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은 말뿐…세수 기반 스스로 허무는 정부
윤 대통령 집권 기간 주식부자 감세만 6조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기업 세금도 감면
이런 식이면 올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 예상
취약계층에 쓸 예산 줄어 사회 안전망 흔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원칙으로 삼아 재정 여력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올해 세출을)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하도록 편성했다”며 “경상성장률 전망치(4.9%)보다도 낮은 수준의 지출 증가율이 건전재정 기조 유지를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자평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쏟아내는 정책들을 보면 건전재정 기조와는 거리가 멀다. 소수 주식 부자를 위한 감세와 기업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세수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에 필요한 연구개발(R&D)을 비롯해 복지와 교육, 문화, 지방교부금 등 여러 분야에서 무리하게 올해 예산을 삭감한 것과도 모순된다. 정책의 일관된 원칙이 없다 보니,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재정의 경제 버팀목 역할도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백지화로 세수 4조 펑크
윤 대통령과 정부가 야당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발표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백지화만 해도 건전재정 기조와는 상반된다. 조세 정의와 과세 원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세수 기반을 무너뜨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은 금융투자소득세가 2025년부터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 328억 원 늘어날 것이라는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 보고서를 3일 공개했다.
예정처가 ‘2022년 세법 개정안’에 따른 세수 효과를 분석한 결과인데, 금투세 시행에 따른 세수와 2022년 10월 당시 제도가 유지됐을 때의 세수 차이를 비교했다. 이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금투세 도입을 없었던 일로 돌린다면 4조 원가량의 세수 확보 기회가 사라질 것으로 분석됐다.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면 연평균 1조3400억 원 정도 들어올 세금이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금투세는 주식과 파생상품, 채권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이익에 과세하는 세금이다. 상장주식은 5000만 원, 기타 금융상품은 250만 원까지 공제되며,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세율은 22%다. 이익이 3억 원을 초과하면 27.5%의 세율이 적용된다. 당초 2023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여야 합의로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연기했다.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이 과세 대상인데, 법안이 마련됐던 2020년 세법 개정안을 제출할 당시 기획재정부는 약 15만 명이 해당될 것으로 추정했다. 2019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식 소유자(중복 제외) 약 600만 명의 2.5%에 해당한다.
이처럼 과세 대상이 소수에 그쳐, 윤 대통령과 정부가 금투세 백지화 근거로 꼽았던 주식시장 활성화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금투세 백지화 주장이 경제 정책이라기보다 4월 총선을 겨냥한 정치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경숙 의원은 “정부가 여야 합의된 사항을 파기하고 있어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지난해 역대급 세수 감소 상황에서 정부가 향후 부족한 세수를 어떻게 보완할지 대책도 없이 세수 포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로 세수 2조 줄 듯
지난달 말 대통령실의 의중을 반영해 정부가 기습적으로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확정한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도, 윤석열 정부가 입으로만 건전재정 타령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는 지난해 상장주식 종목당 10억 원 이상 보유하는 대주주를 대상으로 20~25% 세율로 과세하던 주식 양도세 기준을 종목당 50억 원으로 높였다.
양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한 종목 주식을 10억 원 이상 보유해 지난해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된 대주주는 1만 3000명이다. 5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4000명에 불과하다. 시행령 개정으로 양도세 과세 대상이 70%나 감소한 셈이다. 결국 주식 양도세 완화는 7400여 명의 주식 부자만을 위한 감세일 뿐이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법을 개정하면서 이유로 내세웠던 연말 주가 하락을 방어했는지는 의문이다. 극히 소수에만 해당되는 부자 감세로 주가가 영향을 받았을 확률은 매우 낮다. 지난해 말에도 국내외 경제 변수가 주가 흐름을 결정했다. 주가 양도세 완화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실효성은 거의 없는데, 세수 감소 예상액은 2조 원 안팎으로 적지 않다.
양경숙 의원실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2년 상장주식 양도세를 신고한 대주주는 5504명으로, 이들의 양도차익은 7조 2585억원이었다. 1인당 13억 1900만 원의 양도차익을 남기면서 총 1조 7261억 원의 세금을 냈다. 1인당으로는 3억 1400만 원의 주식 양도세를 낸 셈이다. 평균 양도차익 세율은 23.8%였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해 대기업 세금 감면
사실상 법인세 인하 효과가 있는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도 건전재정 기조와 맞지 않는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3일 ‘2024년 경제정책방향 협의회’에서,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말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직전 3년 평균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의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주는 제도다. 정부와 여야는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을 타개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한시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고 지금은 일몰된 상태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1980년대 이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경제가 좋지 않았을 때 한시 도입됐다.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요인은 매우 많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향후 사업 전망이다. 시장이 커지는 분야에서는 설비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세금을 아무리 많이 깎아줘도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임시투자세액공제도 마찬가지다. 시행 후 기업 투자 증대로 이어졌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
한시 도입한 제도를 연장하는 것은 세법의 원칙을 흔드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 기회로 여기지 않고 사실상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투자 촉진 요인은 없고, 일몰됐을 때 기업 불만만 키우는 역효과만 생긴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도 임시투자세액공제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 규모는 7500억 원이었는데, 이 중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는 17억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획재정부의 국세 수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세수 부족분은 5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 감소액이 절반에 육박한다. 기업의 영업이익이 줄어든 탓도 있으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총선 표를 겨냥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올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윤 대통령이 자화자찬한 ‘건전재정 기조’는 말뿐이고, 세수 부족으로 재정 상황은 더 나빠질 게 뻔하다.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필수 분야에 재정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강화에 많은 정부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기업과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서 이런 곳에 쓸 예산을 줄이는 재정 정책은, 양극화 심화와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다.
장박원 에디터jangbak6219@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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