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만 침공 실패와 ‘집단사고’(groupthink) 이론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 4월 초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쿠바인 망명자들로 침공군을 조직해 쿠바 남부 피그만 해안에 상륙시켰다. 미국은 침공을 시작하면 쿠바 민중이 봉기해 카스트로 정권을 쉽게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쿠바 민중은 카스트로 혁명군을 지지했고, 작전은 나흘 만에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침공군은 100여명이 죽고 1200여명이 포로가 됐다. 미국은 1년 뒤 포로 석방의 대가로 5000만달러 규모의 식품과 의약품을 카스트로에게 제공하면서 협상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정황을 조사한 역사가들에 따르면, 미국 정부 수뇌부는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토당토않은 침공계획을 짰던 것으로 드러났다. 쿠바 민심을 오해한 것은 물론이고, 피그만과 재집결 장소 사이에 광활한 늪지가 펼쳐져 있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침공군은 늪지에 갇혀 꼼짝도 못하다가 포로가 됐다.
중앙정보국(CIA)은 망명자들을 규합해 훈련시킨 것을 비롯해 처음부터 이 작전을 주도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작전 실패 뒤 불같이 화를 내면서 한때 중앙정보국을 해체해 버리려 했다.
군 수뇌부를 비롯해 최고의 정책 엘리트들이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저지른 과정을 두고, 1970년대 초 예일대의 어빙 재니스 교수는 ‘집단사고’(groupthink) 이론을 창안해냈다. 즉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일 경우, 현실성을 망각하며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논의가 점차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군과 보수층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대북 응징론을 쏟아내고 있다. 논리의 비약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한테서도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읽힌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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