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현실화한 강대강 대치 악순환
정부가 9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북한이 전날 밤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한 데 대한 상응 조처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북의 오물 풍선 살포는, 지난 6~7일 일부 탈북민단체가 대북 전단 수십만장을 살포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이제 확성기 방송 재개에, 북이 또 어떤 맞불을 놓을지 알 수 없게 됐다.
과거 북은 확성기 방송에 맞서, ‘확성기를 직접 타격하겠다’며, 포격 도발을 감행한 바 있다.
대북 전단 살포→오물 풍선 살포→확성기 방송→북의 무력 도발 순서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브레이크 없이 고조되고 있는 셈이다.
애초 대북 전단 살포를 지혜롭게 제어했다면 무릅쓰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위험이다.
이제라도 남북 모두 냉정을 되찾고 긴장을 낮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태 발단은, 지난달 10일 한 탈북민단체가 대북 전단 30만장과 케이(K)팝·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유에스비(USB) 2천개를 북한에 날려 보낸 일이다.
그러자 북 국방성이 지난달 25일 보복을 다짐했고,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 밤 “휴지 쓰레기”를 담은 풍선 1천여개를 남쪽으로 내려보냈다.
북은 지난 2일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면서, 다시 대북 전단을 보낸다면 그 백배의 오물 풍선을 또 살포하겠다고 단서를 단 바 있다.
북의 오물 풍선 살포는 두말할 나위 없이 무책임하고 유치한 도발이다. 민간단체가 벌인 행위에 군 당국이 나선 것도 비례성에 어긋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응 또한 합리적이라 하기 어렵다.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멈추겠다며 물러선 만큼,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면 정지한 데 이어, 끝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가뜩이나 민생이 위기인데 군사적 긴장까지 높여서 어쩌자는 것인가.
정부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대북 전단 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점을 들어,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당시 ‘전단 살포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서도, 전단 살포 금지 자체에 대해선 ‘국민 안전 보장과 남북 긴장 완화 등 국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결정 취지에 맞게 형사처벌 아닌 방법을 찾아 대북 전단을 막는 게 급선무다. 지금처럼 민간단체의 무책임한 행위엔 손을 놓으면서 ‘강 대 강’ 대결 일변도로 나아가는 건 결코 현명하지 않다.
[ 2024. 6. 1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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