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옹호자는 개헌을 말할 자격이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의장을 예방해 ‘지금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한 데 이어, 18일엔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개헌 카드를 꺼냈다고 한다.
그는 집권당 원내대표와 당대표 권한대행으로서 해야 할 말, 국민들이 그에게 듣고 싶은 많은 말들 가운데, 왜 하필 개헌에 대해 말했을까?
먼저 그에게 이 사태와 헌법의 관련성에 대해 묻고 싶다.
윤석열은 헌법을 지켜 내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헌법을 위반해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헌법과 계엄법이 규정한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라도 입법부인 국회,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음에도 군을 보내 장악하려 했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음에도 해제를 머뭇거렸다.
또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려고 예비 또는 음모’한 것이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헌법’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왜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제일성이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다음으로, 개헌 주장의 자격에 대해 묻는다.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헌법 개정을 논하는가.
그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내란 범죄를 저질렀다. 민주헌법 채택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쿠데타 시도로, 전 국민이 아직도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헌법 개정을 논하는가.
그 대통령이 지난 2년 반 동안 헌법과 법률의 경계를 넘나들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 대통령이 계엄을 모의하고 준비하던 지난 수개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 대통령이 기어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 국회를 지키던 그날, 다른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합헌적 절차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탄핵소추안 표결을 할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설사 지금 헌법이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적어도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자들의 규율이자 규범이다. 이 헌법하에서 대한민국 시민들 압도적 다수는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고, 우리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
개헌은 헌법을 지킬 의지가 있는 민주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있는 헌법도 수호할 의지가 없는 당신과 당신네 정당 다수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논할 자격은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윤석열의 범죄를, 혹은 그 범죄에 이르게 된 원인을, 두루뭉술 ‘87년 체제의 한계’와 연관시키는 주장들도 보이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37년 동안 우리는 윤석열까지 포함해 8명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그중 1명을 탄핵으로 파면했으며, 지금 또 1명에 대해 파면 여부를 다투는 중이고, 나머지 6명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임기를 마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 뒤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재임 중 헌법을 위반한 범죄 때문은 아니었다.
윤석열의 범죄는 지난 두번의 대통령 탄핵소추나 한번의 탄핵 인용 사례와는 질이 다른 중대범죄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 그리고 제도적 실천에 관한 것이다.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자가, 민주주의 규범을 한낱 집권을 위한 장식쯤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는가.
대통령인 그가 군을 동원해 입법부를 침탈하려고 할 때, 그의 주변에 있었지만 모르거나 알고도 말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내란을 일으킨 그를 여전히 두둔하거나 감싸고 있는 사람들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헌법의 관점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민주주의자와 아닌 자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선출 공직으로부터 격리할 방법은 무엇인가.
제도의 문제는 이 모든 문제를 충분히 논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선행하는 문제를 논의해야만 제도 개선의 방향이 보일 것이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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