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계엄 쿠데타는 왜 실패했나…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道雨 2024. 12. 5. 19:32

계엄 쿠데타는 왜 실패했나…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야당∙시민들, 기민하고 과감하게 움직여

계엄군 진입 느렸던 핵심 이유, 공군 협조 미비

국회경비대 임무 배반 딜레마, 완전 봉쇄 실패

성공할 뻔한 ‘친위 쿠데타’, 남은 위협은 없나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지난 12월 3일, 국민들의 평온한 밤을 깨뜨린 비상계엄 선포는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군사적 규정은 차후 여러 수사와 재판 등의 절차를 거쳐 역사에 규정될 것이지만, 현 시점에서 확인된 기본적인 사실들 몇 가지만 보더라도 이번 사건이 ‘친위 쿠데타’로서의 성격이 매우 짙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헌법적 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표된 포고령에서부터 국회와 정당 활동을 금지시킨 것은 그 목적이 계엄해제를 차단하는 데에 있음이 분명하고, 이는 국회의 계엄해제 권능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헌법 제77조를 무력화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2시간여 만에 국회에서 계엄해제가 결의되고 뒤늦게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계엄 사태가 일단락된 것은 일단 천만다행의 일이다. 그런데 계엄군이 여러 군데에서 어설프거나 헛점들이 노출된 부분들에 주목하면서 한바탕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부상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려는 듯, 윤 대통령도 지난 4일 오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과의 회동에서 야당의 폭거를 알리려는 정도의 차원이었다고 밝혔다며 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렇게 엄청난 일도 아니었고 경고를 하는 정도의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명은 국민들더러 심각한 일이 아니었으니 없었던 일인 셈 치고 그냥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식이다. 이는 지난 새벽에 발의된 대통령 탄핵안에 여당 의원들이 찬성 표를 던지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커 보인다. 눈 가리고 아웅으로라도 스스로 초래한 최악의 파국을 없었던 셈 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군 병력, 그것도 특수부대 병력을 둘이나 동원해 완전무장 상태에서 국회에 침입해 장악을 시도했고 그 외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병력을 보내는 등 무력을 통해 헌법기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현실이었고, 이런 시도가 성공할 뻔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당∙시민들 기민하고 과감하게 움직여

 

이번 12. 3 비상계엄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크고 작은 요인들이 있었지만, 공수의 양면에서 크게 두 갈래의 요인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계엄을 막으려는 측의 움직임과 계엄을 유지하려는 측의 움직임이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자.

먼저 계엄을 막으려는 야당과 시민 측의 요인부터 보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우원식 의장과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 국회의원들은 전례 없는 계엄 선포에 크게 당황한 상황에서도 일단 지체 없이 국회로 향했다. 또한 한밤의 청천벽력 계엄령에 놀란 수많은 시민들 역시 국회로 달려갔다.

이 시점엔 이미 경찰 국회경비대 인원들이 국회 출입문들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봉쇄가 완벽하지는 않아 일부는 출입문으로, 나머지 대부분은 담을 넘음으로써 국회로 향했던 거의 모든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때 도착하고도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의원은 경찰과 계속 다투고 있었던 이준석 의원 정도 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국회의원들은 다소 지체되기는 했으나 속속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한편, 그 보좌진들과 국회 직원들은 헬기로 국회 경내에 침입한 계엄군들을 본청 앞과 복도에서 막아서고, 시민들은 군 차량들로 도착한 다른 계엄군을 국회 앞에서 막았다.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음에도 세 주체가 각각의 역할을 맡아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한 끝에 계엄군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기 전에 계엄해제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큰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계엄군 진입 느렸던 핵심 이유, 공군 협조 미비

 

한편 계엄군 쪽의 움직임이 느렸던 것이 결과적으로 야당과 시민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준 것 역시 계엄 실패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런 가운데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애 출연한 김종대 전 의원의 발언이 주목되고 있다.

김 전 의원에 따르면, 계엄군 중 국회에 먼저 진입한 것은 소위 ‘참수부대’로 불리는 707 특임대로서, 이 부대에 내려진 초기 명령은 일단 11시까지 국회를 점령하라는 ‘단편명령’이었다. 물론 점령 완료 보고를 하고 나면 다음 명령으로 주요 의원들 체포로 이어졌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5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종대 전 의원. (MBC 유튜브 화면 캡처)

 

 

 

그런데 11시 정각까지 국회를 점령했어야 했던 최초 명령과 달리, 이들이 국회에 도챡하는 데엔 48분 가량이 지체됐다. 그 지체의 원인은 공군과의 사전 협조 미비였다.

707 특임대는 한강을 따라 헬기로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 주변의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비행금지구역을 관할하는 공군에 사전 협조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실랑이를 하는 동안 48분이 지체된 것이라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설명이다.

