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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땅 뺏고 팔 주민 내쫓겠다는 트럼프 '평화안'

道雨 2025. 2. 6. 12:19

가자 땅 뺏고 팔 주민 내쫓겠다는 트럼프 '평화안'

 

 

 

트럼프 "팔 주민 영구 이주 뒤 미국 소유로"

NYT "지정학적 판도라 상자 다시 열어"

75만 내쫓긴 1948년 나크바 재현 위기

"인종청소 승인이자 노골적 국제법 위반"

하마스 "필요한 건 점령과 공격 종식"

사우디 "팔 주민 이주‧영토 병합 반대"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에서 밀어낸다는 트럼프의 제안은, 인종청소 승인이며,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다. 미국은 가자를 소유하거나 팔레스타인 인민의 미래를 지시할 어떤 권리도 없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며, 미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인 '어 뉴 폴리시'의 타리크 하바쉬 공동대표는 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영구적으로 다른 나라와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무기한 가자를 장악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

전직 미 교육부 공무원인 하바쉬 대표는 작년 1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일방적 옹호에 항의해 사임한 바 있다.

 

* 4일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의 한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불 타는 쓰레기 더미에 종이를 던지고 있다. 2025. 02. 04 [AP=연합뉴스]

 

 

트럼프 "미, 가자 소유…팔 주민 영구 이주"

"인종청소 승인이자 노골적 국제법 위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가자 재건을 포함한 중동 평화‧번영 구상을 공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 가자는 미국이 무기한 소유한다. 필요하면 미군이 주둔한다 △ 가자의 주민을 주변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 가자 난민의 귀환은 불허한다 △ 가자를 재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 번영을 일군다 △ 세계인들이 와서 살게 한다 등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가자를 장악할 것이다...우리는 가자를 소유할 것이고, 현장의 모든 위험한 불발탄과 다른 무기를 책임지고 해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지를 고르고 파괴된 건물들을 철거하자,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택을 무제한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일으키자"라고 한 뒤, 가자를 개발하면 "중동의 리비에라(아름다운 해안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팔 주민에게서 가자 소유권을 빼앗고, 그들을 다른 지역과 인근 나라로 강제로 이주시키겠다는 점이다. 말로는 팔 주민을 '가자의 지옥 같은 삶'에서 구출해 이웃 나라인 요르단, 이집트에 마련한 부지로 이주시켜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한다. 팔 주민이 가자로 돌아가면 수십 년간 이어진 폭력과 죽음이 반복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진행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 02. 04 [AFP=연합뉴스]

 

 

 

트럼프, 측은지심인양 한껏 포장했지만

본질은 땅 빼앗고 원주민 내쫓겠다는 것

 

트럼프는 "그들은 평화를 얻게 된다. 이런 훌륭한 인민의 문명이 겪어야만 했던 것처럼, 이제 그들은 총에 맞아 죽거나,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로 돌아가려고 하는 유일한 까닭은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이스라엘 안보를 구실로 미국이 가자 땅을 사실상 강제로 빼앗고, 2000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을 차제에 내쫓겠다는 게 이번 트럼프 구상의 어두운 본질이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는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합병 승인을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 4주 안에 결정할 예정이다.

 

그 경우 가자는 미국 손에, 서안은 이스라엘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와 아랍국들을 비롯해 국제사회 절대다수가 찬성해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은 물 건너간다.

'두 국가 해법 반대로 봐도 되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두 국가나 한 국가, 어떤 다른 국가에 관한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자) 주민에게 삶을 살 기회를 주어야만 하고, 주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주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발언한 네타냐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동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지닌 새로운 사고"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네타냐후는 가자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 하마스의 군사·통치 역량 파괴, 모든 인질 석방, 다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는 가자지구 등 3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4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네타냐후 체포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5. 02. 04. [AFP=연합뉴스]

 

 

 

하마스 "필요한 건 점령과 공격 종식"

사우디 "팔 주민 이주‧영토 병합 반대"

 

직접 당사자인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물론, 주변 아랍국들도 트럼프 구상에 반발하고 나섰다. 하마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그 지역에서 혼란과 긴장을 초래할 처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건 우리 인민에 대한 점령과 공격의 종식이지, 자기 땅에서 내쫓기는 게 아니다"라면서 "가자의 우리 인민은 15개월 넘는 융단폭격 하에서도 이주와 추방을 좌절시켰다. 그들은 자기 땅에 뿌리 박고 고향에서 뿌리뽑히는 어떤 책략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랍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5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사우디 입장은 확고하고 견고하며 변함없고,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팔 독립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주나 영토 병합 등,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 침해는 무조건 반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를 포함해 역대 미 행정부의 중동평화 구상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라는 점에서, 앞으로 트럼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주당의 크리스 밴 홀런(메릴랜드) 상원의원은 "다른 이름의 인종청소"라고 규탄했고, 저스틴 어마시 전 공화당 하원의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을 가자에서 강제로 몰아내려고 군대를 배치한다면, 미국은 또 다른 무모한 점령에 빠질 것이며, 이는 인종청소라는 범죄에 해당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 '6일 전쟁 '도중 가자지구의 가자시티로 진입하는 이스라엘 군 병력. 1967. 06. 07 [AP=연합뉴스 자료사진]

 

 

 

NYT "지정학적 판도라 상자 다시 열어"

75만 내쫓긴 1948년 나크바 재현 위기

 

뉴욕타임스(NYT)는 5일 자 기사에서 "트럼프가 사안을 인도주의적 당위와 경제 발전 기회로 프레이밍했지만, 중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지정학적 판도라 상자를 사실상 다시 열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 통제는 수십 년간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주요 발화점 중 하나였다. 팔 주민을 이주시킨다는 생각은, 서구 열강이 이 지역의 지도들을 다시 그리고, 현지 주민의 자율성을 무시한 채 주민들을 이주시킨 시대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영국 등 서구 열강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팔레스타인 땅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 75만 명이 내쫓긴 나크바(대재앙)를 시작으로, 지난 77년간 팔 주민은 잔혹하고 끔찍한 고난과 비극을 겪어왔다. 현재 220만 명의 가자 주민 대다수는 1차 나크바 때 강제로 이주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손들이다.

 

앞서 지난 3일 사우디를 비롯한 요르단, 이집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권 5개국 외무장관은, 가자 주민을 인근 아랍권 국가로 이주시키자는 트럼프의 구상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