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헌정 회복 절차가 ‘탄핵’이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12월7일 밤 9시26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정족수 부재를 이유로 폐기되었다.
12월8일 오전 11시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질서 있게 조기 퇴진시킬 것이고, 퇴진 시까지 윤석열 대통령을 사실상 직무배제할 것이며, 그 기간 국정은 국무총리가 여당과 협의하여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헌정질서에 위배됨을 독립된 헌법기관인 판사로서 단언한다.(다만, 이 의견은 사법부를 대표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비상계엄부터 살펴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이고 위법하다.
‘야당의 정부 인사 반복 탄핵 및 예산 삭감’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므로, 비상계엄 선포는 선포 사유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권한이 있는 국회의 의정 활동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헌법과 계엄법이 명문으로 인정한 의회의 계엄 통제 권한을 원천봉쇄했다.
군이 국회의사당에 침입하여 국회의원 체포를 시도한 행위가 사실이라면 위헌, 위법을 말하기도 민망하다.
늦어도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이 발령된 순간에는 인식할 수 있었던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사법부가 즉시 지적하지 않아, 비상계엄이 해제되기까지의 6시간 동안, 군경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시민들이 비상계엄을 적법하다고 오해할 여지를 준 점에 대하여 판사로서 사죄드린다.
일련의 ‘비상계엄 사태’가 일단락된 후 진행된 상황을 보자.
헌법은 헌정질서가 한시라도 중단되지 않도록 몇가지 비상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상계엄도 이에 속한다.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대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헌정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태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러한 비상계엄 권한을, 자신의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야당 인사 등을 잡아들이고 노동자 파업과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막고 전공의 등 의사들을 의료 현장으로 강제 소환하기 위해 남용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군이 나라를 접수했고, 국회의 의정 활동이 불가능해질 뻔했으며, 국민들의 기본권이 중단되었다.
헌정질서 유지·회복을 위한 비상계엄으로 인해 헌정질서가 침해된 것이다.
하지만 헌법은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한 경우에도, 헌정 중단 없이 헌정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헌정질서 회복 절차가 바로 탄핵이며, 우리는 이미 한번 경험했다.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는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 사실상의 직무배제, 국무총리와 여당의 국정운영’을 선언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상 대통령이 그 직을 유지하면서 권한만을 여당 대표와의 합의 아래 내려놓을 수 있는가.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판결 등으로 자격을 상실한 때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등으로 하여금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정지시키는 규정은 국회법과 헌법재판소법상 탄핵소추 의결을 받았을 때가 유일하다.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는 현 상황을 ‘사고로 인하여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대통령이 물리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님에도 대통령과의 합의를 근거로 현 상황을 ‘대통령의 사고 발생’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탄핵소추가 아닌 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정지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헌법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헌법은 대통령의 궐위, 사망, 자격 상실 시 60일 이내 후임자 선출을 명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탄핵을 막고 자의적으로 대통령의 사고 발생을 선언하여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의 직무대행 상태 및 대통령의 사실상 공백 상태를 장기화하는 것은 헌법의 취지에 반한다.
헌법에 의하면 국회는 대통령보다 앞서 규정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 헌정질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헌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여야 한다(헌법 제46조).
국회는 조속히 헌법이 정한 헌정질서 회복 절차를 이행하길 바란다.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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