이 48분이 계엄을 막으려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골든타임이 된 것이다. 사전 계획대로 11시까지 국회 점령이 이루어졌다면 계엄해제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계엄의 단계적 계획은 계엄선포 이후에야 임명된 계엄사령관이 아닌 김용현 국방장관과 소위 ‘충암파’ 군부세력들이 짠 것으로 보이는데, 비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열여줘야지만 참수부대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혹은 적어도 그 절차가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경비대의 임무 배반 딜레마, 국회 완전 봉쇄 실패

 

또다른 요인도 꼽힌다. 바로 계엄선포 직후 계엄군과 추가 기동대 도착 전까지 국회를 막고 있던 국회경비대의 문제다. 최근 보도들에 따르면 밤 11시 35분쯤 계엄사령부가 아닌 대통령실이 서울경찰청장을 통해 ‘국회주변 경비 강화’를 지시해 5개 기동대가 추가 급파됐다. 즉 그 전까지는 국회경비대가 홀로 국회를 막고 있었다.

국회경비대는 경찰 소속으로, 서울경찰청에 소속되어 있고 서울청장의 지휘를 받는다. 국회경비대는 이름 그대로 국회 외곽을 경비하는 것이 임무로서 현재 대장은 목현태 총경이다.

국회경비대 홈페이지의 대장 인사말에 따르면 이들의 임무는 “국회를 대상으로 한 테러 등 각종 위해요소에 대비”하고 “국회내 불법 집회시위 방지 및 국회를 방문하는 중요인사에 대한 경호활동” 등이다. 즉 스스로 소개한 업무 내용이 국회 요인들을 보호하는 것이지 차단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국회경비대의 기본 임무가 당시 국회 본회의를 막으려던 계엄군 측의 목적과는 모순됐다는 것이 계엄 목적에서는 장애가 된 것으로 보인다. 평소 임무가 국회와 의원들을 경호하는 것인 만큼 이들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중간중간 출입문 통과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담을 넘어 진입하는 것은 거의 막지 못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포함한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을 넘었어 본회의장으로 진입했고, 이 과정에 여러 시민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출입문이 차단되자 국회 담을 넘어 진입하는 우원식 국회의장. (우원식 페이스북.)

 

 

 

따라서 만약 서울경찰청장이 처음부터 국회경비대를 뒤로 물리고 뒤늦게 파견했던 5개 기동대 병력이나 그 이상으로 국회를 둘러쌌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거의 완벽한 출입 차단도 가능했을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계엄군 측에서 가장 중대한 두 가지 실수 때문에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가장 큰 것은 공군에 대한 협조 미비로 인한 계엄군 헬기 지연, 이어서 국회 초기 봉쇄에 국회경비대만이 동원했다는 것이다.

 

 

성공할 뻔한 ‘친위 쿠데타’, 남은 위협은

 

이런 중대한 혼선들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김용현을 비롯한 충암파들이 계엄 계획 과정에서 밀행성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계엄 선포 전까지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장관들 다수까지 전혀 몰랐다는 후속보도들에서도 이런 사실은 확인된다.

밀행성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군과 경찰의 각 지휘관들과의 사전 정보 공유 등 협조가 부족했던 것이다. 동원될 병력들의 지휘관들에게 충분히 알려줬을 경우 사전에 정보가 유출될 우려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현역 군 지휘관인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아닌, 중장으로 군을 떠난지 7년이나 된 김용현 국방장관이 사실상 계엄 작전을 세부적으로 지휘한 탓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일 국회에 출석한 박안수 대장의 증언에 따르면 병력 이동이나 포고령 문안 등에 대해 박 대장은 사전에 아는 것도 전혀 없었고 결정권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공군과의 사전 협조를 통한 비행금지구역 비행, 그리고 국회경비대 대신 기동대 병력으로 국회를 막아섰다면 계엄해제 의결까지 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5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2024.12.5. 연합뉴스

 

 

 

만약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계엄령 발동으로 인해 지지율은 아예 바닥까지 추락하고는 반등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등 헌법기관 활동을 금지시키고 언론의 자유는 물론 국민의 기본권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악수가 악수를 부른다고 윤석열 정권이 임기말까지 계엄을 해제하기는 요원했을 것이다.

더욱이 퇴임 이후에야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윤석열 범죄들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면 차기 대통령 선거도 정상적으로 열리게 놔둘 수 없었을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평시 비상계엄을 선포한 데서 봤듯이, 윤 대통령은 정상적인 정치 활동이 아닌 어떤 기괴한 수단도 다 동원할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인물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현 시점은 오히려 계엄의 위험도는 더 커진 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계엄을 한 차례 실행했기 때문에 군과 경찰 지휘관들이 그 목적이 뭔지를 다 알게 됐고. 그래서 명령에 따를 병력들을 선정해 활용할 방법만 마련하면, 계엄을 다시 실행할 때 어제 새벽과 같은 혼선은 다시 생길 수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제 밤 계엄령이 실제 선포되기 전까지 계엄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리고 실패의 이유들을 돌아봤듯이 거꾸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자면 계엄 선포의 목적이었던 정치적 위기는 오히려 1차 계엄 전보다 더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계엄을 다시 시도할 개연성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 것도 분명하지만 전보다 더 절박해진 만큼 이판사판 식으로 가중된 무리함도 또다시 무릅쓸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 역시 전보다 더 커지는 것도 분명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즉 대통령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되기 전까지는, 계엄의 위기는 끝난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박지훈 IT 전문가jeehoon.imp.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