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스캔들’, 미국이라면 대통령에 ‘징역 수백년형’
최순실 사건은 국가 보안 붕괴 사건
국제관계를 맡고 있는 기자는 주로 미국 정부기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미 백악관이나 국무부 그리고 국방부 대변인들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지난 2일, 미 국방부 대변인한테 보낸 메일에서 뜬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소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던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대변인은 내가 보낸 이메일이 모두 필터링(filtering)되었다는 표시와 함께 이를 확인하고 다시 보내라는 답변이었다.
문제는 기자가 다른 매체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그 기사 주소(URL))를 링크해 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기자도 10여 년 전에 인터넷 보안회사를 경영한 관계로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고, 미 정부기관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여러 번 경험했지만, 또 ‘깜빡’한 것이었다.
보내는 메일에 링크나 이른바 코드를 담을 수 있는 ‘스크립트(script)’ 등이 담겨 있을 경우, 수신인이 이 이메일을 클릭하는 순간, 해당 컴퓨터에 있는 모든 정보가 상대방에게 전송될 수 있는 취약성이 존재한다.
미 국방부나 정부기관들은 이미 예전에 밝혀진 이러한 해킹 취약성을 방어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이메일도 보안 필터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이러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최근 이른바 ‘최순실 부패 스캔들’에 관한 JTBC의 특종 보도를 보면서, 아연실색으로 거의 심장이 멎을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 뚫는 기술이 앞서가는 해킹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 딱 한 가지가 이른바 ‘망 분리’이다. 국가의 중요 정보가 담긴 컴퓨터는 인터넷과 절대 연결시키지 않고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한국 청와대도 이를 잘 알고 있어 국가 중요 문서가 담긴 컴퓨터는 망 분리를 통해 따로 관리한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청와대의 누군가가 최순실과 연설문이나 국가 기밀문서를 주고받은 정황이 분명하다. 그렇게 이메일을 주고받기 위해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은 정보 보안에서 보면 내 정보를 모두 다 가져가라는 것이나 똑같은 행위이다. 국기 문란이 아니라 국가 보안의 붕괴인 것이다.
이미 예전에 밝혀진 일이지만, 미국은 최첨단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해 이란의 핵 활동에 관해 정보를 감시하고 있었다. 인터넷망과 분리해 놓은 이란 정부는 절대 자료가 유출될 수 없다는 것만 맹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란 정부 컴퓨터에 꼭꼭 숨겨진 이 바이러스는 한 과학자가 이메일 등의 사용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미 정보기관으로 전송했다. 이란은 당연히 자신들이 해킹을 당했는지도 몰랐다. 바로 기자가 보도를 보면서 심장이 멎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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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뉴시스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누군가가 그렇게 수시로 청와대에서 최순실에게 국가 기밀자료를 주고받았다면, 이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넘어서서 국가 기밀정보에 대한 보안이 다 무너진 사건이다. 특히, 비선 실세들이 아무런 도덕적 의식도 없이 민간인인 최순실에게 이러한 기밀문서를 주고받았는데, 그들에게 보안 의식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태는 또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흔히들 이번 ‘최순실 부패 스캔들’을 지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과 비유한다. 하지만 ‘최순실 부패 스캔들’은 ‘이메일 스캔들’과는 비유도 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힐러리는 국무장관에 취임하면서도 자신이 계속 사용하던 사설 서버의 개인 이메일을 계속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국무부 규정을 어기고 사설 메일 서버를 사용하면 해킹에 취약할 수 있어 힐러리가 주고받은 메일들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결국,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주고받았던 전체 메일을 국무부나 조사기관 등에 제출하고 전수 조사를 받았다. 국가 1급 기밀로 분류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됐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은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힐러리가 다 직책을 맡고 있는 관련자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업무를 했지만, 이것마저 해킹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힐러리가 단 한 건이라도 정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민간인에게 사전에 국무부 장관의 연설문이나 국무부 회의자료를 공개하고 이에 관한 의견을 묻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비서관을 시켜서 정부 직책도 없는 일반인에게 국가 주요 연설 초안이나 백악관 회의 자료를 사전에 보내고 의견을 주고받는 행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는 탄핵이나 사퇴의 사유가 아니고 바로 감옥행이고 최소한 수백 년형이 선고될 사항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국가 보안을 완전히 무너뜨린 이러한 상상 불가의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실토했듯이, ‘봉건주의 시대’에도 일어나지 않을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했다.
다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는 소리가 빗발친다. 기자 역시 평소 친분이 있는 외신 기자나 미국 관계자들이 국가 보안이 완전히 무너진 이 부패 스캔들 사건에 관해 물어 올까 두려움이 앞선다.
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할까?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