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세금 삼키는 덫 ISDS가 몰려온다. "투자자에 유리한 ISDS 뜯어고치자"

道雨 2019. 7. 6. 11:14




세금 삼키는 덫 ISDS가 몰려온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봇물

"한국 ISD 피소 가능성 0%"
8년 전 정부, 호언장담했지만
9건 제기당해 청구액 9조원 넘어
중재비·변호사비만 이미 430억원

수십억대 수임료 받을 수 있는
변호사업계 '블루오션'으로 떠올라
한미 FTA 맺은 것도 증가 계기
'국정농단' 등 후진적 행태도 빌미

정부는 여전히 밀실주의 고집
"폐기하거나 근본적 개혁해야"


ISDS.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1. 2011년 10월19일 국회 본회의 현장.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초국적 자본이, 대한민국 독점재벌에 투자한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중재를 청구할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입니다.”(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는 전 세계적으로 체결된 양자 간 투자협정에 대부분 포함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김황식 국무총리)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 동의를 앞두고 아이에스디에스를 ‘독소조항’이라고 야당이 비판하자, 같은 해 11월 기획재정부는 ‘아이에스디(ISD)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입니다’라는 홍보 책자를 펴냈다. “정부 조치가 정당하고 미국 투자자에게 비차별적인 경우에는 아이에스디 피소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피소 가능성 0%.”




#2. 2018년 10월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제기된 아이에스디에서 모두 패소한다면, 도대체 이게 우리가 감당이 가능하겠습니까?”(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계부처와 대응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간에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박상기 법무장관)


8년 전 ‘피소 가능성 0%’라던 한국 정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2012년 12월 론스타가 5조원대 청구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뒤, 2015년 1건(다야니 사건), 2016년 1건(하노칼 사건), 2018년 4건(미국인 서아무개 사건, 엘리엇 사건, 메이슨 사건, 쉰들러 사건)의 아이에스디에스가 제기됐다. 올해 상반기에만 2건(캐나다인 김아무개 사건, 게일 사건)의 중재의향서가 추가로 접수됐다.

누적 청구 금액은 9조원을 넘었다.(약 9조2055억원)


2011년 11월 기획재정부가 펴낸 ‘ISD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입니다’란 제목의 홍보 책자 일부.



ISDS 왜 갑자기 늘어나나


가장 최근에 제기된 아이에스디에스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포스코 건설과 소송을 벌이는 미국 부동산개발회사 게일인터내셔널(게일)이 지난달 20일 제기한 것이다. 게일은 이날 2조원대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중재의향서를 제출하면 90일 이후에 중재를 정식제기할 수 있다.


9건 가운데 1건(다야니 사건)은 우리 정부가 져서 이의(취소소송)를 제기한 상태고, 1건(하노칼 사건)은 투자자가 취하했으며, 7건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취하된 하노칼 사건(1900억원)을 제외한 8건의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모두 진다면 9조원이 넘는 배상금(약 9조155억원)을 물어야 한다. 이기더라도 변호사 비용과 중재비는 돌려받을 수 없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실제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쓴 중재인 비용과 변호사 비용을 합치면 430억원을 넘는다. 올해는 론스타 사건 등의 중재판정에 대비해 3000억원을 예산으로 확보한 상태다. ‘세금 먹는 하마’인 셈이다.

이처럼 사건이 잇따르자, 우리 정부는 지난 4월에야 부랴부랴 컨트롤타워를 맡을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꾸렸다. 주무부처인 법무부 외에도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참여하는 범정부 합동 조직이다.


우리나라는 1964년 독일과 투자협정(BIT)을 맺을 때부터 아이에스디에스 가능 국가가 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론스타 이전까지는 한번도 제기된 적이 없는 ‘아이에스디에스 무풍지대’였다.

