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 ‘사찰사건’에 침묵할 것인가

道雨 2012. 3. 29. 11:06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이 엊그제 “기소된 7명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담당자가 정해져 있고 이 사실은 브이아이피(VIP)한테도 전달됐”으며 “총리실 정아무개 과장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브이아이피라고 말해 대통령으로 이해했다”고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폭로했다.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도 사찰 보고서가 민정수석의 윗선으로 직보됐다고 밝혔다.

장 전 주무관이 공개한 녹음파일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뿐 아니라 사후 은폐조작 과정에 대해서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는 대변인 설명 이외에는 묵묵부답이니 스스로 의혹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이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선 이상, 이 대통령에게 의혹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임 실장이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의 가족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것은 물론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그의 정책보좌관이던 이동걸씨가 장 전 주무관에게 4000만원을 건넨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해 장 전 주무관이 징계위원회에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털어놓자 다음날로 최 전 행정관을 노동부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임 실장 퇴임 뒤인 올 2월에는 대통령실장 직속의 인사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전화해 가스안전공사와 민간업체에 취업을 알선한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대통령 비서실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돈을 건네고 취업까지 알선하며 입막음 공작에 발벗고 나섰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 안에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2년씩이나 비선라인을 가동하고 수억원대의 입막음 자금이 동원되는 동안 이 대통령만 몰랐을까. 더구나 사찰 보고서가 ‘윗선’까지 전달된 게 사실이라면 이 대통령이 이들을 비호한 몸통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의혹은 쏟아지는데 청와대는 물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입을 맞춘 듯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용의선상에 오를 정도로 초대형 게이트의 성격을 두루 갖췄다. 진상이 끝까지 덮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검찰 수사가 여의치 않으면 특검과 국정조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관련자들부터 스스로 진상을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 2012. 3. 29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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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스페인 정상회담에 앞서 마리아나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있는 사이 잠시 아래를 바라보며 서성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잇단 의혹에 깊은 침묵]

 


“장진수 일방주장…수사결과 기다릴 것”
개입 의혹 인물 임태희도 해명않고 침묵
답답한 참모들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

청와대가 건국 이래 최대의 외교행사라고 홍보해온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사히 끝났으나, 28일 청와대에선 자축의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행사에 신경을 집중한 지난 며칠 동안, 민간인 사찰 사건이라는 올가미가 점점 청와대의 목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 재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말을 며칠째 반복하면서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아직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무슨 말이든 꺼내면 자칫 검찰에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실제로 우리는 아는 게 없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당시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지금 모두 청와대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 최근 기자회견을 연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과 2년 전 구속기소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두 사람을 꼽았다.

답답하다고 문제가 봉합될 리 만무하다는 점을 청와대도 예감하는 듯하다. 이 사건의 몸통이 결국 이명박 대통령 아니겠느냐는 세간의 수군거림을 청와대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이 이영호 전 비서관을 통해 ‘직보’를 받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이 대통령은 실제 핵심 비서관의 경우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따로 보고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청와대에는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미 이 사건 뒤처리 과정에서 돈이 오간 사실이 밝혀졌고, 청와대 인사의 연루설이 설득력 있게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청와대로선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당장 이 사건 ‘몸통’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29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돼 있다. 기자회견을 통해 자료 폐기를 자신이 지시했다며 몸통을 자처하고 나선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검찰 소환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청와대 참모들도 사건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처지다.

만약 검찰의 재수사 결과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의 배후였다면, 또는 청와대가 검찰의 1차 수사를 ‘요리’했다면,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은 정황이라도 확인된다면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이 대통령까지 거명되고 있지 않으냐”며 “우리로선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의 이번 재수사로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은 여전하다. 이영호 전 비서관의 윗선이 나오지 않을 때 국민적 의혹은 고스란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특별검사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고, 새누리당도 이를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다. 청와대도 이런 수순을 예상하고 있다.

청와대 관련 의혹의 당사자들은 일부 해명을 위해 직접 나서는 분위기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이날 퇴임 100일을 맞아 본인의 입장을 밝히려 했으나,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고려해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취업을 주선했던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