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비밀예산 '묻지마 특수활동비' 1조원의 행방
상납금이 특수공작금? 쉬쉬하고 나눠 쓴 정부·국회도 '공범'
■ 연간 60억원 국정원장 판공비, 퇴임 후 챙겨 가도 ‘모르쇠’
■ 특별사법경찰 운영해도 힘없는 기관은 특활비 없어 ‘볼멘소리’
■ 국회는 수년째 말로만 제도 개선 운운하면서 ‘흐지부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양재천변을 따라 타워팰리스·대림아크로빌 등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즐비한 지역에 국정원 소유의 I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지하 5층, 지상 18층 규모로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2~18층을 사용한다. 나머지 1~11층은 일반 사무실과 일식집, 여행사 등 상가로 임대 중이다. 일반인들은 11층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12층 이상은 출입이 제한돼 있다.
그런데 2010년 7월, I빌딩에서는 ‘수상한 공사’가 진행됐다. 823㎡(248평) 규모의 맨 꼭대기층 중 4분의 3가량을 개조하고, 1층부터 18층까지 논스톱으로 운행되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또 내부는 주거용으로 리모델링을 한 후 유명 크리스털 브랜드 장식품과 고급 집기 등을 들여놓았다. 공간 개조와 인테리어 공사 등 리모델링에 들어간 비용은 10억원이었다.
고급 펜트하우스로 탈바꿈한 이곳은 원세훈(66·구속 수감) 당시 국정원장과 부인 이모(65) 씨가 사용했다. 2011년 원 원장이 내곡동 관저를 두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도곡동 안가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당시 국정원 측은 “1995년 지어진 기존 국정원장 관저가 너무 낡았고, 빗물이 새 수리 공사를 하고 있다”며 “(도곡동 빌딩은) 임시 관저”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 국정원 관련 적폐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 결과는 국정원 측의 당시 해명과 달랐다. 검찰은 국정원 적폐청산 TF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하는 한편 당시 국정원 예산 업무를 담당한 기조실 관계자 등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검찰은 “도곡동 펜트하우스는 원 전 원장 부인이 지인들과 모임을 갖는 사적 공간이었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당시 공사업체를 원 전 원장이 직접 골랐고, 공사 과정은 부인 이씨가 주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검찰은 건물 리모델링 공사에 사용된 비용 10억원을 국정원 예산으로 처리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국정원 예산은 다름 아닌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를 뜻한다. 공사비 전액을 우선 현금으로 지급한 뒤 이를 ‘해외공작금’ 항목으로 회계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회계 서류에 별도의 영수증은 첨부하지 않았다. 도곡동 펜트하우스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2014년에 철거됐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만 낭비한 셈이다.
검찰은 원 원장 재직 때 또 다른 거액의 특활비가 해외로 빼돌려진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1~2012년 200만 달러(약 20억원)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미국 스탠퍼드대의 한 단체 계좌로 이체됐다. 이 돈 역시 ‘해외공작금’ 명목으로 회계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송금에 관여한 국정원 기획조정실 직원들을 소환해 “원 원장의 지시로 돈을 만들어 미국에 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같은 큰 규모의 돈이 공작금 명목으로 외국의 한 대학 단체에 전달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원 전 원장의 부인 이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0만 달러의) 이자까지 350만 달러가 연구소 펀드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MB) 정부 국정원은 원장의 특활비 사적 유용 외에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간인 여론 조작팀(사이버 외곽팀) 활동 비용으로 30억원의 특활비를 사용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으로 구성된 30개팀(3500명)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원을 지급했다.
━ 경제부총리 집무실서 1억원 상납 의혹
이렇게 문고리 3인방에게 전달된 국정원 특활비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당부분 건너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활비는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전달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2014년 6월 취임한 조 수석에게는 매달 500만원씩 총 5000만원 정도가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근혜 정부 실세 정치인 중 한 명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도 특활비 1억원이 전달된 정황을 잡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최 의원이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낼 당시인 2014년 10월 집무실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이병기 당시 원장의 지시를 받은 이헌수 기조실장이 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이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그 이전 정부 때도 국정원의 특활비 전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른바 ‘눈먼 돈’으로 불리는 국정원 특활비는 정보활동의 기밀성을 이유로 그동안 용처가 공개되지 않았다. 몇 차례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매번 정치권에서 공방만 벌이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정원 특활비 중 겨우 1% 정도가 최근 검찰 수사로 베일을 벗고 있을 뿐인데도, 일반 여론은 “충격적이다”는 반응이다.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제도적 감시와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특활비를 이번 기회에 아예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국정원 직원 C씨는 “국정원장의 사적 전용이나 청와대 상납 등 최근 드러난 특활비 사용 행태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과거 진보·보수 정권 할 것 없이 국정원 자금이 본래 목적 외에 정치권·시민단체 등에 어떻게 쓰였는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면, 국민은 진즉 국정원 문을 닫으라고 성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또 “감시를 받지 않는 4000억원대의 국정원 특활비 규모는 눈속임일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C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종종 언론에 보도가 나오기는 하지만 국정원 예산이 어떻게 구성되고 편성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가 대략 4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예산 운용 행태로 보면, 베일에 쌓인 돈은 그 배에 달한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C씨의 이런 언급은 국정원 예산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국정원 예산은 본예산과 예비비로 구분된다. 공식 예산인 본예산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특활비다. 특활비는 정보 수집 및 사건 수사와 그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활동을 은밀히 수행하는 정보 조직의 특성상 국정원은 특활비 자체가 본예산으로 편성된다.
