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민간인 사찰’ 면죄부, 공안통치 시대로 회귀했나
개정된 국가정보원법이 올해 1월부터 발효돼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됐는데도, 국정원이 여전히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미행과 사진 촬영 등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국정원 내부 승인을 받은 행위여서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정보기관이 버젓이 불법을 저지르고, 경찰은 불법을 묵인한 것이다. 이야말로 말 그대로 무법천지 아닌가.
이 사건은 지난 3월 국정원 직원 이아무개씨가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회원 주지은씨를 미행하던 중 들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주씨는 이씨의 휴대전화에 자신뿐 아니라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와 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등 여러 시민단체 회원들을 사찰해온 정황이 담겨 있는 걸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 8일 “국정원 내부 위원회의 심사·의결을 거쳐 승인을 얻은 다음 착수한 것”이라며, 이씨의 국가정보원법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을 모두 불송치하기로 했다.
내부 승인만 거치면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 사찰을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국정원은 국정원의 직무를 규정한 국정원법 4조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와 관련되고 반국가단체와 연계되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 행위에 관한 정보’를 근거로 이번 사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된 국정원법에 따라 국정원은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할 수 없고, 국외 정보망 등을 통해 입수한 수사 첩보를 경찰에 전달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다.
또한 미행이나 동향 감시 등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로, 여러차례의 대법원 판례로 확정된 것이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사찰이 국정원 말대로 정상적인 안보 행위였는지, 불법인지 소송으로 가려보고자 한다”며, 주지은씨와 김민웅 대표 등 사찰 피해자들 이름으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촛불행동 회원과 대표, 대학생 등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경찰이 최근 촛불행동에 대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 비판 집회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정녕 군사독재 정권의 공안통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 2024. 10. 2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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