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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 먼저 숙였다? 중앙일보의 교활한 사진조작

道雨 2023. 11. 3. 11:05

윤이 먼저 숙였다? 중앙일보의 교활한 사진조작

 

 

 

이재명 아닌 의원석 향해 인사한 장면을 조작

'겸손해진 윤 vs 뻣뻣한 이' 이미지 만들기 노려

'치어리더' 언론들 '우리 윤이 달라졌어요' 홍보

사진 조작으로 여론호도…퇴출해야할 가짜뉴스

 

* 중앙일보 2023년 11월1일자 1면 갈무리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의 여론 왜곡·조작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잘못된 팩트로 쓰여진 허위뉴스(misinformation)는 기본이고, 팩트는 맞지만 이를 교묘하게 짜맞춰 진실을 호도하는 일도 많다. 작은 이슈 침소봉대, 반대로 중요한 이슈는 축소은폐, 엉뚱한 측면을 강조해 본질 흐리기 등 왜곡·조작보도 수법은 워낙 여러 가지라 시민들이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눈과 귀를 흐리기 쉽다. 

 

보통 우리가 읽는 텍스트(문자) 기사에서 왜곡·조작이 많이 일어나지만, 교묘한 사진 조작으로도 가짜뉴스가 만들어진다. 사진이나 영상의 효과는 직접적이면서 감성적이어서 텍스트보다 국민들을 더 쉽게 속일 수 있다.

 

지난 1일자 중앙일보 1면 톱 사진 “여의도 간 대통령, 먼저 숙였다” 제목에 붙은 사진이 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전날 오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던 윤석열 대통령이 앞에 서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는 장면의 사진이다.

제목과 사진을 함께 보면 마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허리까지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자 이 대표가 선 채로 다소 뻣뻣하게 인사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은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임병도 기자에 따르면, 이 장면은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빠져나오면서 ‘의원석의 불특정 다수 의원들을 향해’ 인사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 오마이뉴스 11월2일 관련 기사 갈무리

 

 

 

 

국회방송이 생중계한 영상을 보면,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을 나가면서 박병석 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과 악수하고 문 앞에 서있던 이재명 대표와도 짧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손짓을 하자, 회의장 의원석의 ‘불특정 다수 의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반쯤 숙여 인사를 한 뒤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윤 대통령이 의원석 불특정 다수 의원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순간 이재명 대표가 그의 우측 앞에 서있었는데, 카메라의 각도로 인해 ‘공교롭게’ 마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찍힌 것이다.

 

중앙일보 1면 톱의 이 사진은 ‘국회사진기자단’이 제공한 것으로 되어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소속 사진기자는 여러 순간의 장면을 잡아 찍었을 것이고, 중앙일보는 이 가운데 이렇게 ‘공교로운’ 사진을 골라 1면에 올린 뒤 “여의도 간 대통령, 먼저 숙였다”는 제목을 붙였다.

 

다른 주요 일간신문은 대통령실 제공 또는 연합뉴스 제공 사진을 1면에 게재했는데, 이 사진에서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도발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윤 대통령과 눈가에 주름을 지으며 웃고 있는 이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중앙일보가 이런 사진과 이런 제목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예전과는 달리 야당에게 몸을 낮춘 모습’이다. 관련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체류 풍경은 지난 두 차례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재명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본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그와 악수하고, 나가면서 또 악수를 했다”고 썼다. “평소의 윤석열 스타일과는 대비됐다” “이 대표와 악수하고 경청하려는 태도는 엄청난 변화 신호다, 지난 정부 언급은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고 직접 내용도 고쳤다”라면서 ‘달라진 윤석열’을 지면이 모자랄 만큼 강조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야당을 만나지 않아 ‘불통’ ‘독단’ ‘오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윤 대통령이, 야당에 고개 숙이고 소통하려는 대통령으로 변했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처럼.

 

윤 대통령은 최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하고 난 뒤 ‘변화’ 의지를 대통령실을 통해 밝혔다. ‘대통령과 검찰은 항상 옳다’는 식의 지독한 독단과 경제ㆍ민생에 무능을 보여왔던 윤 대통령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국민은 항상 옳다’ ‘민생을 챙겨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런 변화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아무런 말도, 정책도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친윤 ‘치어리더’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이미지 변화’를 어떻게든 독자에게 전달하고 여론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 조선일보 2023년 11월1일자 1면 갈무리

 

 

 

중앙일보 사진 조작을 처음 제기한 오마이뉴스 임병도 기자는 기사에서 "혹시 해당 언론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고 의혹을 던졌다.

 

극우·친윤 ‘치어리더’ 언론으로 중앙일보보다 한 발 앞선 조선일보도 같은 날 1면 톱 기사의 제목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손 내민 윤”으로 뽑았다. 조선일보는 “지출 23조 구조조정...약자복지에 쓰겠다” “관례 깨고 야 대표 먼저 호명...연설문선 ‘문 정부 비판’ 모두 뺐다” 등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프레임의 기사를 여러 개 보도했지만, 아쉽게도 중앙일보의 사진 조작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조선일보의 사진조작은 과거 독보적이었다. 숱한 오보·조작된 텍스트 기사와 함께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사진 조작으로 언론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매체가 조선일보였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온 나라가 전쟁의 공포에 빠져있을 때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 제목의 1면 톱사진(11월24일자)을 조작해 언론계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2012년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사진도 3년전 사진을 가져다 조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 조선일보 2010년 11월24일자 1면 갈무리. 이 사진은 실제 검은색(회색) 연기를 붉은색으로 조작해 연평도가 화염에 휩싸인 것 처럼 조작한 것으로 언론계의 지탄을 받았다. 

 

 

 

친윤 언론 ‘치어리더’ 기자(‘기레기’란 표현은 삼가는 걸로 하자)의 노력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 ‘우리 애가 변했어요’ 프레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2일에도 윤 대통령이 참석한 ‘서민 참여 민생회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민생 챙기기’로 변모한 윤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다른 매체에서도 “대통령은 숙였는데 야는 뻣뻣했다”는 칼럼(디지털타임스)이 나오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댓글과 SNS에서 ‘겸손한 대통령’이란 글을 올리고 있는 정도면, 중앙일보·조선일보의 조작사진과 홍보기사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이른바 주요 언론의 ‘프레임 조작’이고 ‘여론 조작’ 방식인 것이다.

 

텍스트 기사만이 아니라 사진도 기사다. 요즘 포털에서 소비되는 언론의 ‘조각난 뉴스’ 기사들이 그렇듯이, 한 장의 사진 기사는 현실이나 사건 현장의 ‘일면’만을 보여줌으로써 전체적인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최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의 끔찍한 싸움을 보여주는 현장의 몇몇 사진들이 이 전쟁의 전체적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진실의 전체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진실을 조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교묘하게 앵글을 조작하고 사진을 편집해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야말로, 요즘 윤 정권이 ‘근절’시키겠다는 ‘가짜뉴스’인 것이다.

언론의 사진 조작은 비윤리적이어서 비판받아야 하는 수준을 넘어 언론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