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살고 있다”
‘뮌헨협정’ 체결 때와 닮은 지금 우크라 상황
우크라 포기는 히틀러에 체코 넘긴 것과 같아
다음은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그 다음은?
문제는 러시아 물리칠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
“최선의 방법은 우크라가 이기도록 돕는 것”
“우리는 지금 1938년에 살고 있다.”
<가디언>의 외교분야 담당 에디터 패트릭 윈투어가 지난 8일 게재한 글의 제목이다.
1938년이면 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전이다.
그해 9월에 네빌 체임벌린 영국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총리,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독일총통과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두체(최고지도자)가 만나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핵심내용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주데텐란트를 독일에게 넘겨 준다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된 뒤 생겨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에는, 독일인 300만 명이 주민 다수파로 거주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당시의 대세 이데올로기였던 민족자결주의를 역이용해, 그해 3월 역시 다수의 독일인이 살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뒤, 주데텐란트까지 합병하려 했다.
1차 대전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그때,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독일과 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했다. 전쟁준비도 돼 있지 않았으며, 국민들 다수도 전쟁을 원치 않았다.
주데텐란트는 결국 독일에 병합됐고, 히틀러는 당시 더는 영토확장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체코슬로바키아는 그 협정에 초청받지도 못했다.
불과 6개월 뒤 히틀러 나치군은 약속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합병했고, 1939년 9월에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2차 세계대전이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1938년 ‘뮌헨협정’ 체결 때와 닮은 지금 상황
윈투어는 1938년을, 세계대전이 임박했음에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당시 주요 서방국들이 독일의 폭주를 막기 위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그 1년 뒤의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것으로 기억하는 카자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때가 지금의 세계 상황과 닮은꼴임을 상기시킨다.
칼라스 총리는, 아비시니아, 일본, 독일의 긴장(위기)이 각각 고립된 사건들로 취급됐던 1930년대와, 우크라이나, 중동, 남중국해, 그리고 아르메니아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을 대비시키면서, 그 분쟁들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고 얘기한다.
칼라스가 얘기한 ‘아비시니아’는 당시의 에티오피아로, 그곳을 점령하려던 이탈리아군과 에티오피아군이 충돌한 ‘아비시니아 위기’를 가리킨다.
결국 이탈리아는 국제연맹의 제재를 받자 연맹을 탈퇴하고, 에티오피아를 무력으로 합병했다.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침략해, 다음해인 1932년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고, 1933년에 국제연맹을 탈퇴한 뒤, 1937년에는 본격적인 중국 본토 침략에 나섰다.
그리고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뒤, 독일민족의 ‘생활공간’(레벤스라움) 확보를 주장하며, 영토확장과 패권을 향해 질주한 독일.
이들 세 나라는 2차 대전에서 ‘추축국’으로 뭉쳐, 영국 프랑스 등 1차 대전 전승국이자 선발 제국들의 연합에 도전했다.
칼라스는 우크라이나, 중동, 남중국해,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마도 대만해협, 한반도까지 포함한 지금의 분쟁 또는 위기들이 각기 고립된 사건들처럼 보일지 몰라도, 1930년대의 전간기, 곧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아비시니아, 일본, 독일의 분쟁 또는 위기처럼 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그것은 제3차 세계대전의 전조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의 ‘추축국’과 ‘연합국’의 대립은, 오늘날 권위주의적인 전체주의 체제와 자유주의 체제간의 대립으로 변주된다.
중국-러시아 연합과 구미 등 서방연합간의 대립으로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이건 물론 윈투어나 칼라스 등 서방인들의 시각이다.
우크라이나 포기는 1938년 체코 포기와 같은 것
칼라스 총리는 역사가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의 말을 빌려, 1938년 그때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군에 항전하고,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이 그런 체코슬로바키아를 적극 지원했다면,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히틀러의 나치군은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을 상대할 만한 힘이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역사는 서방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외면했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나치군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주데텐란트 군수산업과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까지 동원해 폴란드를 침공하는 쪽으로 전개됐고,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다.
윈투어가 자신의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스나이더 교수가 한 다음과 같은 얘기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포기하거나,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장차 전쟁을 끌어가는 쪽은 러시아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기술과 우크라이나 지역 군인들을 동원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1939, 1938년에 살고 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에게 1938년을 연장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윈투어가 인용한 또 한 사람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체임벌린의 영국과 달라디에의 프랑스는 히틀러 독일에 주데텐란트를 넘겨 주면서 당장의 전쟁을 피하고 시간을 벌었으나,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고 재무장에 나서 히틀러를 견제하며 전쟁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나마 체임벌린과 달라디에가 그렇게 물러섰기에 2차 세계대전이 1년 뒤에야 시작됐다는 주장도 하고 있으나, 어쨌든 오히려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 것은 독일이었다.
“이대로 가면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
윈투어가 보기엔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게 돌아간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지금 어느 때보다 크고 강력하며, 대서양 동맹은 1930년대의 미국, 프랑스, 영국이 했던 때보다 훨씬 더 잘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공화-민주 양당의 대립 때문에 5개월이나 미뤄졌지만, 600억 달러의 미국 추가 무기지원금 일부가 조만간 우크라이나 최전선에 도달하게 돼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보기엔, 서방 지원세력들은 너무나 느리게, 그리고 제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40조 달러 경제규모의 서방이, 2조 달러 경제규모의 러시아에게 쩔쩔매는 무능력을 보이고 있다.
지원세력 중심기둥의 하나인 독일의 기민당 국방정책위원회의 요한 바데풀 부의장은, 시코르스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전쟁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 이란 중국 북한 그리고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도와 같은 나라들의 잘 조직된 지원을 받는 러시아의 힘에 저항할 수 없다.”
