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술자들이 꾸민 ‘대장동 악당 만들기’ 서사
[대장동 잔혹극의 전말] ⑧스토리텔링의 법칙
‘팩트 취재보다 이야기 만들기’ 능한 조선일보
대중 귀에 박히도록 ‘토건 빌런 이재명’ 창조
이어지는 검찰 수사로 ‘대장동 비극’ 2막 지속
대장동 때문에 정치인들 창의적 행정 겁먹어
대장동의 끝은 어디일까?
20대 대선 기간 중 제기된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의 낙선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토건 비리와 싸웠던 이재명은 거꾸로 토건 비리의 원흉으로 몰렸다.
대선이 끝났지만 대장동의 잔혹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명에게 대장동은 시지프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의 바위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 잔혹극이 어떻게 만들어져 전개됐는지 밝히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도 이야기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다. 이런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는 기자는 데스크에게 혼이 난다.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구축한 기사는 독자를 기자의 주장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어느 나라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2018년 9월 7일 조선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1972년 ‘워터게이트’를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한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을 비교했다.
번스타인은 시야가 넓고 글을 잘 써 주로 기사 집필을 담당했다. 반면 우직한 성격의 우드워드는 팩트 전달에 신중하고 글이 무미건조했지만 취재력이 탁월했다.
우드워드가 취재를 해오면 번스타인은 논평을 했다. 시쳇말로 ‘찍새와 딱새’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기사의 내용처럼 국내 언론사도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가공을 잘하는 딱새형 언론사로 분류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스토리텔링에 능하다고 기자들끼리 평가한다.
이재명이 악당으로 등장하는 대장동 스토리텔링도 다르지 않다. 대중의 심리를 잘 알고, 뉴스를 본인들 관점대로 가공하는 능력이 뛰어난 ‘기술자’들에 의해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소설의 구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가 이재명의 대장동에 담겨있다.
발단은 경기경제신문의 보도였다. 제보자들은 작은 매체를 골라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식으로 뉴스 자료를 전달했을 것이다. 작은 매체의 보도는 큰 매체들이 보도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경기 지역을 잘 아는 지역 매체가 이재명의 대장동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면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개는 조선일보의 대대적인 보도다.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1면에 대장동 기사를 실으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확실한 근거가 있거나, 사안이 중대해야 1면에 기사가 실린다. 당시 대장동 의혹의 근거가 그렇게 확실했는가? 대장동 관련 자료의 출처는 조선일보가 기사에 밝혔듯이 ‘정치권’이라고 애매하게 표현돼 있다. 제보자가 정치권 인사란 말인가?
위기는 이재명의 해명과 저항이다. 이재명은 억울했다. 대장동 사업만큼 토지개발 사업에 지방정부의 공익환수가 이뤄진 사례가 있는가? 이재명은 “조선일보는 대선에서 손을 떼라”고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거대한 스토리텔링의 굴레에서 이재명은 악당 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겨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친 변방 장수였고, 기득권에 저항해 온 눈엣가시였다.
절정은 조선일보의 첫 보도 뒤 1만 4391건에 이르는 기사를 통한 이재명 조리돌림 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와 맞먹는 화력으로 미디어는 이재명을 폭격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한편이 돼 대장동 뉴스거리를 확대 재생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세력들도 대장동 이슈를 통해 이재명을 쓰러뜨리려 했다. 부패한 토건 세력에 맞서 싸운 인권 변호사 출신 이재명은 순식간에 토건 세력의 배를 불린 빌런이 됐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결말은 이재명의 대선 패배다. 기득권 세력의 도구인 미디어가 무차별 화력을 퍼부은 탓에, 이재명은 0.73%의 고개를 넘지 못했다. 백낙청 교수는 지난해 오마이TV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면 레거시 미디어(신문과 방송 등 전통 언론)가 이를 비판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당선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레거시 미디어가 미국보다 엘리트 카르텔에 깊이 연루된 반면 국민은 살아있다. 미국처럼 뉴욕타임스가 보도해도 영향을 못 미치는 사회와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백 교수의 말처럼 극악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이재명은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대장동 잔혹극의 1막은 이재명의 대선 패배로 막을 내렸다. 2막은 이재명에게 조여 오는 검찰 수사이며 현재진행형이다.
대장동 의혹 제기는 이재명에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폐해를 가져왔다. 대장동 잔혹극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위축시켰다. 주류 질서의 파괴를 위해서는 서민을 위한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 대장동의 공공이익 환수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용기 있고 창의적인 행정 사례이다. 개발 이익을 토건 세력이 독점하려하자 민관 합동 개발의 형식을 도입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은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세팅된 기존 구조와 제도를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서민들은 질서를 파괴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대장동 잔혹극을 통한 사법적, 정치적 억압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선출된 정무직 공무원들조차 탈나지 않고 생색낼 일만 찾을 것이다. 대장동 사태를 보며 “모나면 정 맞는다”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장동 잔혹극의 부정적 학습 효과이다.
앞으로 시장, 군수, 도지사들은 토지개발 이익을 창출하는 개발 사업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권력에 통제 받지 않는 토건 세력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수월해진다.
아직 희망은 있다. 대장동 잔혹극의 3막은 비극이 아니라 해피엔딩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대장동 사태로 법조 세력과의 결탁, 정치권의 개입 등 토건 비리의 몸통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고 관련자들이 처벌 받는 결말이다. 기득권 세력이 이재명을 죽이기 위해 연 대장동 판도라의 상자가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날아가는….
