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와 ‘생존자 편향의 오류’
지난 대선 패배、‘부동산 세금’ 아닌 ‘부동산 폭등’ 탓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전투기 격추를 줄이기 위해, 전투기 외상을 꼼꼼히 분석한던 적이 있다. 분석 결과, 전투기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탄의 흔적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날개와 꼬리 부분에 강한 철판을 다시 덧댔다. 그런데도 격추되는 전투기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분석이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다.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탄의 흔적이 많았던 전투기는 모두 생환한 전투기다. 격추를 줄이고자 했다면, 이 부분을 제외한 조종석이나 엔진 등 다른 곳을 보강해야 했던 것이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 부른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할 때 범하기 가장 쉬운 오류 중 하나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촛불 시민이 만들어준 정권을 단 5년 만에 잃고 말았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부동산 세금이 대선 패배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다. 보수정당과 언론에서 ‘징벌적 과세’라고 틈만 나면 공격했지만, 부동산 세금 때문에 집을 팔았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가파르게 오른 집값을 보며, 집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기 힘든 법이다. 즉, 지난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민주당 안에서 부동산 세금을 낮추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형적인 ‘생존자 편향의 오류’다.
윤석열 정부는 거의 모든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낮추고, 심지어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마저 전면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종부세마저 완전 무력화 된다면, 집값은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집값이 가파르게 올라 민주당은 정권을 뺏겼다. 부동산 세금을 낮추겠다는 말은, 집값 상승을 부추겨 패배의 길을 다시 걷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 내가 강북에 살든 강남에 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정치적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서울 강남의 유권자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비슷해진다. 내가 어디에 살든 나의 정치적 지역구는 강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부동산 세금을 대폭 줄여주겠다고 나선다.
따뜻한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닌, 손익 계산이 빠른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세금 낮추겠다는 건 집값 상승 부추기겠다는 것
집값이 올라갈수록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선거를 이기기 힘든 이유다. 가계부채가 하늘을 찌르든 말든,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든 말든, 부동산 띄우기에 올인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종부세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와 유동성 과잉 공급이 시작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무현 참여정부 내도록 집값 상승으로 몸살을 앓았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서울 집값이 평균 18.7%나 올랐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부동산 투기와 과도한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며 거의 모든 대책을 쏟아냈다. 종부세를 포함한 세제 강화 정책과 실거래 신고 및 등기부 기재를 통한 시장 투명화 조치, LTV와 DTI를 도입하며 부동산 대출 관리,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개발이익 환수장치, 2기 신도시로 대표되는 공급확대 등,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노력으로 결국 참여정부 임기 말에는 부동산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었다. 당시 종부세가 부동산시장 안정에 큰 역할을 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2008년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해 미국의 초대형 금융기관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실물 경기가 속절없이 무너지며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미국 실업률은 순식간에 10%를 넘어섰다.
만약 노무현 참여정부가 종부세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부동산 대출을 마구 늘려온 대형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며, 우리 경제는 하루아침에 초토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종부세는 대한민국 경제의 방파제 같은 세금이었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며, 온갖 비난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종부세를 지켜낸 이유였다.
최근 정치권에서 그런 종부세를 완화하거나 아예 없애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사실상 집값 상승을 부추기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우리 경제는 파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산업 자체가 산업 생산성을 높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달콤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유혹이 있는 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R&D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 산업 경쟁력이 사라지고, 우리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일본이 그렇게 망했다.
집값 잡아야 ‘저출생 국가소멸’ 막을 수 있다
이미 지금 집값도 엄청나게 비싸다.
PIR(Price Income Ratio)은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로 집값의 적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2021년 14.1이었던 서울의 PIR이 2022년에는 15.2로 늘었다. 15년 넘게 한 푼도 안 쓰고 숨만 쉬면서 살아야 서울에서 겨우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평생을 모아도 서울에서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집값이 아니다. 그사이 가계부채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나라 합계출생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0.68명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울은 0.5명대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자살하고 있는 나라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망국적 저출생률의 가장 큰 원인으로 높은 집값을 지목하고 있다. 높은 집값이 망국적 저출생률을 만들고, 그 망국적 저출생률이 다시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아예 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머잖아 집값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내 값이 붙어 있는 모든 자산의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짓은, 대한민국의 자살을 돕는 짓이나 다름없다.
우리 국민의 절반은 여전히 집이 없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무주택자 국민 절반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은퇴한 서민 노령층, 높은 월세에 시달리는 청년세대, 살림 차릴 곳이 마땅치 않은 신혼부부 등,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종부세를 없애자고 할 것이 아니라, 근사한 공공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자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한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동네에, 누구나 살고 싶은 공공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야한다. 시쳇말로 ‘타워팰리스’급 고급 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재정건전성이 나빠진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자.
국채30년물 금리가 3.20~3.30% 수준이다. 100조 원을 유동화한다고 해도 이자 부담이 3.2조 원에 그친다. 임대료를 아주 싸게 받아도 국채 이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원금은 임대아파트 실물 자산이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만기 때 되팔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집 없는 서민들이 전세대출이나 부동산담보대출도 받을 필요도 없다. 서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복지도 제공하고,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망국적인 아파트값도 하향 안정화시킬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출생률이 올라간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자살을 멈춘다.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사득, 일거오득이다.
대한민국은 부자들의 재산관리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치는 자본이 아닌, 돈이 아닌, 사람을 향해야 한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다. 자격이 없으면 정치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정치가 대한민국 자살을 도와서야 되겠는가.
주영 경제칼럼니스트mindle@mindlenews.com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 탄핵은 늘 ‘헌정사의 불행’인가? (0) | 2024.06.14 |
---|---|
풍선·드론·감청…용산은 탈탈 털리고 있다 (0) | 2024.06.14 |
“우리는 지금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살고 있다” (0) | 2024.06.11 |
열강들의 전쟁 몽유병을 자극하는 남북한 (0) | 2024.06.11 |
이념·정략에 포획돼 '안보 위기' 키우는 윤석열 정부 (0) | 2024.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