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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부추긴 전세대출, 4년새 3배 급증해 114조

道雨 2020. 11. 2. 11:52

갭투자 부추긴 전세대출, 4년새 3배 급증해 114조

2016년 36조서 크게 늘어
정부가 대출기준 완화해와
신용대출 대신 투기에 활용

금리 상승전환땐 부실 우려
보증 선 금융 공기업도 위험
“고가 전셋집 대출 제한해야”

 

전세 공급 부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전세수급지수가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다. 지난달 31일 케이비(KB) 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로 2001년 8월 193.7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다. 전세수급지수는 1∼200 사이 숫자로 표현되며,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공급 부족을 의미한다. 연합뉴스

 

전세보증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는 전세자금대출이 최근 4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빚 내기 쉬웠던 전세자금대출 급증이 갭투자 등을 부추겨 부동산 시장 불안정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금리가 상승할 경우 가계부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1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 하반기 36조200억원이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올해 상반기 114조5600억원으로 3.2배 증가했다. 같은 시기 주택담보대출이 441조8400억원에서 552조800억원으로, 신용대출은 108조6700원에서 159조7300억원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가파른 증가세다. 이 수치는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에스씨(SC)제일은행·씨티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 등의 대출 잔액을 합산한 것이다.

 

전세자금대출 가운데서도 특히 2억원 이상 대출이 더 크게 증가했다. 2016년 하반기 17.5%(6조3200억원 규모)였던 2억원 이상 대출 비중은 2017년 하반기 23.3%(11조3300억원), 2018년 하반기 28.05%(20조1200억원), 2019년 하반기 29.97%(29조5900억원), 올해 상반기 32.57%(37조2400억원)로 계속 늘어났다.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위해선, 세입자가 주택금융공사나 에스지아이(SGI)서울보증보험 등에서 보증을 받아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주택금융공사 보증을 받을 경우 임대차계약서상 보증금의 약 80% 범위에서 최대 2억2200만원까지, 서울보증보험 보증을 받을 경우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전세자금대출이 증가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정부의 대출 기준 완화 정책이다. 애초 전세자금대출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안정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전세가격이 크게 상승하자 전세자금대출 조건과 한도 등을 완화했다. 2009년 8·23대책에선 전세자금 대출 보증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올렸고, 2010년 8·29대책에선 전세대출 상환능력을 연소득 1~2.5배에서 1.5~3배로 확대했다. 은행도 서울보증보험 보증이 있으면 상한선인 5억원까지 대출해줬다. 이에 따라 전세자금대출 계좌수도 2016년 45만건에서 2020년 상반기 104만건으로 증가하는 등, 빚을 얻어 전세보증금을 내는 것이 보편화됐다.전세자금대출은 중산층·서민들이 주택을 사기 전까지 보다 좋은 조건의 집을 전세로 구할 수 있게 돕고, 임차보증금이 부족해 월세를 내느라 은행 이자보다 더 많은 비용을 쓰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에 활용되면서 부동산 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보증금 외의 용도로 전용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갭투자는 자신이 살 집의 전세보증금은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하고, 다른 집을 전세를 끼고 구입하는 것이다. 갭투자 증가는 아파트 투자를 쉽게 만들어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을 높이는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갭투자가 크게 늘자, 정부는 지난 6·17부동산대책을 통해 전세대출을 받은 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매하면 전세대출을 회수하도록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등으로는 빌릴 수 없는 큰 돈을 전세대출은 저리로 빌려주다보니, 실제로는 전세보증금을 자기 돈으로 낼 수 있는 이들도 전세대출을 받아 갭투자나 주식투자 등을 하는 경우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점점 확대된 전세자금 대출 지원 정책이, 전세가격 안정 등 서민 주거안정보다, 사실상 주택시장 부양의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에 끼치는 영향 외에도, 전세자금대출이 계속 급증하면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규모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주거안정이라는 이유로 더 확대될 여지가 있다. 최근 전세난이 커지자, 여당내에선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더 키우자는 주장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유동수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주거비 절감을 위해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보증 한도를 3억원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원리금상환 방식이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이자만 내는 단기대출방식이어서 대출자로 하여금 상환능력 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게 유인하는 효과도 있다.

현재는 금리가 아주 낮은 상황이어서 전세자금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에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우선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 가계는 소비를 줄여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

집값이 급격하게 하락할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집값이 내려 전셋값과 비슷하거나 더 낮아지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되면,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부족하게 되고, 대출 연체로 이어져 은행의 건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은 정부 보증이 들어가는 까닭에 금융공기업의 부실 위험도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세대출 보증을 서는 주택금융공사·서울보증보험·도시주택보증 등 금융공기업의 보증잔액은 자기자본에 견줘 60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은행 평균은 12.8배 정도다. 서 연구원은 “전세자금대출 증가가 정부 부채의 부실 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규제 이후 전세대출이 증가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 전세대출 등 가계부채가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어서 대출규제를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당장 전세대출을 조이는 것은 서민과 중산층 등 실수요층의 전세 접근성을 떨어뜨려 어렵다”며 “만약 전세대출 증가가 거시 경제 흐름에 악영향을 준다면, 9억원이 넘는 고가 전세에 대해 대출 제한을 하는 것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연립·다세대 전셋값 상승은…2016년 ‘버팀목대출’ 확대 영향

 

정부가 정책금융으로 지원하는 전세대출인 ‘버팀목대출’이 확대된 2016년 4·28 대책을 기점으로,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세 거래가 늘고 월세 거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 이면에, 전세대출 확대가 저가 전세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한국도시연구소 실거래 자료를 보면,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의 전세 계약건수는 2011년 10만7251건에서 2016년 9만5133건으로 해마다 감소했으나, 2017년 9만8477건으로 반등한 뒤, 2019년 12만1732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는 6만7393건으로,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 한해 전세계약 건수는 13만 건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월세 계약건수는 2011년(4만8749건)부터 계속 늘다, 2015년(7만1431건) 정점을 찍고, 2019년(6만465건)까지 떨어졌다. 서울도 전국과 추세가 같다.

 

2016년 4·28 대책은 서민 전세대출인 버팀목대출의 금리를 1%대로 인하하고, 대출한도도 2천만원 늘려 신혼부부의 경우 1억4천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게 했다. 신혼부부는 2018년 1월(1억7천만원)과 9월(2억원) 두 차례에 걸쳐 대출 한도가 2억원까지 늘어났다.

버팀목대출은 전세보증금 3억원 이하 주택에 한해 신청이 가능한데, 현장에서는 버팀목대출이 3억원 이하 비아파트 전세가격을 끌어올렸다고 본다. 윤성노 전국세입자협회 사무국장은 “신혼부부 전세대출 한도 2억원에 맞춰, 연립·다세대와 같은 비아파트 전세가격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011년 이후 전세가격 추이를 보면, 초반 5년(2011~2015년)에는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43.8%)이 연립·다세대(36.7%)보다 높았으나, 후반 5년(2016~2020년 상반기)은 연립·다세대(28.9%)가 아파트(7.9%)보다 크게 높았다.

비아파트 매물이 많은 부동산매물플랫폼 ‘다방’은 아예 전세대출 가능이라는 검색조건을 제공한다. 전세대출이 수요자들에게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다방 자료(10월19일 기준)를 보면, ‘전세대출 가능’으로 올라와 있는 매물 비중이 70%를 넘는 곳이 서울 25개 구 중 19개 구였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968120.html?_fr=mt2#csidxf5ba9d62c7931b9a327d842f4e697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