* 지난 대선 기간 중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의 조폭 자금 수수설을 제기했다. 이재명에게 현금 수십 억 원을 전달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폭 박철민 씨가 최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박철민 씨 페이스북 갈무리.
이재명 악마화에 작용하는 기제
이재명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미워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인상 비평을 하거나 잘못된 자료에 근거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대선 기간 이재명을 향한 가짜 뉴스 공격이 수없이 이뤄졌다. 이는 대부분 이재명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다.
부인 김혜경 여사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자, 이재명이 폭행했다는 주장이 흘러나왔다.
조폭 자금 수수, 아들의 화천대유(대장동 사업의 자산관리회사) 취직설 등이 이재명을 흠집냈다.
이재명이 여당의 대선 후보였는데도 이 정도였다. 대선에서 패하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이재명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가혹해졌다. 이재명은 이제 대권 후보도 아니고 자연인이었다. 사자가 쓰러지면 하이에나들이 달려든다.
‘이재명이 공원 벤치에 신발을 신고 연설했다’ ‘식당에서 즉석 연설을 하기 위해 아이를 밀쳤다’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2022년 5월 25일 포털 다음의 메인 뉴스 화면에는 ‘이재명 42.5% vs 윤형선 42.7% 초접전’이라는 각기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이 교대로 몇 시간 동안 걸렸다.
하지만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자, 이런 말초적인 기사들은 크게 줄었다.
권력을 가졌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미디어가 어떻게 이재명을 대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주간지 시사인은 대선이 한창이던 2021년 말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이재명의 말 분석하니 거래의 리더십 보인다’였다. (윤석열 편의 제목은 ‘윤석열의 말 분석하니 응징의 리더십 보인다’이다)
이 기사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재명의 말들은 이익과 성과가 자신에게 표를 줄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이다. 이를 거래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여기에 첨언하자면, 이재명은 다수(절대 다수의 서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정치라고 본다. 이는 이전의 이념을 강조한 86세대 정치인과 다른 점이다.
20대 유권자들을 만나보면 나에게 뭔가 이익을 줄 정치인을 원하다고 했는데, 이를 충족할 정치인이 이재명인 셈이다.
정치인은 도구일 뿐이다.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주권자의 이익을 실현할 도구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정치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렇치 않은 면이 있다. 나와 다른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찾는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서민 이미지를 가진 이재명의 이미지를 더 훼손하려 한다.
이재명의 대선 패배로 비극의 드라마는 끝이 났어야 했다. 기득권 세력은 그들에 도전하는 이재명이 대통령에 오르는 이야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목적을 이뤘다. 하지만 이재명을 향한 잔혹극을 끝낼 생각이 없다. 대선에서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은 그를 재기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19일 검찰은 김용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 공사 본부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며 구속 기소했다. 그해 12월 8일에는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됐다. 올해 1월 28일에는 검찰이 원하던 그림을 만들었다.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를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세웠다.
다음은 이재명이 이날 검찰에 출석해 제출한 대장동 의혹 관련 33쪽 분량의 진술서 중 일부다.
검찰은 제가 투기 세력과 결탁하거나 그들로부터 재산상 이익을 받기로 약속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유일한 근거는 대장동 관련 부패범죄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관련자들의 번복된 진술입니다.
그러나 저는 투기 세력으로부터 시민의 정당한 이익을 지켜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뿐, 부패행위에 관여한 사실이 없습니다. 최근 정영학 녹취록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이제 국민들은 정영학의 녹취록에 근거하여 검찰의 공소사실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에 근거하여 수사 결론을 도출했었는데, 이제 와서 검찰의 올가미에 걸린 관련자들의 번복된 진술에 의존하여, 정영학 녹취록에도 없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허위사실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혐의의 세부 내용은 알기 어려우나,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제가 비밀정보를 대장동 일당에게 제공하거나, 유동규가 제공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동규가 그들과 결탁하여 비밀정보를 제공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유동규가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범죄사실을 시장인 제게 알릴 이유도 없고 제게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이나 정영학 녹취록을 보아도, 저는 이들의 부정비리와 관련이 없습니다. 정영학 녹취록과 이들의 법정 증언 등에 따르면, 이들은 ‘이재명이 우리 사업권을 빼앗아 호반건설에 주려 했지만, 우리가 도로 빼앗아 왔다’거나, 이재명 모르게 특정금전신탁 뒤에 잘 숨어 있었다며 자부하거나, ‘이재명이 너네 졸라 싫어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대장동 일당이 사업자공모에서 하나은행 컨소시엄의 특정금전신탁에 숨어 있었던 사실은, 이 사건이 문제되고 나서야 알았으니, 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형사처벌을 무릅쓴 채 그들을 위해 비밀을 유출하거나, 유동규로부터 범죄행위인 비밀 유출을 보고받고 승인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합니다.
검찰은 2023년 2월 16일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월 17일 대통령 앞으로 체포동의요구를 발송했고, 2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결재했다. 체포동의요청서는 2월 21일 국회에 접수돼 표결에 들어갔지만, 부결됐다.
결국 검찰은 백현동 개발 비리 혐의로 두 번째 구속영장을 쳤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지만, 법원에 의해 구속이 불발됐다.
또 다른 구속영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잔혹극은 이재명이 상징하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없어져야 막을 내릴 것이다.
민병선 20대 대선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minsandong@gmail.com
-9편 ‘토건 비리와 싸워 온 이재명’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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