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무죄, 50억 클럽은 견고했다
국민의 법 감정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전 의원인 곽상도씨의 50억원 알선수재 및 뇌물 사건의 1심 무죄재판에서다.
형사재판의 증거가 어렵다지만, 평범한 시민도 옳고 그름을 분별할 능력은 갖추고 있다.
재판의 핵심은 곽씨의 아들 병채씨가 받은 돈의 대가성 여부다. 곽씨는 하나은행이 화천대유와 컨소시엄을 유지토록 알선하고, 직무와 관련해 대장동 사업 편의를 봐준 대가로, 병채씨를 통해 50억원을 받은 의혹을 받는다.
병채씨가 받은 성과급이 대리 직급, 담당 업무에 견줘 사회 통념상 과다함을 법원 스스로 수차례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하나금융지주 임직원 직무 사항을 알선한 대가로 지급한 의심이 든다고 한다.
“컨소시엄이 깨질 뻔했는데, 곽씨가 하나은행 회장에게 전화해서 막아줬다”.
김만배씨가 남욱씨에게 한 진술 취지다.
공판정에서 김씨는 진술을 인정하면서도 “별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떠올라서”, “농담조로 말한 것”이라며 너무 쉽게 뒤집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법원이 어떤 증거를 택해 재판했냐다.
알선 대가성을 추측게 하는 김씨 진술이 몇 차례 나타난다. 그런데도 법원은 ‘별생각 없이’, ‘농담조로’ 했다는 공판정 진술을 신뢰한 듯하다. 법관 앞에서 한 진술이라는 이유에서라면, 증거가치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다.
경험법칙에 따르면, 사건 초기 진술일수록 신선하며 신빙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무죄를 향한 자료들이 너더분하다. 무려 207쪽에 달하는 판결문의 많은 부분을 무죄 이유에 할애하고 있다.
유죄판결과 달리, 무죄는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재판이므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재판의 백미는 병채씨의 지위가 무엇인가다. 이로써 무죄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곽씨에 대해 2021년 소속 당 부동산투기조사특위 위원으로서의 직무 관련을 인정한다.
또한 병채씨가 받은 돈을 곽씨가 직접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 놓고 눈을 돌렸다.
병채씨가 입사 당시 성인이었으며, 혼인해 부친과 독립생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이유다. 이른바 경제적 공동체론이다. 범죄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며 실체진실을 추구하는 형사재판에서 포괄적인 공동체 개념의 획일적 사용은 부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는 점이다. 전통적 부양윤리와 당시 상황을 보면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곽씨가 병채씨에 대한 법률상 부양의무가 없다는 형식적 판단은 현실과 멀어 보인다.
법관의 양심과 달리 일반 시민의 양심은, 곽씨가 사회초년생인 병채씨를 내세워 50억원을 받은 것으로 본다.
검찰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곽씨 구속, 15년 구형 때만 해도 혹했으나 결과는 역시다.
깨질 뻔한 컨소시엄을 곽씨가 막았다는 김씨 진술과 인과관계가 있는 중요한 진술이 등장한다.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천만원’,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는, 김씨가 병채씨와의 대화를 정영학씨에게 한 진술이 그것이다.
누가 봐도 곽씨의 역할을 보고 병채씨에게 준 돈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검찰이 제출한 이 증거는 법원의 증거채택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채택된 다른 증거도 증거조사 과정에서 유죄인정에 기여하지 못했음은 마찬가지다. 증거재판주의에서 검사가 엄격한 증거 법리를 모를 리 없음에도 너무 쉽게 무너졌다.
재판 도중 제3자 뇌물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원은 경제적 독립을 이유로 병채씨가 받은 돈이 곽씨가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그렇다면 검찰은 처음부터 이를 예상해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거나, 두 사람을 뇌물죄의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이 옳았다.
정말로 공소 수행에 자신 없으면, 실체와는 비켜 가지만 제3자 뇌물죄를 추가하는 노력이라도 해 봤어야 했다.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려 했거나, 아니면 무성의하게 공소를 수행했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경우든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함은 같다.
시민은 허탈하다. 한껏 의혹만 비쳐놓고, 50억원 클럽으로 가는 길을 차단당한 느낌을 받는다.
법이 권력자, 가진 자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더 이상 사법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시민이 나서서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거대한 부조리를 단죄하고, 역사의 진전을 이룸과 동시에 시민 사법을 기약할 수 있다.
최영승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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