상인데, 이 두 사람은 12년 동안 십여 차례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때 이이는 편지의 말미에 ‘상퇴계선생(上退溪先生)’ 즉 ‘퇴계선생에게 올리다’라고 이황의 호를 적은 반면, 이황은 ‘답이숙헌(答李叔獻)’, 곧 ‘이숙헌에게 답하다’라고 이이의 자(字)를 사용해 편지를 보냈다.
또한 이황은 동갑내기였던 조식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조건중(與曺楗仲, 조건중에게 보내다)’이라며 자(字)로 불렀고, 조식은 이에 대해 답장을 보내면서 ‘답퇴계서(答退溪書)’라고 해 호(號)를 썼다.
이렇듯 윗사람이나 동년배 혹은 친구들과 글을 주고받을 때는 대부분 자(字)를 사용했기 때문에, 옛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자(字)를 모를 경우 난감하게 되기도 한다.
# 조선 선비들의 자(字)
이름(名) |
자(字) |
자(字)의 의미 |
김굉필 |
대유(大猷) |
큰 것을 꾀함 |
김시습 |
열경(悅卿) |
벼슬을 기뻐함 |
김육 |
백후(伯厚) |
우두머리로서 두텁게 |
김정희 |
원춘(元春) |
으뜸 |
김홍도 |
사능(士能) |
선비만이 능히 할 수 있다. |
박세당 |
계긍(季肯) |
끄트머리에 만족함 |
박제가 |
재선(在先) |
먼저 살피고 나아감 |
박지원 |
미중(美仲), 중미(仲美) |
중간의 미학 |
서경덕 |
가구(可久) |
오래 가도록 |
송순 |
수초(遂初), 성지(誠之) |
초심을 따름. 정성을 다함 |
송시열 |
영보(英甫) |
|
신윤복 |
입부(笠夫) |
|
안정복 |
백순(百順) |
항상 순리를 좇음 |
유형원 |
덕부(德夫) |
큰 덕을 가진 사내 |
윤두서 |
효언(孝彦) |
효성 지극한 선비 |
윤선도 |
약이(約而) |
약속을 지키다 |
윤휴 |
희중(希仲) |
중간을 바람 |
이덕무 |
무관(懋官) |
큰 관직을 소망 |
이덕형 |
명보(明甫) |
사리에 밝은 사람 |
이산(정조) |
형운(亨運) |
운용함에 형통함 |
이순신 |
여해(汝諧) |
순(舜) 임금 관련, “오직 너[汝]라야 세상이 화평케[諧] 되리라” |
이언적 |
복고(復古) |
옛것으로 돌아감 |
이이 |
숙헌(叔獻) |
|
이익 |
자신(子新) |
|
이지함 |
형백(馨伯) |
향기로움의 맏이 |
이항복 |
자상(子常) |
|
이황 |
경호(景浩) |
햇빛처럼 넓고 밝게 비춤 |
장승업 |
경유(景猷) |
좋은 경관을 꾀함 |
정도전 |
종지(宗之) |
|
정약용 |
미용(美庸) |
|
정여립 |
인백(仁伯), 대보(大輔) |
어진 사람들의 우두머리, 큰 수레 덧방나무 |
정여창 |
백욱(伯勗) |
|
정철 |
계함(季涵) |
끄트머리에 빠짐 |
조광조 |
효직(孝直) |
효성스럽고 곧바르게 |
조식 |
건중(楗仲) |
빗장과 같이 중간을 지킴 |
허균 |
단보(端甫) |
곧고 올바른 사람 |
홍대용 |
덕보(德保) |
덕을 지키는 사람 |
@ 부록 2 : 작호론(作號論)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 작호에는 정해진 방법도 특정한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호를 지을 때는 정해진 방법도 특정한 법칙도 없다. 다만 그 유래나 기원 혹은 뜻과 의미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소거(所居) : 자신이 거처하는 곳의 이름.
- 소축(所畜) : 자신이 간직하고 있거나, 좋아하는 사물.
- 소득(所得), 소지(所志) : 사는 동안 깨달아 얻은 것. 자신이 지향하는 뜻과 의지.
- 소우(所遇) :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에 빗댐.
