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쇠퇴할 때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음모가 남긴 후유증이 만만찮다.
탄핵을 기화로 정치적 득실을 셈하면서 벌이는 준동이 임계치를 넘어선 듯하다.
극우 성향의 광신적 종교 집단의 집회가, 윤석열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이끌려 파시스트 결사체처럼 폭동 세력화하고 있다. 주된 참가자들은 오랜 권위주의 습속에 길들어, 민주적 정치문화는 탐탁지 않다. 정치 지형의 변화로 초래된 불이익이 극우 선동에 심취하게 한다.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팬덤 현상까지 겹치면서, 봉인이 풀린 듯 미증유의 난동이 일고 있다.
이번 소동에서 첫째로 지적할 점은 말의 소통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쟁의 경우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일방적 주장만 있지 의견 교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말의 논리도 달라지고, 사고방식도 변하고, 그래서 처지가 다르면 서로 말을 건넬수록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적대적으로 바뀐다. 대부분 우연히 속하게 된 집단이지만, 그 정체성에 따라 확증편향으로 빠져드는 맹목성을 지닌다.
계엄령은 그동안 독재 탄압과 살인 학살의 공포감을 자아내는 상징어였는데, 이를 부정하고 계몽이라는 말로 억지를 부린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무장 군대의 통제로 이루어진 질서를 강요당했던 식민지 치하처럼, 계엄군의 계몽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같은 길거리 막말을 끌어다, 가장 엄밀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변론으로 거리낌 없이 내세운다.
둘째로는 소통이 되지 않으니 신뢰도 사라졌다.
믿지 못하고 의심이 팽배해지니까 음모론이 판친다.
민주사회의 핵심은 선거와 투표제도이다. 지난날 독재자들이 국민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선거와 투표에서 임의대로 불법 부정을 자행해 그 결과를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의 지지를 잃어 선거에서 패배하면 권력을 잃는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다.
그러나 지금 극우 세력은 애초 보수의 핵심축인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사법부를 비방하면서, 아예 철폐하겠다고 한다. 이 기구들이 예전과 달리 상식과 이성에 기초한 합리와 공정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배척일 터다. 특히 탄핵심판을 두고 헌법재판소를 향해 퍼붓는 공세는,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내란 행위의 연장이다.
권위주의 향수에 빠진 수구 정객들은 터무니없는 부정선거론을 제기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혹세무민의 수법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셋째로 소통이 안 되고 불신이 쌓이고 음모론이 횡행하는 뒤끝은 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야밤에 법원을 습격하는 끔찍한 폭동 행위가 저질러졌다. 무차별 파괴 행위와 방화 시도, 그리고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 건물 내부를 뒤지는 전대미문의 폭동이었다. 민주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윤리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그것도 잘잘못을 심판하는 사법부를 겨냥해 무소불위의 폭동이 거리낌 없이 자행됐다. 곧 단단해 보이던 민주주의 사회가 한순간 폭력 난동의 야만 사회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그런 폭도들을 향해 윤석열은 탄핵심판정의 마지막 진술에서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라고 감쌌다. 그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다는 품격은 고사하고, 제정신의 인격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듯하다.
거리에서도 줄기차게 열리는 광신적 집회에서는, 이런 막말과 폭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터무니없게 저항권 운운한다.
이런 사태에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는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곳곳의 집회를 찾아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파괴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폭도를 앞세워 폭력으로 정권을 되찾겠다고 하는 그들이 곧 내란 세력이다. 그 정권이 꿈꾸는 권력이란 ‘장님 무사가 휘두르는 칼날’ 같은 것이다.
넷째로는 품격을 잃은 사회가 됐다.
윤석열은 민주당이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고, 그 반국가 세력의 방해로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피해자라고 했다.
또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군인들이 시민들의 공격을 받아 부상했고’, ‘전 국정원 1차장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민주당 의원의 사주를 받아서, 하지도 않은 주요 인사 체포 지시와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거짓 증언’ 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경고용 계엄일 뿐인데 내란이라고 잘못 탄압받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옛날 동네에서 누가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억지를 부리면, 어른들은 ‘뎁데꼬깔한다’(‘적반하장’이란 뜻의 전라도 말)고 나무라면서 혼냈다.
한때 대통령이었던 자가 탄핵심판 내내 보여준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파렴치한 행태는 새삼스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뿐만이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개 발언들이 한결같이 판박이라는 점이다. 법정에서 하는 변론마저 최소한의 품격도 없는 광신도 집회 막말 못지않다. 거의 폭력적이고 터무니없는 궤변이 당의 공식적인 논평이 되고, 다시 법정의 변론이 됐다.
그 탓에 우리나라가 모범적인 선진 문명국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됐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우리에게 힘주어 전한 말은, 젊은 야학 교사 박용준이 광주항쟁에서 계엄군 공격으로 희생되기 전 마지막 밤에 쓴 일기 한 대목이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국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양심은 그만두고라도, 염치와 체면이나마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애초 이런 사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괴테는 생애 말년의 대화에서 “시대가 쇠퇴할 때의 모든 경향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모든 일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성숙해갈 때는 모든 경향이 객관적이다”라고 말했다.(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각자의 주장만 내뱉고 마는 시대와 상식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의 차이에서 흥망으로 갈린다.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망상적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에서조차, 이성과 상식을 배반하면서 정파의 수구적 사고에 매몰돼 궤변을 반복하거나, 광신도들의 얄팍한 사탕발림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는 정치인들을 응징하지 못한다면, 장차 이 나라는 어찌 될 것인가.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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