하지만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4월 펴낸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새로 제기된 전세계 아이에스디에스 사건은 71건이며, 한국(4건)은 콜롬비아(6건), 스페인(5건)에 이어 세번째로 아이에스디에스를 많이 제기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에 아이에스디에스가 갑자기 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아이에스디에스가 변호사 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청구 가액이 많으면 수조원에 달해, 사건을 유치하기만 하면 막대한 수임료가 보장된다. 특히 아이에스디에스는 성격상 미국과 영국 등 글로벌 로펌과 경쟁하는 터라 몸값이 높게 책정돼 있다. 외국인 투자자는 물론 정부도 외국 로펌 한곳, 김앤장·태평양 등 국내 대형 로펌 한곳 등 두곳 이상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정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의 ‘2018년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아이에스디에스 사건 가운데 투자자가 이긴 경우 평균 청구액은 13억달러(약 1조5200억원), 평균 배상액은 5억100만달러(약 5800억원)였다. 한국 정부에 제기된 국제분쟁 사건의 평균 청구액은 8억9000만달러(약 1조400억원) 정도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의 노주희 변호사는 “청구 액수가 커서 최근 불황인 법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쪽 변호사들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아이에스디에스를 제언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한국이 체결한 국제투자협정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9년 4월 현재 우리나라는 투자협정 87개와 자유무역협정 15개가 발효 중이다. 이 중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협정에 아이에스디에스 조항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2012년 3월 발효되면서 분쟁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미국 투자자는 국적별 기준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아이에스디에스를 제기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에 제기된 국제분쟁(9건) 가운데 절반(4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내세웠다.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새로 제기된 아이에스디에스 사건은 71건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제기된 사건은 다자간 협정인 에너지헌장조약(7건)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셋째, 국내 정치권과 경제계의 후진적 행태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먹잇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과 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개입(국민연금에 합병 찬성 강요)으로 손해를 봤다며, 지난해 아이에스디에스를 나란히 제기했다.

스위스 승강기 제조업체인 쉰들러는 부당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했는데, 금융감독원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고 아이에스디에스를 청구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엘리엇, 메이슨 사건과 쉰들러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파행적 국정 운영, 재벌의 후진적 경영권 행사가 국제분쟁을 불러온 경우”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토지 강제수용 정책도 아이에스디에스에 취약하다. 한국 정부는 재개발할 때 토지·건물을 강제수용하는데, 보상액 기준은 공시지가다. 공시지가는 실제 거래액(시장가치)을 반영하지 못하는 탓에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 입장을 유지해왔다.

2017년 9월 한국계 미국인 서아무개씨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자신의 부동산이 재개발 과정에서 강제수용되자, 아이에스디에스를 제기했다. 지난 5월에는 김아무개씨가 서울 중구의 땅과 3층짜리 상업용 건물이 재개발 대상 지구에 포함됐다며,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향후 토지 강제수용과 관련한 분쟁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진행 상황도 결과 내용도 깜깜


아이에스디에스 위협이 현실화했는데, 정부는 ‘밀실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론스타는 7년째 중재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그 내용을 우리 정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민변이 심리 참관을 신청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진 다야니 사건의 경우 중재판정문은 1년째 비공개 상태다. 정부는 “현재 영국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당사자 간에 비밀 유지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야니 쪽은 판정문 일부를 인용한 보도자료는 물론, 법률대리인이 영국 중재 전문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중재의향서가 접수되면, 그때부터 정부 누리집에 관련 정보를 곧바로 공개하고 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인 정석윤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아이에스디에스는 사법주권을 침해하고, 공공정책을 위축시킨다. 정부가 지면 막대한 세금을 지출하게 된다. 아이에스디에스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다는 실증적 증거도 없다”며 “투자자는 얻을 것만 있고, 정부는 잃을 것만 있는, 이 제도를 폐기하거나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nverstor State Dispute Settlement=ISDS, 아이에스디에스)란


외국인 투자자(기업, 개인)가 자신이 투자한 나라에서 간접수용, 공정·공평대우 위반 등 정부의 ‘부당한 조처’나 대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절차다.

투자한 나라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게 더 일반적이지만, 패소하거나 애초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선택한다.

한때 국내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라고 번역돼 일종의 재판이라는 오해가 생겼지만, 아이에스디에스는 공적 기구가 아닌 민간인에게 중재를 맡기는 일종의 사적 분쟁해결 절차다.


아이에스디에스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1962년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처음 제안했다.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설립됐고, 3천개가 넘는 투자협정(BIT)에 이 제도가 포함됐다. 현재 우리나라가 체결한 투자협정 88개와 자유무역협정(FTA) 15개 대부분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와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에서 아이에스디에스 진행 절차를 지원한다. 이 기관에서는 실무지원만 할 뿐, 실제 결정권을 가진 중재인은 분쟁 당사자들이 선정한다. 중재인 3명으로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데,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 양쪽이 각각 1명을 선정하고, 수석중재인은 양쪽이 합의해 선정한다. 합의되지 않으면 중재기관이 결정한다. 중재인은 교수,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 중에서 많이 뽑는다.


1987~2018년 발생한 942건의 아이에스디에스 사건에서 중재인은 537명이었다. 평판이 좋은 중재인에게는 사건이 몰린다. 가장 많은 사건을 맡았던 브리지 스턴 파리1대학 명예교수는 101건의 중재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론스타 사건에서 우리 정부가 선정한 중재인이기도 하다. 변호사의 경우 어떤 사건의 중재인으로 활동하면서, 다른 사건의 투자자나 국가를 법률대리할 수도 있다.