- 소용(所容) : 자신의 용모나 신체적 특징.
- 소인(所人) : 자신이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
- 소직(所職) : 자신이 하는 일이나 직업.
- 소전(所典) : 옛 서적이나 문헌·기록인 고전(古典)에서 취함.
# 여덟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는 작호의 세계
1. 자신과 인연이 있거나 거처하는 곳의 지명 :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함.
다산(茶山, 정약용), 율곡(栗谷, 이이), 송강(松江, 정철), 삼봉(三峰, 정도전), 화담(花潭, 서경덕),
고산(孤山, 윤선도), 성호(星湖, 이익), 연암(燕巖, 박지원),
석봉(石峰, 한호) : 경기도 금천 석봉산(石峰山) 아래 거처.
지봉(芝峯, 이수광) : 서울 동대문 밖 낙산 동쪽 봉우리인 지봉(芝峯) 아래에 거주.
서애(西厓, 류성룡) : 고향인 하회마을 서쪽 강가 언덕인 서애(西厓, 일명 상봉대(翔鳳臺))
우남(雩南, 이승만) : 서울 남산 아래 도동 우수현(雩守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 우수현 남쪽.
아산(峨山, 정주영) : 자신이 태어난 고향마을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峨山里)
후광(後廣, 김대중) :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後廣里)
거산(巨山, 김영삼) : 고향인 거제(巨濟)와 정치적 고향인 부산(釜山)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옴.
2. 자신이 간직하고 있거나 좋아하는 사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선귤당(蟬橘堂)·매탕(槑宕) 이덕무, 승설도인(勝雪道人)·고다노인(苦茶老人) 김정희,
삼혹호(三酷好, 이규보) : ‘거문고와 술과 시’를 몹시 좋아함.
매죽헌(梅竹軒, 성삼문) : 매화나 대나무같은 올곧고 강직한 군자(선비)의 기질을 흠모함.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 평소 가야금 타는 것을 즐겨, 스스로 ‘가야금에 취했다’ 는 뜻으로 지음.
풍석(楓石, 서유구) : 자신의 집 정원에 섬돌을 쌓고, 그 위에 단풍나무 10여 그루를 심음.
기하(幾何, 유금) : 고대 중국의 천문·산술 뿐 아니라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을 좋아함.
석치(石痴, 정철조) : 어떤 돌이든 깎아 벼루로 만들기를 좋아해, ‘돌에 미친 바보’라는 뜻.
3.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과 의지를 드러냄.
퇴계(退溪, 이황), 순암(順菴, 안정복), 초정(楚亭, 박제가),
일두(一蠹, 정여창) : 자신이 한 마리의 좀벌레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는 뜻. 자기를 낮춤.
은일(隱逸)의 뜻을 담아 은(隱) 자를 넣어 호를 지은,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도은(陶隱, 이숭인), 야은(冶隱 길재),
학역재(學易齋, 정인지) : 주역의이치를 배우고 깨달아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을 세움.
삼우거사(三憂居士, 문익점) : 자신은 세 가지를 항상 근심한다. ‘나라의 국운이 떨치지 못하는 것’, ‘공자의 학문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 ‘자신의 도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
용재(慵齋, 성현) : 세속적인 삶과 거리를 두며 살겠다는 뜻을 담아 게으를 용(慵)자를 취함.
오주(五洲, 이규경) : 세계(지구)를 크게 다섯 개 주로 나눈 서양의 세계 지리관을 수용한다는 뜻.
4.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
사암(俟菴, 정약용), 취명거사(醉暝居士, 장승업), 도산병일수(陶山病逸叟, 이황), 토정(土亭, 이지함),
서계초수(西溪樵叟, 박세당), 해옹(海翁, 윤선도), 영장산객(靈長山客, 안정복),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 이산), 칠십일과노인(七十一果老人, 김정희),
우재(吁齋, 조준) : ‘탄식하다’ 혹은 ‘근심하다’는 뜻의 우(吁)자를 취해, 고려 말기의 혼돈한 세상사를 근심하는 심정.
망우당(忘憂堂, 곽재우) : 임진왜란 이후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 갔다 돌아와, 낙동강가 창암진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살면서,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의미의 망우(忘憂)를 취함.