일반인들은 일반 부처처럼 국정원 예산 중 일부가 특활비로 편성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정원 전체 예산이 특활비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서훈 국정원장 역시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2017년 5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서 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 예산이 대부분 그렇게(특활비로) 되어 있지요? 전부 다”라고 물었다. 이에 서 원장은 “예”라며 “국정원은 특활비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모든 일반 예산이 다 편성돼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국정원은 본예산 전체가 특활비로 분류돼 있어,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거나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회계 처리가 가능하다.
국정원 예비비도 실질적인 사용 행태는 본예산인 특활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국정원 예비비의 정확한 명칭은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다. 이 역시 외부의 검증을 따로 받지 않는다.
국정원 예비비 처리 과정은 당연히 정부 일반 부처가 따르는 절차와 다르다. 일반 부처는 예비비가 필요할 경우 그 사유와 금액 등을 담은 명세서를 정부(기획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국정원 예비비는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라는 이름으로 기재부 예산 내역에 기재만 될 뿐 고스란히 국정원 계좌로 옮겨진다. 마음만 먹으면 예비비 역시 국정원이 ‘눈먼 돈’처럼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국정원 예비비를 특활비와 따로 구분하지 않고 통칭해서 특활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국정원 예산은 전체가 특활비
전직 국정원 관계자 C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정원이 하는 일은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국정원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소관이 아닌 타 부서에서 하는 일은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자기 월급이 어떻게 짜이는지도 잘 모른다. 매달 지급되는 총액만 알고 있을 뿐 기본급이 얼마인지, 수당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개개인이 받는 월급도 이렇게 관리되는데 대부분 은밀한 정보활동 등에 쓰이는 특활비 등은 어떻겠나.
본예산인 특활비뿐 아니라 예비비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거나 삭감하는 경우는 그동안 별로 없었다. 결산 역시 마찬가지다. 타 부처의 경우 사용한 예비비 명세서를 작성, 기재부를 통해 감사원에 제출하지만, 국정원은 대상 기관에서 빠져 있다. 예비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넘다 보니 비상금이 생활비보다 더 많은 셈이다. 예비비 편성 원칙상 예측할 수 있는 곳에 쓰여져야 하는데, 국정원은 ‘국가 안보상 필요성’을 이유로 그런 원칙에서 항상 예외였다. 그러다 보니 간혹 국회나 시민단체로부터 ‘깜깜이 예산’이라며 비판도 받아왔지만, 형식적인 견제만 있을 뿐 별 탈 없이다 넘어갔다. (1조원 규모의) 국정원 예산 전체를 영수증 필요 없는 특활비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씨의 설명처럼 그동안 국정원 예산은 국회 정보위에서 형식적인 심의만 받고 넘어갔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국정원이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 심의 관련 보고서에는 본예산 OOOO억원, 예비비(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 XXXX억원 하는 식으로 액수를 합산해 놓았을 뿐, 구체적으로 세부 항목을 하나하나 구분해 기재하고 해당 항목별 액수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이러다 보니 관련 서류라는 게 불과 한두 장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 예산의 이 같은 처리 방식은 ‘국정원법’과 ‘예산 회계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앞서 지적했듯이 국정원 예산 전체가 특활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 예산이 공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8월 감사원은 문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 집행실태 점검’을 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국정원 예산은 ‘고도의 비밀 유지 필요성’ 등의 이유로 제외됐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 관계자는 “(국정원 예산은) 지출 증빙 서류를 제출할 의무가 없고, 예산·결산 심사도 예산특위가 아닌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만 비공개로 진행돼 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특활비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특수공작비’
