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그을린채 나타난 1조 가치 '훈민정음 상주본'
- 국회의원 공약된 국보급 문화재
재선거 출마 재산1조 등록하려다 "실물 확인못해" 선관위 퇴짜맞아
- 소유권, 문화재청에 있는데..
원소유주 골동품商이 국가 기증.. 배씨, 수년간 반환 않고 버티기
문화재청 "내달 반환 소송낼 것"
문화재청이 '1조원 넘는 가치가 있다'고 감정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의 일부가 불에 그을려 훼손된 채 사진으로 공개됐다.
국보(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과 같은 판본인 이 책은, 경북 상주에서 나왔다고 해서 '상주본(尙州本)'으로 불린다.
고서적 판매상 배익기(54)씨는 10일 본인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주본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배씨는 지난달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의 국회의원 재선거(4월 12일)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1조4800만원이라고 신고하려고 했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상주본의 가치를 '1조원 이상'이라고 감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주시 선관위가 "실물 소유를 확인할 수 없어서 불가하다"며 이의를 제기해 재산 등록은 무산됐다.
배씨는 사진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훈민정음 해례본이 빛을 보게 하려고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지만, 내가 상주본 소장자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으로 보면 종이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있다.
배씨는 "2015년 3월 집에서 불이 났을 때 1장은 소실됐고, 나머지 일부도 탔지만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산속 깊이 숨겨 두었다"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완전히 공개하겠다"고 했다.
◇'국보급' 상주본은 어디에
상주본은 지난 2008년 7월 배씨가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공개했다. 표기와 소리에 대해 한글이 섞인 주석을 붓글씨로 기재한 내용이 포함돼 주목을 받았다. 한글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어 '간송본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당시 상주본을 살펴본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장은 "전체 33장 중 앞 7장과 뒤 1장을 빼고 20여 장이 있었다. 간송본과 같은 판본인데 인쇄 상태가 더 좋았다. 100% 진품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나 상주본이 공개된 직후부터 '주인 논란'이 일었다. 배씨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했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2008년 7월 배씨가 가게에서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몰래 훔쳐갔다"며 배씨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고, 형사소송에서는 배씨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지만, 배씨가 해례본을 훔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배씨는 2014년 5월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대법원은 당시 "전문가에게 맡겨 보관·관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고, 배씨는 "책임지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5월 반환 소송"
현재 상주본이 온전한 상태에 있는지는 배씨 외에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지난 2015년 3월에는 배씨 집에 불이 나면서 상주본이 훼손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전문가들은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한 종이 문화재이기 때문에 과학적 보존 처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현재 상주본의 소유권은 문화재청에 있다. 소유권을 인정받았던 조씨는 2012년 '되찾으면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고 기증식까지 했는데 그해 숨졌기 때문이다.
도중필 문화재청 안전기준과장은 "상주본은 이미 조씨로부터 기증받아 국가 소유"라며 "올해 1월과 2월 두 차례 배씨 앞으로 '인도 요청서'를 보냈다. 배씨가 계속 버틸 경우 5월쯤 반환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배씨는 "형사 사건도 무혐의로 최종 결론이 났다. 소송에 지더라도 절대 내놓지 않겠다. 만약 구속이 된다면 나도 불행하지만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커 파국만 맞을 것"이라고 했다.
☞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제작 원리와 사용법, 예시를 풀어 쓴 판본. 한글이 창제된 지 3년이 지난 세종 28년(1446년) 발행됐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간송 미술관에 소장된 해례본(간송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상주에서 같은 판본(상주본)이 발견됐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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