농암(聾巖, 이현보) : 자신의 집에 자리한 ‘귀머거리 바위’에서 뜻을 취해,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사에 귀를 닫은 채 은자로 살겠다는 뜻.
만취당(晩翠堂, 권율) : 늙어 기력이 쇠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만년에 오히려 더욱 푸르름을 발산하겠다는 뜻.
벽옹(躄翁, 김창숙) :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참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앉은뱅이 신세가 되자, 호탕하게 작호함. ‘앉은뱅이 늙은이’ 라는 뜻.
5. 자신의 용모나 신체적 특징
표암(豹菴, 강세황) : 어려서부터 표범처럼 등에 흰 얼룩무늬가 있어서 스스로 표옹(豹翁)이라고 함.
미수(眉叟, 허목) : 늙은이의 눈썹이 길어서 눈을 덮었다.
소오자(小烏子, 권근) : 조선의 개국 공신. 자신의 얼굴을 두고 사람들이 검다고 놀리자, 아예 ‘작은 까마귀’라는 뜻으로 스스로 지음.
동두(童頭, 김진양) : 권근의 벗인데, ‘대머리’라는 뜻.
삼미자(三眉子, 정약용) :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고 난 뒤 남은 마마 자국 때문에 눈썹이 세 마디로 나뉘었기에, 이를 아예 자신의 호로 삼음.
6. 자신이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
단원(檀園, 김홍도), 오원(吾園, 장승업), 회재(晦齋, 이언적), 완당(阮堂, 김정희), 보담재(寶覃齋, 김정희)
사임당(師任堂, 신사임당) : 유학자들의 이상국가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삼아 본받는 다는 뜻으로 당호를 지음.
윤지당(允摯堂, 임윤지당) : 여성 유학자로서, 태임을 본받고자 태임이 태어난 고향마을인 ‘지(摯)’를 취해 당호를 씀.
회헌(晦軒, 안향) : 우리나라에 성리학(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한 학자.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에서 따옴.
청암(靑巖, 박태준) : 포항제철의 창업자로서, 평소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호암(湖巖) 이병철을 존경했는데, 이병철이 박태준에게 자신의 호를 빗대어 청암이라고 지어줬다고 함.
7. 자신이 하는 일이나 직업
추사(秋史, 김정희) : ‘금석역사가’라는 뜻.
호생자(毫生子, 최북) :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
주경(朱耕, 안견) : ‘인주 농사’ 곧 ‘그림을 그리고 도장을 찍어서 먹고 산다’는 뜻.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 <대동여지도> 제작에 평생을 바침. ‘옛 산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
8. 옛 서적이나 문헌 혹은 기록인 고전
여유당(與猶堂, 김정호) : 『노자』에서 취함.
면앙정(俛仰亭, 송순) : 『맹자』에서 취함.
남명(南冥, 조식) : 『장자』에서 취함.
공재(恭齋, 윤두서) : 『중용』에서 취함.
홍재(弘齋, 정조 이산) : 『논어』에서 취함.
어우당(於于堂, 유몽인) : 『장자』 「천지」편. ‘어우이개중(於于而蓋衆, 쓸데없는 소리로 뭇사람들을 현혹케 한다)’
눌재(訥齋, 양성지) : 『논어』 「자로(子路)」편. ‘강의목눌근인(剛毅木訥近仁, 강직하고 굳세며 질박하고 어눌함은 仁에 가깝다)’에서 눌(訥)자를 취함.
탁영(濯纓, 김일손) : 초나라의 대시인 굴원이 쓴 「어부사(漁父詞)」 창랑가(滄浪歌)에 나옴.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신독재(愼獨齋, 김집) : 『대학(大學)』에서 취함. “君子必愼其獨也,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간다.”
작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말할 것도 없고,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호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또한 호로 짓지 못할 것은 없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순우리말 호를 짓는 경향도 나타남.
한힌샘 주시경, 외솔 최현배, 가람 이병기, 바보새 함석헌, 늦봄 문익환, 옹기 김수환
# 호는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지을 수 있다!
가장 훌륭한 작호란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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