MB 정부 당시 국정원 기조실에 근무한 이력이 있는 P씨는 “원장 판공비 내역은 원장 자신과 기조실장, 감사관, 기조실 예산담당 실무책임자 정도만 알고 있다”며 “원장이 받는 월급이나 지급된 법인카드는 판공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과거 일부 국정원장 중에는 퇴임 시 판공비를 반납하지 않고 갖고 나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퇴임 시 목돈을 챙겨 나가는 것이 일종의 전관예우로 받아들여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월 5억원이나 되는 판공비를 실제로 다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여 그 돈을 다 쓴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슨 명목으로 지출했는지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 또 만에 하나 국정원장 판공비가 바닥이 나더라도, 다른 부서의 특활비를 여러 명목을 붙여 끌어 쓸 수도 있어, 국정원장의 현금 금고는 바닥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20년 가까이 정보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 관계자 K씨도 국정원장 판공비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정원장이 자신의 판공비로 청와대와 검찰·경찰 등 핵심 기관의 주요 인사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자 미덕처럼 여겨졌다”며 “과거 여의도 정보모임에서는 청와대 수석이나 정부 실세 장관, 여당의 핵심 정치인 등에게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돈이 전달됐다는 확인되지 않는 얘기가 비밀스럽게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특히 총선이나 지방선거, 당내 경선 등 각종 선거를 앞두고 이런 돈이 오고 갔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로는 많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총선 또는 지방선거에서 서울이나 수도권 핵심 지역, 관심도가 집중되는 박빙 선거구를 중심으로 특활비가 지원됐다고 한다. 선거 판세를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도 국정원이 비용만 대거나 필요에 따라 직접 조사를 하기도 했다. 정당 내 경선 때도 국정원이 은밀하게 자금을 대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선거가 끝난 후 당선이나 취임 축하조로 돈을 건네는 일도 많았다. 국정원에서 나오는 돈은 꼬리표가 전혀 붙지 않아 탈 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정원장이 직접 집행하는 돈은 대부분 ‘특수공작사업비’라는 이름으로 처리됐다고 알고 있다. 조윤선 전 수석이나 최경환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국정원장이 직접 집행하는 특수공작비에서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특활비 중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이 특수공작비다.”
올해 국정원 예산안을 심의한 국회 정보위가 삭감한 국정원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국정원 특수공작비였다. 김병기 의원은 “청와대 뇌물 상납 물의를 빚은 특수공작비를 50% 삭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활비의 부적절한 사용이 문제가 된 사례는 드물지만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2009년 11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서 특활비로 기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려 입길에 올랐다. 그는 2011년에도 검찰 고위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서 검찰 간부들에게 200만~300만원씩, 총 9800만원의 특활비를 봉투에 담아 격려금으로 돌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10년 9월, 당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문화부 제2차관 재임 시절 13개월간 1억9000만원에 이르는 특활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개인 유흥과 골프 접대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이었다. 또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부적절한 특정업무경비 사용이 결정타가 돼 낙마했다. 그는 월 400만원의 특정업무 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두고 주말에 수차례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을 놓고 ‘김영란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 과거 검찰은 중수부가 특활비 가장 많이 챙겨
이런 사례로 볼 때 검찰 역시 특활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히 검찰의 특활비는 검찰총장의 활동 자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원래 검찰 특활비는 법무부가 아닌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수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돈이다. 그러나 인사와 예산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가 280억원(2017년 기준) 상당의 특활비를 검찰총장에게 모두 귀속시키지 않고 그중 일부를 법무부 장관 특활비 명목으로 ‘유보’를 해왔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서는 “장관과 총장이 나눠 가지는 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검찰 고위 인사인 B변호사는 “법무부 특활비는 처음부터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장관이나 법무부 간부들의 몫은 없다”면서 “(법무부 측이) 특활비를 확보하기 위해 검찰 특활비 일부를 관행적으로 다시 가져가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법무부가 검찰에서 돌려받는 특활비는 매년 억대가 넘는 금액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총장이라고 해도 특활비를 자신이 모두 쓰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일선 지검과 고검에 내려간다. 검찰청의 규모에 따라 금액은 대략 정해져 있다. 수사 기능이 많은 지검이 고검보다 더 많은 특활비를 받는다. 또 같은 지검이라도 검사 수가 많고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이 가장 많은 금액을 받는다고 한다. B변호사에 따르면 부서에 따라서도 내려가는 특활비 규모가 다르다. 또 수사 부서라도 그 파워와 영향력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폐지된 대검 중수부에 총장의 특활비가 가장 많이 내려간 것으로 안다. 중수부가 정치인·기업인 등 검찰의 핵심 수사를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중수부에는 못미치지만 공안부에도 상당한 특활비가 지원됐다. 대검과 각 지검에 특활비를 지급하고 남은 돈은 총장 활동비가 된다. 과거 출입 기자단에게 밥을 사거나 봉투를 돌릴 때 사용되기도 했다.”
