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고소득자 감세 ‘민생정책’이라니, 국민 모독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 이름으로 새해 들어 각종 선심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정부가, 이번에는 금융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감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내투자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새로 도입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도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이 계좌에서 거둔 수익은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해준다는 게 뼈대다.
정부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결국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견강부회가 도를 넘는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이자나 배당소득이 연간 2천만원을 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이다. 유가증권시장 배당수익률이 2%를 밑도는 점을 고려하면, 상장주식을 10억원어치 넘게 보유한 사람이 낸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금융 고소득자가 새로 도입하는 개인자산관리계좌에 가입해 얻은 수익에는 최고 49.5%(과세표준 10억원 초과) 세율 대신 15.4%를 매기게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최근 3년 이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자산관리계좌 갱신·신규가입을 할 수 없게 했다. 자산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금융 고소득자의 자산 형성까지 지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연간 주식양도차익이 5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2025년 시행 예정) 폐지 방침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에는 국민께서 뜻을 모아 여론 지지를 해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총선 쟁점용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인데, 국민의 경제·금융 지식 수준을 너무 낮춰 보는 것 같다.
금투세 폐지로 약 1조5천억원, 개인자산관리계좌 세제 지원 확대로 2천억~3천억원 세수가 감소하면, 이는 중산층·서민 부담으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런데, 금융 고소득자 감세를 하면서 민생을 위해서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금융 고소득자 감세가 정부 주장대로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400조원 안팎에 이르는 증시 주변 자금에 견줘 보면, 감세를 기대한 개인자산관리계좌 신규 가입액이 주가 수준에 영향을 끼칠 만한 규모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조한 17일 코스피지수는 2.47%, 코스닥지수는 2.55%나 떨어졌다. 이날 주가 급락은 다른 변수 탓이 크겠지만, 금융 고소득자 감세 계획이 시장에 별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음을 정부는 눈여겨보기 바란다.
[ 2024. 1. 18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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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자 투자수익 세금 폐지·감면…한 해 3.4조 깎아주기
서민 절세 상품 ‘ISA’, 부자에 개방
정부가 서민·중산층을 겨냥한 절세 상품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문턱까지 낮춰 금융 부자인 금융소득종합과세자도 가입토록 한 건, 고액 자산가들의 국내 주식 투자를 늘려 증시를 부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세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등, 지난해 말부터 감세를 통한 증시 부양책이 연이어 쏟아지는 모양새다.
감세 규모는 대략 3조원을 웃돈다.
17일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금융 정책은 고액 금융 자산가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허용이다. 2016년 중산층·서민 자산 형성을 목적으로 도입한 절세 상품이다. 현재 가입자 수와 가입 금액이 400만명, 20조원에 이른다. 가입 전 3년간 1번이라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자·배당 등 금융소득 연 2천만원 초과)에 포함될 경우엔 가입할 수 없었다.
정부는 앞으로 국내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국내 주식형 펀드에 전체 투자금의 60∼70%를 투자하는 ‘국내투자형 개인자산관리계좌’ 상품을 신설해 금융소득종합과세자에게 가입 문을 열어준다. 절세 혜택을 앞세워 19만명(2022년 기준)에 이르는 ‘금융 큰손’들의 국내 주식 투자 수요를 늘려 주가 상승을 도모하려는 전략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자가 이 상품을 통해 국내 상장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도 2억원)하면 여기서 발생한 배당소득에는 최고 49.5%(이하 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이 아닌 15.4% 세율로 분리 과세된다.
이 조처는 개인 투자자 집단을 겨냥해 지난해 말부터 줄줄이 이어진 정책들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11월 공매도 한시 금지 조처에 이은 연말 국내 상장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 완화(종목당 보유액 10억원→50억원 이상), 올해 초 금투세 폐지 추진 발표, 개인자산관리계좌 문턱 완화 등은 모두 증시 부양이라는 명목 아래 고소득·고액 자산가층의 자본과세 기반을 허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주요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면 이는 기업 지배구조와 과도하게 많은 신규 상장 기업 때문”이라며 “암에 걸리면 암을 치료해야지, 세제 완화 같은 대증요법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국내 상장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을 세법상 대주주뿐 아니라 양도차익 5천만원 이상인 일반 주주까지 확대하는 금투세 폐지 방침을 재확인하며, 다음달 중 금투세 폐지 및 개인자산관리계좌 개편 등을 위한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총선 전인 가급적 2월에 (법 개정안이) 처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 같은 감세 조처들을 사실상 총선용 공약으로 삼겠다고 그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법 개정 시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 규모는 연간 수조원대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기재부는 개인자산관리계좌 신설과 납입 한도·비과세 한도 확대 등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를 연간 2천억∼3천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여기에 금투세 폐지와 증권거래세 인하로 추가로 감소하는 세수가 내년 한해에만 약 3조4천억원(국회예산정책처 2022년 추산)에 이른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금융 자산의 상위 계층 집중이 지금도 심하다. 자본소득 과세를 완화하면 분배 구조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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