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찰을 허하라?… 정말 멘붕 아냐
이 땅에 사찰을 허하라?… 정말 멘붕 아냐?!
(CBS 노컷뉴스 / 변상욱 / 2012-03-30)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치인, 언론인, 공직자, 노조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불법 사찰을 벌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정권의 지지도와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정통성과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다수 대중에 의해 비난받으며 궁지로 몰릴 때 권력자들이 겪게 되는 정신적 위기, 요즘 흔히 ‘멘탈 붕괴’(멘붕)이라 부르는 현상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잘 될 거야, 나한테만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 라던 개인의 기대심리가 깨지며 불안해 진다. 근거 없는 개인의 막연한 심리적 기대가 무너지며 안정을 잃는 것이다.
2. ‘나름 잘하려 한 것이고 열심히 했으니 실수나 과오 정도는 이해하고 묻어 줄 거야’라고 사회에 대해 기대와 믿음을 걸지만 이것이 깨지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당황하게 된다.
3. 그래도 비난과 공격이 계속되면 ‘내가 그렇게 잘못하고 있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못나고 허약 했던가’라는 자괴감이 생겨난다.
4. 결국은 화살을 남에게 돌린다. 먼저 자기 휘하 조직에게 ‘이 인간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제대로 하는 일이 뭐야?’라는 분노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비난하는 다수 대중을 향해서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라는 분노를 품게 된다.
현 정권이 대대적인 민간 비밀사찰을 별도의 비선 조직을 동원해 시도한 것은 이 멘탈 붕괴의 4번째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건에 2008년부터 민간사찰이 진행된 걸로 기록되었으니 촛불 정국 때 멘탈 붕괴가 이뤄지고, 아침이슬을 부를 때 이미 사찰과 감시에 대한 구상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경찰? 니들이 더 무서워?
검찰경찰 등의 기존 조직에 대한 불신도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충성하는 것 같지만 자기 조직의 유지발전기득권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 레임덕이나 정권교체 이후 칼날을 돌려 댈 조직으로 보는 듯하다.
이렇게 정규 조직의 능력과 충성을 믿지 못하면 별도의 비선 조직을 운영해 사찰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상당한 예산과 인력이 소요되는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민간 사찰이 국무총리실 차원에서 이뤄질 수만은 없다.
국무총리실은 어차피 집권세력의 향방이나 정치권력하고 관계없는 조직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행정부 업무의 조정과 총괄에 몰두하는 조직이 민간 사찰에 나서는 게 말이 안 되고 사찰을 했다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 외에는 어디 쓸데도 없다.
◇ 정권의 책무는 민주공화국의 옹호
시민사회에 대한 정치적 보복은 노태우 정권을 분기점으로 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1989년 들어서면서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 조치를 유보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로 다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때 민주화운동 진영은 노태우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추진하며 정권불신임투쟁에 돌입했다.
그때 터진 사건이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 이를 기화로 정권은 대대적인 공안정국에 돌입해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을 동원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비상계엄까지 염두에 두고 그 준비 작업으로 반정부 인사 923명에 대한 사찰을 벌였다.
적절한 시점에 적당한 혐의들을 적용해 모두 잡아들인다는 ‘청명계획’도 짜두었다.
이것이 군부정권 통치시대의 마지막 시민사회 탄압이고 그 이후 문민정부 시대로 들어서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정치보복과 대대적인 민간사찰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민간 사찰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 상황과 노태우 정권의 상황이 닮아 있음을 반증한다. 대통령에 대한 강한 퇴진 요구가 등장하고 분열해 갈라졌던 야당이 하나로 뭉치면서 시민사회세력이 여기에 힘을 보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권력이 크면 책임도 크다. 그 책임은 국정 운영을 잘한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역사의 진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시대적 책임이다. 그리고 민주공화국 체제를 굳건히 하고 이어가는 것도 집권세력의 책임이다.
정치적 이념과 목적이 무엇이든 좋다.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 및 역사적 정체성을 사사로이 건드리거나 정파적 목적으로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 헌법 제 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저질러서는 안 될 행위들을 규정한 것이 형법이다. 이 형법을 어기면 형사범으로 재판에 붙여지고 처벌받는다. 그런데 형법이 아닌 헌법을 어기고 국가의 기간 질서를 흔들면 어찌 될까? 그것은 형사범이 아니고 국사범이라고 부른다.
나라의 정치적 질서를 침해하는 범죄, 국가 또는 국가권력 자체를 침해하는 범죄와 범죄자는 국사범으로 다뤄 마땅하다. 대대적인 민간사찰을 기획하고 승인하고 실행에 옮긴 모든 인물들은 국사범으로서 조사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변상욱 / CBS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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