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의 추격
1980년대는 일본 반도체의 전성시대였다. 일본전기(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 등 일본 반도체 6인방이 모두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에 포함됐다. 1980년대 중반에는 세계 디램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2년 만에 두배나 오르면서, 일본 반도체는 가격경쟁력이 약화했다. 1986년에는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됐다. 일본 내 외국 반도체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확대하고,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를 저가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의 생산량 확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1987년 말부터 디램 시장은 호황 사이클이 시작됐다. 1983년 디램 산업에 진출한 뒤 2천억원이 넘는 적자가 누적됐던 삼성 반도체 사업부는, 1988년 한해에만 3600억원의 이익을 거둬들였다. 선제적인 투자 결정으로 1988년 4메가 디램, 1989년 8메가 디램을 차례로 개발했고, 1992년에는 64메가 디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기술력과 시장점유율 모두에서 세계 1위에 오른다. 반면 일본 반도체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이승우 ‘반도체 오디세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후 수차례의 치킨게임을 거치며, 일본을 확실하게 밀어내고,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한 96억달러로 집계돼, 1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여기에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필두로 한 중국 반도체 업체의 저가 공세와 공급 과잉으로, 반도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디램 시장은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95%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빠르게 성장하며, 지난해 시장 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는 점유율이 10%가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최근 한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중국에 모든 분야에서 추월당했다는 전문가 설문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의 성장세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1980~1990년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을 메모리 시장에서 밀어냈던 방식과 유사한 현상이 지금 한국 업체들에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
안선희 논설위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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