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시장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오 시장은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편한 신체접촉이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을 떠나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오거돈 시장의 사퇴는 부산 정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선거 기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오 시장이 23일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건강 때문이라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을 만큼, 극소수의 사람 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시장의 성추행 사퇴를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오지만, 그가 과거에 보여줬던 모습과 사건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회식 사진을 통해 드러난 오거돈 시장의 성 인지 감수성
2018년 11월 오거돈 부산시장 트위터에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옵니다. 부산시 관계기관 회식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오 시장의 양 옆과 앞에는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직썰 정주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을 공유하면서 “시장이 직접 자리를 배치하지는 않았을 거다. 회식 자리에서 항상 옆자리에 젊은 여직원을 앉힌다는 사장님, 항상 젊은 여교사를 앉힌다는 교장 선생님, 항상 젊은 여군을 앉힌다는 장군님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며 “그들도 직접 옆자리 파트너를 간택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보스의 기분을 맞출 줄 아는 간신배 참모들이 하는 일이다. 보스는 익숙하게 세팅된 분위기에 모르는 척 허허 웃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대표는 “과잉충성, 가부장적 조직문화, 성적대상화. 그리고 못 이기는 척 그걸 묵인하고 즐기는 권력자. 본인들만 모르는 조직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진 한 장이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 회사 회식 사진에서 저런 풍경이 발견된다면 빨리 도망치세요. 곧 망하거나 이미 망한 곳입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당시 정 대표와 부산에서 활동하는 소셜미디어 ‘부산공감’을 통해 이 사건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오 시장은 논란이 불거지자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성폭력 상담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입장문에서 2018년 회식 사진을 예로 들며 “낮은 성 인지 감수성과 이를 성찰하지 않는 태도는 언제든 성폭력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잉충성, 가부장적 조직 문화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
<오거돈 성추행 사건 피해자 입장문〉
저는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여는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입니다.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평범’, ‘보통’이라는 말의 가치를 이제야 느낍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경위를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달 초 오거돈 전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업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오늘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문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습니다.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저는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이를 우려해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자회견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작스레 이뤄졌습니다. 두 번 다시 이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범죄 예방과 2차 피해 방지에 대한 부산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사건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서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벌써 진행 중인 제 신상털이와 어처구니없는 가십성 보도를 예상치 못했던 바 아닙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부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건은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입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제 신상을 특정한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 일체를 멈춰주시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특히 부산일보와 한겨레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향후 제 개인 정보를 적시한 언론 보도가 있을 시 해당 언론사에 강력 법적 조치할 것입니다.
모든 일이 부디 상식적으로 진행되기만을 바랍니다.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피해자를 오 시장 집무실로 호출한 사람은 수행비서였습니다. 만약 수행 비서가 이미 지난해 제기됐던 오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인지했음에도 피해자를 집무실로 불렀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직썰 정주식 대표가 지적했던 ‘과잉충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를 공식적인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을 보면 과거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시장은 피해자가 요구했던 입장문 사전 확인 절차를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유가 부산 지역 모 언론이 이미 취재를 끝내고 보도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24일 오거돈 부산시장에 대한 제명 여부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오 시장의 제명 여부와 상관 없이 권력형 성범죄는 철저하게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