사건은 보통 2~3년 진행되는데, 중재인 비용으로만 평균 100만달러(약 11억7천만원) 정도 들어간다. 중재인 하루 수당은 3000달러(약 350만원, 8시간 기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규정). 이 비용은 두 당사자가 분담한다. 변호사 비용은 별도다. 1건당 평균 변호사 비용은 외국 투자자는 600만달러(약 70억원), 이를 방어하는 정부는 500만달러(약 59억원) 정도다.


중재판정은 3명의 다수결로 결정되며, 단심제다.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약 4% 정도만 인정됐다.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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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S 폐기를"...7년 전 민주당 지도부가 옳았다




ISDS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국, 나프타에서 ISDS 삭제
EU, "ISDS는 유럽법 위반" 판결
지속가능한 분쟁해결 방안 필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정부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없애거나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는 구조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주 기자


2012년 2월8일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 대표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모였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모든 야당 의원 50여명이 10개 항목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며,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공개하는 자리였는데, 이들의 요구사항 첫째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폐기였다.


당시 ‘과격한 주장’으로 몰렸던 (그래서 2012년 총선 패배의 원인이라고 민주당이 생각했던)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미국에 의해서.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고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의 관계에서는 이 제도를 없애버렸다. 멕시코와는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투자자의 ‘만능열쇠’로 불리는 공정·공평대우 위반을 이유로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제기할 수 없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논란이었던 간접수용 역시 투자분쟁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캐나다와 미국을 상대로 한 아이에스디에스 분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였다. 이제 이 제도를 폐기함으로써, 미국과 캐나다는 투자분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아이에스디에스 분쟁이 급증하면서, 정부는 부랴부랴 대통령훈령을 만들었다. 하지만 분쟁을 발생시키는 구조 자체를 고칠 생각은 못하고 있다.

아이에스디에스는 민간인이 중재하는 사적 분쟁해결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게 국제적 공감대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018년 유럽연합(EU) 역내국 간의 아이에스디에스를 유럽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결했고, 유럽연합 회원국은 올해 12월6일까지 역내국 간 투자협정(BIT)을 모두 종료하기로 했다.

유럽의회는 유럽집행위원회(EC)에 좀 더 민주적이고 투명한 투자분쟁해결 제도를 주문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국제투자조약은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를 포함한 근본적 개혁이 국제적인 추세다.


아이에스디에스 개혁 논의는 마침 유엔 산하 전문기관(UNCITRAL·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2년 전부터 논의해왔다. 우리 정부와 대법원은 지금까지 1억원에 가까운 출장비를 쓰면서 공무원과 판사를 회의 때마다 보내왔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스디에스가 없으면 큰일 날 것”이라는 미신도, “이 제도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국제기준”이라는 낡은 사고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려는 자가 누구인지, 이들은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아이에스디에스라는 이름은 ‘분쟁해결 절차’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분쟁해결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봐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한 국가는 의무만 지고 아무런 권리가 없다. 아이에스디에스는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만 따진다.


이런 일방적인 투자자 보호 정책이 문제다.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고 보호하더라도, 국내법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이제 투자조약에 투자자의 국내법 준수 의무를 명기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의 행위로 영향을 받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투자자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세계에서 투자분쟁을 가장 많이 제기하는 자는 미국 투자자다. 그다음이 네덜란드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를 현실화했고, 네덜란드는 2018년 투자조약 모범안을 만들면서 인권, 환경, 노동법과 같은 국내법과 국가 규제를 준수할 의무를 투자자에게 지웠다. 그리고 투자자가 인권 침해를 할 경우 국가는 적절한 조처를 취할 의무를 지도록 했다.


이것보다 더 개혁적인 방안을 우리 정부가 내놓아야 할 때다.

개혁방안의 지침은 외국인 투자자의 수익 보장이나 성장 위주의 경제담론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 지속가능 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돼야 한다.

투자가 한 나라의 사람이나 자원, 문화를 수탈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희섭(커먼즈재단 이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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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에 유리한 ISDS 뜯어고치자"...국제 논의 급물살



ISDS 개혁 논의

지난해만 71건, 누적은 942건
투자자 손 들어준 결과 더 많아
유엔, 각국에 개혁안 제출 요구

EU "상설 투자법원 만들어야"
미국·일본 "절차만 수정하자"
시민사회는 "전면 폐지해야"


세계 73개국의 300개 이상 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30일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보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에서 아이에스디에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시위하는 모습. 국제환경법센터(CIEL) 제공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아이에스디에스) 개혁’은 최근 몇년 사이에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외국인 투자자의 중재 신청이 해마다 수십건씩 쏟아지면서, 100여개 국가가 분쟁에 휘말린 상태다.

