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재단은 차은택 광고감독을 빼놓고선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재단의 설립부터 인사에까지 깊숙이 개입했다.
그가 4일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재단과 관련해 힘을 부린다거나 관여를 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곧이 믿기 힘든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차 감독의 영향력은 재단 설립의 첫 단추라 할 사무실 마련에서부터 확인된다. 임대차 계약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와 절친한 후배 김아무개(43)씨다. 김씨는 건물주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지만, 미르의 이사도 직원도 아니다.
김씨가 왜 미르가 입주할 공간을 마련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와 차 감독과의 관계를 보면 쉽게 풀린다. 차 감독이 12년 동안 대표로 있던 아프리카픽쳐스의 전 직원은 “두 사람은 친한 사이다. 김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에서 아프리카픽쳐스의 일도 맡아서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년 전 한 기획사에 이사로 나란히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네 살 차이인 두 사람은 광고와 뮤직비디오 제작 업무 등을 같이 하면서 가까운 선후배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디자이너인 김씨는 차 감독이 찍은 영상을 편집했다.
차 감독과 일한 경험이 많은 업계 한 관계자는 “차 감독이 김씨 회사에 일감을 많이 줬다. 우리도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김씨한테 맡기곤 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재단이 둥지를 틀 공간 마련뿐만 아니라, 재단을 이끌 핵심 인사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는 데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재단의 ‘얼굴’인 이사장은 그가 다닌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김형수 교수였다. 500억원 규모의 재단 살림을 실질적으로 꾸려나갈 사무총장 또한 그가 추천한 인사였다.
그리고 재단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이사회엔 이사장 이외에도 그가 추천한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이한선 전 에이치에스애드 국장이 이사로 들어갔다. 장 교수는 차 감독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고, 이 전 국장이 있던 에이치에스애드는 아프리카픽쳐스에 두번째로 많은 일감을 몰아준 회사다. 이 전 국장은 더구나 재단의 사업을 전담한 상임이사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업계 한 관계자는 “이씨가 차 감독의 ‘메신저’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차 감독이 직접 추천한 것으로 확인된 이사들 이외에도, 그와 활동이 겹치는 인물들이 미르의 이사들로 줄줄이 포진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씨가 전면에 등판한 건 2014년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다. 그런데 그가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김영석 한복디자이너,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 채미옥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연구센터장이 미르의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차 감독은 미르 재단 설립에 깊숙이 관여했지만, 미르의 ‘쌍둥이’ 격인 케이(K)스포츠 재단엔 그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다. 케이스포츠엔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비선실세로 꼽히는 최순실(60)씨가 직접 재단 설립 및 인사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최씨가 케이스포츠에는 직접 관여했지만, 문화를 매개로 하는 미르 재단은 차 감독한테 맡긴 모양새다.
그렇다고 둘이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상하 또는 수직적 관계에 가깝다는 게 두 사람 주변의 평가다. 미르 재단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의 사람들로 조직을 꾸릴 수 있었던 차 감독의 영향력도, 결국 최씨를 빼곤 설명하기 힘들다. 한때 차 감독과 사업을 같이 했던 한 인사는 “차 감독이 최씨와 관계가 있다는 얘기는 업계에 지난해부터 나돌았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