윈투어가 인용한 우크라이나 군사고문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 무기산업은 지금 연간 450만 발의 포탄을 생산할 수 있고, 포탄 한 개의 제조 단가는 약 1000달러다.
이에 비해 유럽과 미국에서는 평균 약 4000달러의 단가로 연간 총130만 개의 포탄을 생산한다. 이는 나토의 효율성이 러시아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코르스키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예산의 40%가 국방에 투입되고 있다. 말하자면 우크라이나가 벌어 준 시간에 전시경제 체제를 제대로 구축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러시아다.
서방은 앞으로 2~3년 안에 드론과 포탄 등 군수품 공급에서 러시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우크라이나 고문은 말했지만, 이는 곧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록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러시아를 패배시킬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
문제는 서방이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대응할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바데풀은 그렇게 해서 “만약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국 국방장관을 지낸 벤 월리스는 올라프 숄츠 독일총리를 이렇게 비판했다.
“숄츠의 행동은, 유럽의 안보에 관한 한, 그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직업을 가진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장 영향력이 큰 지원세력인 독일의 정치 지도자 숄츠가, 러시아에게 패배를 안기겠다는 목표 설정 자체를 거부했고, 지난해 하반기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실패로 돌아간 뒤, 집권 사민당 내에 ‘평화 옹호’세력이 부활해 좌우파로 나뉘어 대립하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이들은 비판한다.
바이마르 공화국 전문연구자인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윈클러 등은 공개서한을 통해, 숄츠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려는 의지가 없거나, 러시아의 의도를 인식할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총리와 사민당 지도부는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정치에 한계선(레드 라인)을 그음으로써, 독일의 안보정책을 약화시키고, 러시아에 이익을 안기고 있다. 정부는 승리를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들에겐 지금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938년의 네빌 체임벌린이나 에두아르 달라디에일 수 있다.
히틀러와의 정면대결을 피함으로써, 나치 독일의 침략과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일부의 평가와 함께, '얼간이' '겁쟁이'들이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는 체임벌린, 달라디에와 숄츠, 마크롱을 겹쳐서 보는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대통령처럼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우크라이나조차 이길 수 없는 러시아가, 갑자기 밀고 들어와 서구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칸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오르반은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는 것은 나토동맹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기에 “미친 짓”이 될 것이라며, 그럴 가능성을 부정했다.
“최선의 방법은 우크라이나가 이기도록 돕는 것”
하지만 2023년에 발표된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글로벌 대결과 서방을 물리치기 위한 동맹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윈투어는 지적한다.
그런 푸틴의 말을 믿는 것은,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말을 믿은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1939년 때처럼 폴란드가 무너질 것이고, 그 다음에는 루마니아 몰도바가 무너질 것이며, 흑해 연안까지 점령당한다면, 서방 동맹의 응집력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 내의 우파 국수주의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동맹을 구축해, 유럽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릴 것이다.
우크라이나 승리를 위한 국제센터 공동설립자 올레나 할루센카는, 러시아군이 공략 중인 도시 하르키우가 점령당한다면, “이번 겨울에 뮌헨만큼 큰 도시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게 되면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로 인한 비용”에 유럽이 짓눌릴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나토가 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사태 악화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물리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전직 나토 사령관은 주장했다.
윈투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1938년 뮌헨협정의 교훈을 잘 살려, 서방의 리더들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를 패배시키겠다는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전략을 짜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데텐란트-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유럽 전역으로 서방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38년 이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윈투어나 그가 인용한 서방 연구자 및 정치인들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푸틴의 러시아를 거의 동렬에 놓고, 1938년 이후와 2022년 이후를 바라본다.
이번 주에 열리는 우크라이나 관련 3개 국제회의
윈투어는 이번 주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과, 7월에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75주년 정상회담 등에서 서방의 ‘정치적 의지’가 발동되기를 기대한다.
11~12일에는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재건회의’가 열리고, 13~15일에는 G7 정상회의가 열리며, 15~16일에는 스위스 뷔르겐스톡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가 열린다.
지난 2월 세계은행 등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재건에는 앞으로 10년간 486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탈리아 G7 정상회의에서는, 각국이 동결한 러시아의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의논한다. 지금까지 나온 방안은 동결자산의 이자(이익) 또는 그것을 담보로 장래의 이자까지 앞당겨 쓰는 것 등이다.
평화회의에서는 핵 안전과 식품 안전보장, 포로와 강제연행된 아이들 귀환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문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11월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및 지역(G20)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10개 항의 ‘평화 공식’에 포함돼 있다.
10개 항목은 핵 안전, 식품 안전보장, 에너지 안전보장, 포로 및 강제연행 아이들 석방, 영토보전 회복, 러시아군의 철수와 적대행위 중지, 정의의 회복, 자연환경 보호, 긴장 격화와 공격 재개 방지, 전쟁 종결 확인이다.
이들 가운데 3개 항만 거론하기로 한 데에는, 스위스에 위탁해서 여는 이번 평화회의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나라들이 참가해 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문제들에 논의를 집중해, 많은 지지를 얻어내려는 우크라이나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100여개 국가의 정상급 대표들이 모일 것으로 알려진 이번 회의에 러시아는 초청받지 못했고, 중국은 참석하지 않는다.
6~9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세력과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세력들이 세를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 상황이 우크라이나에 호의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진 않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가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젤렌스키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국민은 59%로, 러시아의 침공 3개월 뒤인 2022년 5월 실시된 조사에서 나온 90%에 비해 많이 내려갔다.
그럼에도 전시하에서 대다수 국민은 젤렌스키의 대통령직 수행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인사문제나 부패오직 사건 대책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고, 병사들의 피로와 새 병력으로의 교체와 충원 문제도 큰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관건은 결국 서방 주요국들의 이해타산과 ‘정치적 의지’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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