특활비는 국정원·법무부·경찰청 등 수사나 정보 수집에 준하는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지만, 이들 기관 외에도 정부 부처별로 일정액이 매년 책정된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실제로 정부 각 기관에서 특활비로 사용한 금액은 8조4268억원이다. 인구 300만 명이 넘는 인천시의 한 해 예산(8조 3132억원)보다 많다. 광역자치단체의 한 해 예산보다 많은 국민 세금이 특활비로 쓰이는데도 어떻게 쓰이는지 검증할 방법은 없다.
기관별로 보면 국정원이 지난 10년간 특활비 4조6969억원을 사용해 전 기관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론 국방부가 1조5888억원, 경찰청 1조393억원, 법무부·검찰이 2707억원 상당의 특활비를 썼다. 4개 기관 외에 지난 10년간 1000억원 대 이상의 특활비를 쓴 곳은 청와대(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실)다.
━ 지난 10년간 청와대도 1000억원대 특활비 사용
최근 특활비가 문제되자 각 부처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법무부에 책정된 특활비 중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70억3700만원) 항목은 한국을 드나드는 외국인 중 ‘위해(危害) 인사’를 확인하고 이들의 해외 동선을 추적하는 데 쓰는 예산이다.
감사원의 특활비인 ‘감사활동경비’(30억9600만원)는 공직 사회에 노출할 수 없는 암행 감사 활동비가 들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편사업특별회계상 수탁사업비’(5억1800만원)는 국정원이 대테러 업무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테러단체 관련 우편물을 감시하는 예산으로 사용된다.
상대적으로 특활비 책정에 소외된 일부 정부 기관은 그들 대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소위 힘없고 빽 없는 기관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기류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특별사법경찰이 배치돼 식품·의약 관련 수사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특사경이 문화재 도굴 등을 수사하는 문화재청, 선거 사범을 적발해 조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은 별도의 특활비가 책정돼 있지 않다.
정부 각 부처의 특활비 사용의 적정성을 따지는 국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2018년 책정된 국회 특활비 총액은 72억2200만원(예비금 포함)이다. 세부항목은 ‘의정 지원’ ‘상임위 운영 지원’ ‘의회 외교’ ‘사무처 기본 경비(국회의장단)’로 돼 있다. 2017년 특활비 88억800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총액은 15억8600만원 줄었다. 하지만 이 감액분은 ‘특정업무경비’와 토론회·공청회 등 소요경비, 포상금으로 전환돼 실제 감액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특정업무경비와 포상금은 지출을 증빙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예산에 따른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특활비를 감액하고 투명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회 특활비 역시 국정원 못지 않게 방만하게 운영돼 왔다는 사실이 우연히 공개된 적이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5년 5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취지의 글을 올렸다.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매달 국회 특활비를 4000만~5000만원 씩 받았는데, 그 돈을 현금화해서 쓰다가 남은 돈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 아내는 그 돈을 대여금고에 모아뒀다.”
홍 대표는 그 돈을 자신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갈 때 경선자금으로 사용했다고도 했다. 당시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지만, 공적인 용도에 써야 할 특활비를 사적으로 부당하게 사용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홍 대표는 시민단체로부터 국회 특활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 “특활비 제도 개선이 진짜 적폐 청산”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회의장은 국회 소관 예산요구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특활비 등 별도의 총액으로 제출하는 항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국회법 제23조 3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국정원과 국회 등의 ‘묻지마 특활비’를 통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활비 집행 내역을 정확하게 기재하고 이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추되 비공개 결산을 하는 방향으로 국정원법과 국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이 실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준표 대표의 언급 등으로 특활비 사용과 관련해 국민적 비난이 거세게 일어난 2015년에도 여야 정치권은 “예결위 내에 특활비 개선 소위를 구성해 집행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적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많다. MB정부 당시 국정원 기조실 직원으로 일했던 P씨는 취재 말미에 “국정원만 때려잡고 끝낸다면 진정한 적폐 청산이라고 할 수 없다”며 소회를 밝혔다.
“국정원의 행태가 잘못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비난을 감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국회나 검찰 역시 과거 자신들의 특활비 사용 내역이 적나라하게 국민 앞에 공개된다면 똑같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적폐청산을 하려고 한다면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특활비 문제를 제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대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나.”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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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성근·김여진 합성사진 유포' 국정원 직원 집행유예 선고 (0) | 2017.12.14 |
웬만한 법으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