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하려고 소송 불사하는 정부

道雨 2023. 8. 25. 10:27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하려고 소송 불사하는 정부

 

 

 

* 2018년 10월30일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오른쪽) 할아버지가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배상금의 ‘제3자 변제’를 위한 공탁이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는데도, 멈추지 않고 있다. 법원 결정은 채권자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은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리적 판단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까지 선임해 항고하는 등,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한 변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 기업이 부담해야 할 소송 비용까지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알 수가 없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지난 22일 고 박해옥 할머니 사건과 23일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사건에 대해 각각 항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전주지법과 광주지법에서 정부의 공탁을 수리하지 않자 이의신청을 제기했는데, 이마저도 기각되자 항고한 것이다.

 

이의신청 사건에서 정부 대리 변호인단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어느 누구도 사과를 강제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펴는가 하면, “채무자(일본 기업)가 직접 변제하는 경우나, 제3자(재단)가 변제하는 경우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막무가내식 주장을 하기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를 “금전적 만족”으로 축소하는 몰지각한 인식일 뿐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주지법 민사12단독 강동극 판사는 “가해자(일본 기업)가 배상하여야 할 손해는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이므로, 채권자(강제동원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해관계 없는 제3자(재단)의 변제를 허용하는 것은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기능을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일갈했다.

 

광주지법 민사44단독 강애란 판사도 “정부의 공탁을 수용하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양금덕 할머니 사건 변호인으로 민일영 전 대법관을 포함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이 사건은 정부가 항고를 하더라도 법원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불복 절차를 계속 밟는 건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대법원장을 비롯해 보수 우위 구도로 재편되는 대법원에서 뭔가 도모해보겠다는 것인가.

 

시민들은 최근 제3자 변제를 거부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응원하기 위해 4억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정부는 시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 2023. 8. 2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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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받으면 됐지 사과까지?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입장이다

 

 

강제동원 ‘제3자변제’ 공탁 4번째 기각…안산지원 “가해기업 면죄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제3자 변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 결정이 24일 또 나왔다. 앞서 광주지법, 전주지법, 수원지법에 이은 4번째 판단이다.

 

이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민사21단독 신성욱 판사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이 낸 공탁 불수리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피해자 쪽이 일본 기업이 아닌 정부의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지원재단의 공탁 신청을 불허했던 법원 공탁관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취지다.

앞선 광주지법(8월14일)과 전주지법(16일), 수원지법(21일) 재판부와 동일한 결정이다.

 

외교부와 지원재단은 법원 공탁관이 재단의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불수리)은 위법하다며 낸 이의신청서에서, 누가 판결금을 지급하건 차이가 없고, 일본의 사과를 강제할 순 없다는 논리를 폈다.

“채무자(일본기업)가 직접 변제하는 경우나 제3자(한국 정부)가 변제하는 경우나 아무런 차이가 없고, 채권자(피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금지한다면 채무자에 의한 변제만 강요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어느 누구도 사과를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신 판사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판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피해자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해관계 없는 제3자로부터의 변제를 강요당하면, 피해자가 받은 불법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대한 심리적·감정적 만족을 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부당한 결과에 이른다”고 짚었다.

 

일본의 사과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정부 쪽 주장도 기각됐다.

“(지원재단은) 피해자가 사과를 받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법 감정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는)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통해 가해행위를 한 자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그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구하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신 판사는 “가해기업이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지원재단이) 제3자 변제로 판결금을 변제한 뒤 가해기업에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도 지적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