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대선이 더 쉬워졌다’는 착각

道雨 2025. 3. 11. 09:14

‘대선이 더 쉬워졌다’는 착각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이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은, 어퍼컷만큼은 아니지만 지지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의 석방은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이 장기화하고 더욱 가팔라지리란 걸 예고하는 것임엔 분명하다.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리란 기대는 한줌의 재로 변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뿌려졌다.

 

당장 국민의힘 진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자연인 윤석열’은 정치적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경선의 최대 변수는 후보자들이 아닌 윤석열이 될 것이다.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극우 성향의 김문수 또는 원희룡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에겐 본선 경쟁력보다, 누가 윤석열과 함께 강력한 투쟁을 벌여나갈 수 있겠는지가 더 중요하다.

 

 

문제는 이것이 탄핵과 대선 국면의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점이다.

“국민의힘이 윤석열과 단절하지 않으면 쪼그라들며 망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건전한 정당의 가치란 측면에서 ‘망했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세력의 측면에서 보면 꼭 그럴 거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2021년 1월 극우 시위대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미국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이를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가 4년 뒤 다시 대통령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결정적 차이가 이것이다.

탄핵을 끝까지 반대하고 2020년 총선 부정선거론을 외쳤던 황교안 전 총리 같은 부류는 그땐 소수였다. 지금은 그런 세력이 국민의힘 다수를 점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대표 주자는 중도보수 아닌 극우 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은 다시 구속돼도 내란죄 재판을 최대한 활용하며 국민의힘의 구심점 역할을 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극우가 발호하는 시대’다.

지난달 열린 독일 총선에서 네오나치(Neo-Nazi) 성향의 독일대안당(21% 득표)은 150년 전통의 사회민주당(16%)을 제치고 2위로 떠올랐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극우 정당은 연정에 참여하거나 집권 문턱에 다다르고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월20일 출범했다.

 

지난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 극우 정당 지도자들의 대규모 집회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어제까지 우리는 이단아였다. 지금은 우리가 주류다”라고 외쳤다.

 

12·3 내란 실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혼란과 폭력사태는, 한국도 극우 정치세력의 발호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경제 침체와 반이민 정서가 서구의 극우 성장 기반이 된 것처럼, 한국에선 저성장과 반중 정서가 극우 확장을 부추기는 온실 역할을 한다.

윤석열은 여기에 불씨를 댕겼다.

 

 

탄핵과 대선은 끝이 아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의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다.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서 “윤석열 석방으로 민주당의 대선 승리는 더 쉬워졌다”는 말이 나오는 건 걱정스럽다.

지금은 선거의 방정식을 따질 때가 아니다. 설령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모든 결과와 타협의 과정을 부정할 극우 정치세력과 마주하는 건, 나라 전체에 엄청난 부담과 상처를 안길 것이다.

국민 통합이란 대통령의 기본 사명을 망각하고 분열을 선동하는, 윤석열의 불끈 쥔 주먹은 그걸 상징한다.

 

많은 이들이 극우 정치세력의 지지율은 최대 30% 안팎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지율은 전통적 보수정당의 지지율(35~40%)과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굳이 강성 당원들의 정서를 거스르며 불확실한 중도로 가려고 하기보다는, 민주개혁 세력의 실책을 노리며 반전을 꾀하는 게 훨씬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다수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그런 극우 포퓰리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우리는 이미 무수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만에 하나 이 싸움에서 극우 세력이 일시적 승리라도 거두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재앙에 다름 아니다.

 

지금 당장, 그리고 헌재의 최종 결정 이후에도, 탄핵 반대 세력을 최대한 고립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

선거뿐 아니라 그 이후까지 내다보고 극우 포퓰리즘의 확장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민주주의 세력이 힘을 하나로 모아서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박찬수 : 대기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