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심위원장, 출구전략을 모색하시라
* 지난 9월26일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센터 이름은 이후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로 바뀌었다. 방심위 제공
축구 경기를 할 때 욕심이 과하면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헛발질을 하기 십상이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심의가 딱 그 짝이다. ‘태산명동서일필’이 따로 없다. 되지도 않을 일은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아야 했다.
헛발질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이 위원장은 9월 초 국회에 출석해 뉴스타파 보도를 “중대 범죄,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다. “방심위 등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심의 권력을 동원해 뉴스타파를 손보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방심위는 ‘가짜뉴스’라는 풍차를 향해 돌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이미 정연주 위원장 등 전 정부에서 임명된 방심위원들을 솎아낸 터였다.
문제는 방심위가 방송사도 아닌 뉴스타파의 보도를 심의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애꿎은 방송사들이 먼저 철퇴를 맞았다. 죄목은 ‘날조 인터뷰 인용 보도죄’였다. 최고 수위의 제재인 ‘과징금 부과’가 잇따라 의결됐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국기문란 보도의 ‘원흉’인 뉴스타파를 그냥 놔둘 리 만무했다. 방심위는 통신심의 카드를 빼 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과 영상 등 인터넷 게시물에만 적용되던 통신심의 대상을 인터넷 언론의 보도물로까지 확대하는 잔꾀를 낸 것이다.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를 훼손하려 한다는 비판이 빗발쳤지만, 방심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심위는 지난달 11일 사상 유례가 없는 인터넷 기사 통신심의를 벌여 의견진술을 듣기로 결정했다. 제재를 결정하기에 앞서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다.
뉴스타파는 “권력의 불법적인 언론 검열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며, 의견진술을 거부했다.
한달 가까이 뜸을 들이더니, 방심위는 결국 지난 8일 시정 요구(기사 삭제, 접속 차단)는 하지 않고, 서울시에 신문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는 것으로 심의를 종결했다.
호언했던 ‘엄중 조치’는 없던 일이 됐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덜컥 내질렀으니 ‘예고된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방심위의 뉴스타파 심의는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신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부터가 그렇다. 통신심의의 근거 법률인 정보통신망법은 음란물과 같은 온라인상의 불법·유해 정보를 규율하는 법이다. 인터넷 매체는 신문사와 마찬가지로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의 적용을 받는다. 방심위가 그동안 언론 보도는 통신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민원인들에게 안내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심위 법무팀도 뉴스타파 통신심의에 대한 법률 검토 의뢰에, 처음엔 ‘통신심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의견서가 나온 지 이틀 만에 법무팀장을 포함한 주요 간부들의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고, 인사 닷새 뒤 법무팀은 ‘심의가 가능하다’는 2차 의견서를 내놨다.
법적 논란에 대한 비판에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적극 행정’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방심위 내부 규칙인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은 ‘최소 규제’를 심의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헌법 정신에 비춰 보면 당연한 일이다. 행정기관에 의한 심의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심의를 강행하다 보니 스텝이 꼬이는 일도 벌어졌다.
류 위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조선일보 등 신문사의 인터넷 기사도 뉴스타파처럼 심의할 거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과도한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메이저 언론사’는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그는 며칠 뒤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한 간담회에선 “협회 등에 소속된 제도권 언론은 자율규제가 원칙”이라며 다시 한발 물러섰다.
그러더니 며칠 뒤 국회에 출석해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심각한 허위 보도를 한다면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방심위가 얼마나 준비 없이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짜뉴스 심의의 부당성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이들은 방심위 구성원들이다.
방심위 팀장 11명은 지난달 초, 인터넷 언론 심의 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냈다. 며칠 뒤 탁동삼 팀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해 류 위원장 면전에서 “위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심의 기준과 원칙들이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갈했다.
이달 초에는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에 파견 근무 중인 직원들이 “월권적 업무”라며 원부서 복귀를 요청했고, 14일에는 방심위 전체 평직원의 4분의 3가량인 150명이 심의센터 동료들의 고충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서명부를 제출했다.
이쯤 되면 류 위원장이 정권의 의중을 좇아 밀어붙인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조직 내부에서 탄핵을 당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류 위원장이라면 ‘출구전략’을 모색하겠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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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검열해서 ‘가짜’ 딱지 붙이라니… 들고 일어난 방심위 직원들
“불법적 업무 행태… 직원들이 책임 뒤집어쓸 것”
직원 150명 연대 서명부 제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심의센터)가 내부 직원들의 반발로, 지난 9월26일 출범 이후 49일 만에 멈춰 설 지경에 처했다.
센터 소속 직원들의 파행적 운영 실태 고발에 이어, 방심위 직원들까지 연서명을 통해 조직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14일 “방심위 평직원 150명은 심의센터 직원들의 고충에 공감하고, 센터 역할이 합의될 때까지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검토를 요구하며, 연대 서명부를 작성해 사측에 전달했다”라고 알렸다.
노조 측은 “보직자를 제외한 방심위 평직원은 200명 수준으로, 방심위 출범(2008년) 이후 직원들이 의견을 모아 서명부를 작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서명은 앞서 심의센터 직원 4명이 “센터 출범 한 달이 넘도록 불법적 업무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노조 고충처리위원회에 파견 발령 취소 및 원소속 부서로 복귀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센터의 언론보도 심의가 명확한 원칙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직원들이 법적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신고서를 지난 2일 노조에 제출했다.
방심위 노조는 이날 노사 각 3명으로 이루어진 고충처리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 센터 직원들의 원대 복귀 △방심위 다른 직원들의 센터 발령 금지 △류희림 위원장의 사과 등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다.
아울러 “가짜뉴스 업무조정은 한 달 반째 방치 상태이고, 부서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동료가 겪는 부당함을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연대서명부도 함께 제출됐다.
고충처리위원회 회의에 참여한 한 노조 추천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방심위 직원 대다수가 동참해 150명이 직접 이름을 적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심의센터 직원들의 고충 보도가 나온 뒤 방심위에서 배포한 설명자료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방심위는 지난 10일 고충처리 신고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센터는 정상적으로 업무 중이라는 해명자료를 낸 바 있다.
류희림 위원장 부임 이후 방심위가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가짜뉴스 심의센터는 출범 두 달이 되지 않아 내부 반발로 파행을 맞게 됐다.
앞서 지난달 6일에는 방심위 내 중간관리자급인 팀장 11명이 방심위의 ‘가짜뉴스 근절 대책’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 언론 탄압 및 검열 논란 등 비판의 대상이 됐다”며,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한편, 이날 방심위는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협력해 가짜뉴스(허위조작 콘텐츠)에 신속 대응하기 위한 ‘자율규제 실무협의체’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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