더구나 아이에스디에스의 ‘게임의 룰’이 국가에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위원회인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이달 말까지 60개 위원국 정부들에 개혁안을 내놓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중재인들, 투자자에 기울어져


아이에스디에스는 이미 1960년대부터 투자협정(BIT) 등에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뿐, 실제 1990년 이전까지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된 사건은 1건에 그쳤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련 해체 후 탄생한 신생국가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을 쏟으면서, 외국인 투자자와 다국적회사가 늘어나고, 분쟁 건수도 덩달아 증가했다. 특히 긴급 경제정책을 펼친 개도국을 중심으로 분쟁 건수가 급증하더니, 2011년부터는 해마다 50건을 웃돌고 있다.


지난 4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간한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2018년 발생한 아이에스디에스 사건은 71건이며, 누적 발생 건수(1987~2018년)는 942건에 이른다.

분쟁을 겪은 국가는 2018년 현재 117개나 된다. 아르헨티나(60건)가 가장 많이 제소당했고, 스페인(49건), 베네수엘라(47건), 체코(38건) 등이 뒤따른다.

이 보고서는 “투자자-국가 분쟁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쟁 결과는 국가와 투자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유리했을까.

현재 알려진 아이에스디에스 사건(942건) 가운데 602건이 종결됐는데, 35.7%는 국가에, 28.7%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졌다. 2.2%는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게 결정됐다.

합의된 사건은 22.8%이며, 나머지 10.6%는 중재신청을 취하했다.


수치상으로는 ‘국가 승소’(35.7%)가 ‘투자자 승소’(28.7%)를 앞지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의(22.8%)도 투자자의 손을 일부 들어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줬기에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재판정이 이처럼 투자자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이유는, 분쟁을 제기하는 투자자가 중재인을 선정하는 이 제도의 특징 때문이다.

중재판정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투자자와 국가 양쪽이 각각 선정한 2명, 양쪽의 합의로 선정한 1명 등 3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교수, 변호사 등 민간인 전문가들인데, 투자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는 평판이 생기면 중재인으로 다시 선정될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애초에 이 제도 자체가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로지 투자자만 분쟁을 제기할 수 있고, 투자자가 제기하면 국가는 피청구인으로 무조건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로서는 아무리 잘 해결돼봐야 ‘본전’이고 ,분쟁에서 지면 많게는 수조원의 돈을 투자자에게 물어줘야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지 않는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는 2017년부터 ‘실무작업반’을 구성해 아이에스디에스를 개혁하려는 국제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37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의 모든 위원국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의 개혁안을 오는 15일까지 사무국에 제출하도록 결의했다. 우리나라도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동안 작업반 회의를 통해 드러난 각국의 입장을 보면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유럽연합(EU)·캐나다·아프리카 국가들은 좀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쪽이다. 이들 국가는 상설기구를 설립하고 전업 법관을 임명해 중재를 맡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등의 국가는 현재 아이에스디에스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절차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자는 쪽이다.


가장 의견 충돌이 큰 주제는 상설 투자법원 도입이다.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혹은 투자협정을 맺는 두 나라가 함께 투자법원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는 독립적인 법관이 투자분쟁을 해결하면 공공정책이 기업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유럽연합,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아이에스디에스 신고식을 혹독히 치른 독일이 투자법원 도입에 적극적이다.


투자법원 도입에 가장 부정적인 쪽은 미국이다. 미국 산업계는 투자법원의 경우 결정권을 가진 법관 선임 권한을 각국 정부만 갖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 투자자는 전세계 국가를 상대로 가장 많은 아이에스디에스(174건)를 제기해왔다. 반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 투자자로부터 분쟁을 제기당한 것은 16건에 그치며, 이 중 한 건도 패소한 적이 없다. 미국으로서는 현재 제도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 국가들이 공감하는 개혁 주제도 있다.

△금융기관 등에서 변호사 비용 등을 지원받고 나중에 판정 결과로 얻은 수익을 나눠 갖는 ‘제3자 비용지원’을 제한하고 △중재인에 대한 윤리규정을 강화해 이해관계 상충 문제를 감독하고 △동일한 분쟁이 여러 협정을 통해 중복해 진행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데는 대부분 찬성한다. △법적 근거가 희박하거나 협정 조건을 준수하지 않은 투자자의 주장을 각하할 수 있게 하고 △분쟁을 제기한 투자자에 대해 국가의 반소를 허용하는 것도 또한 개혁 방안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각 개혁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출할 개혁안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이 침해되지 않도록 아이에스디에스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산업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며 시민사회 의견도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시민사회에서는 아이에스디에스에 대해 폐지 등 좀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공정책 권한을 확보하고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아예 없애거나,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는 구조적인 개혁안을 제안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 73개국의 300개 이상 시민단체가 연합해, 아이에스디에스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보내기도 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