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한국에서 1980년식 쿠데타는 불가능
“카메라는 칼보다 강하다”
힌츠페터가 캠코더로 찍은 1980년 친위 쿠데타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넷에 올린 2024년 쿠데타
사실이 소거되면 희망도 정의도 사라진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그 직후 여야당 의원들이 신속하게 국회 본회의장에 집결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다수의 군과 경찰 병력이 국회로 출동한 가운데 시민과 의원, 보좌관 등이 맹렬하고 과감하게 저항하는 장면들이 영상으로 기록됐다. 지금도 그런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TV에서는 그 사건이 거의 생중계되지 않았다. 관심을 가진 일본 시민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TV는 기능하지 않았으나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가 한국 상황을 생중계했고, 실제로 그것으로 충분했다. TV로부터의 이탈, ‘탈TV’가 진행되고 있다더니, 과연 그러했다.(<아사히신문> 12월 13일)
힌츠페터가 캠코더로 찍은 1980년 친위 쿠데타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이가라시 모토미치(40) 일본 간사이대학 교수는 지난 3일의 한국 국회에서 벌어진 위와 같은 상황을 1980년의 광주항쟁 때와 비교 대조하면서 그 차이에 주목했다.
40년도 더 지난 1980년 사건에서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 당시 육군소장 주도로 발령된 계엄령에 대해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봉기했고, 거기에 출동한 군대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일본에서도 히트한 영화 ‘택시 운전사’(일본에서는 ‘약속은 바다를 넘어’라는 부제가 붙었다)에서도 묘사돼 있듯이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커다란 비디오카메라(캠코더)를 들고 도망쳐 나오며 필사적으로 사건 현장을 촬영했다. 힌츠페터 덕분에 그 역사적인 사건은 영상기록으로 남았고, 세계 곳곳에서 방송됐다.
이처럼 아날로그 캠코더의 경우 카메라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물리적으로 운반해야 한다. 힌츠페터는 간신히 한국을 빠져 나가 일본으로 갔고, 거기에서 테이프를 유럽으로 보냈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국 현지 취재를 감행한 아사히신문 기자들도 미국 AP 통신 서울 지국을 통해 필름을 일본으로 보냈다.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올린 2024년 쿠데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나 역사적인 대사건을 영상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그것을 실시간으로 유포할 수 있게 됐다. 40여년 전에는 프로 저널리스트만 할 수 있었던 촬영이나 보도를 지금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전쟁과 데이터에 대한 연구를 게속해 온 이가라시 교수는 최근 사진과 영상 등의 시각 데이터가 전쟁과 관련한 데이터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전쟁 장면이나 동영상에 크게 감동을 받고, 때로는 정치적인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카메라는 칼보다, 때로는 펜보다 강하다. 그런 시대가 돼 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전시하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시간 동영상들, 알리바이 조작 불가능
“이것은1980년 광주사건 때와는 대조적이다.”
40여 년 전에 신군부가 광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그것을 그들의 권력 찬탈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철저한 봉쇄로 야만적인 유혈진압을 광주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진상을 알 수 없게 만들었던 점일 것이다. 현장 목격이나 취재, 그것을 사진이나 동영상에 담아 외부 세계에 알리는 것은, 힌츠페터의 예로 보듯 극히 위험하고, 그마저도 매우 예외적일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진상이 화상이나 영상에 담겨 외부로 유출돼 정리되고 해석돼 다중에게 유포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에 현장에서 자행된 신군부의 야만의 행적은 지워지거나 변형돼 그들의 알리바이 조작에 동원될 수 있었다.
12월 3일의 친위 쿠데타는 그런 점에서 1980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경찰과 군인들의 국회 봉쇄와 본회의장 난입 시도, 이에 대항해 담장을 뛰어넘어 국회로 들어가는 의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항의의 고성 속에 그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진입로를 열려는 시민들, 유리창을 깨고 창틀을 넘어 국회 내로 들어가는 무장한 군인들, 온갖 기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군인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는 국회 내 사람들... 이런 모습들이 국회에 설치된 카메라 외에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휴대폰으로 찍히고 촬영돼, 실시간으로 세계에 삽시간에 유포돼 전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대형 국제 뉴스가 됐다.
계엄령 해제 결의안 통과 장면, 그리고 그 뒤의 국회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내란 가담자들의 증언 등도, 모두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게에 송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봉쇄도 군인들의 국회 진입도, 애초에 그럴 계획도 없었다며 12월 3일 사태가 친위 쿠데타도 내란도 아닌 합법적이고 애국적인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씨와 쿠데타 기획자 및 가담자들의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명백한 증거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그들의 알리바이 조작은 원천적으로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1980년에 ‘성공’했던 친위 쿠데타는, 그것을 모방했던 2024년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이 보편화되고, 수십년의 민주화 투쟁으로 단련된 시민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는.
1980년과는 달리 2024년의 내란죄와 친위 쿠데타임을 입증할 증언과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이 만들어낸 시대의 질적 변화를, 20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쿠데타 주모자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하다. 그들은 그들이 이미 장악한 주류 TV방송과 신문들만 믿고 유튜브 등 SNS의 영향력을 경시했거나, 그들 편인 극우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을 과신하면서 김어준만 잡아들이면 될 것이라 오판했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으로 세계가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친위 쿠데타가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이 소거되면 희망도 정의도 사라진다”
이가라시 교수는 2022년 3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병원을 폭격하고 임산부와 유아들을 살해한 사건도, AP통신의 저널리스트 미스티스라프 체르노프 기자 등의 취재팀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의 20일간’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세계로 그 진상이 발신됐다며, 그런 화상이나 동영상들이 날조됐다는 러시아 정부의 주장이야말로 날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의 부차 민간인 학살사건도 현장을 목격한 현지 사람들이 카메라 장착 휴대폰으로 그 사실을 찍어 인터넷으로 세계에 실시간으로 유포함으로써, 그것을 가짜 뉴스로 몰아간 러시아 정부의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4만여 명을 살해(약 70%가 여성과 아이들)한 ‘제노사이드’도, 현장 사람들이 찍어 언터넷에 올린 무수한 고통스런 영상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현실에서, 거짓으로 그 진실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직접적인 폭격만이 아니라 민간인들로부터 식품과 물, 전기, 연료, 의료물자 등 온갖 생활 필수품들을 빼앗고, 기아(굶주림)를 전쟁 수단으로 활용해 민간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제노사이드를 증거할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무제한 볼 수 있다.
최근 아사드의 장기독재체제가 무너진 시리아나 군부가 쿠데타로 민간정부를 전복한 뒤 저항하는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있는 미얀마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범죄에 대한 처벌이나 응징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을 전범자로 규정하고 처벌하려 해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해 온 미국은, 이를 비난하는 ICC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검찰관들를 제재하는 등, 적반하장식 역제재에 나서고 있다.
이가라시 교수는 “사실이 소거돼 버리면 정의도 희망도 사라진다. 어떻게 해서든 사실만은 모으고 지켜야 한다”고 했다.
“때로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 시민들이 묵묵히 전쟁범죄를 기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거기에 희망을 걸고 정의가 찾아올 때를 기다릴 것이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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