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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화약고' 발칸, 불안한 평화 30년 만에 파탄 위기

道雨 2025. 3. 11. 10:31

'유럽의 화약고' 발칸, 불안한 평화 30년 만에 파탄 위기

 

 

 

발칸, 상황 방치 때 글로벌 전쟁 비화 위험

세르비아계 지도자 도디크 '분리 행보' 본격화

보스니아 국가 토대 '데이턴 협정' 공개 부정

세르비아‧러시아, 도디크 민족주의 선동 옹호

"트럼프, 발칸 유사시 대처할 여력 없을 듯"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정세가 불길하다.

세르비아계가 본격적으로 분리, 독립 시도에 나서면서, 30년간 지속된 '불안한 평화'가 깨질 위기에 놓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92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면서 터진, 끔찍한 민족, 종교 간 유혈 전쟁을 겪고서 만들어진 나라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미국의 오하이오주 데이턴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서 맺은 '데이턴 평화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주로 세르비아계가 무슬림인 보스니아계를 대상으로 삼았고, 인접국인 세르비아·몬테네그로도 가담해 ,3년여의 기간에 10만여 명이 죽었다. '인종 청소'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잔혹했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스롭스카공화국의 밀로라도 도디크 대통령이 26일 분리주의 활동 혐의로 연방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정치활동 금지 6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수도 반자 루카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2. 26 [AP=연합뉴스]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 보스니아

불안한 평화 30년 만에 파탄 위기

 

데이턴 평화협정의 정신에 기초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국가 2체제'를 만들었다. 민족적으로 보스니아계(이슬람교)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가 지배적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그리고 세르비아계(정교회)가 지배적인 스릅스카공화국이 있다.

그 위에는 각 민족을 대표하는 3인의 대통령 위원이 통솔하는 중앙정부와 의회가 존재한다.

 

또 다른 유혈 분쟁을 예방하고자, 민족 분포를 기준으로 권력을 분점하되, 하나의 국가 형태는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불안한 동거였음은 물론이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힘겹게 성취한 불안한 평화를, 이제 세르비아계가 작심하고 흔들고 나선 것이다.

30년 전의 민족·종교를 구실로 한 유혈 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세르비아계가 80%를 점한 스릅스카공화국의 대통령인 밀로라도 도디크다. 중앙정부의 세르비아계 대통령 위원직도 겸임한 도디크는 초강성 민족주의자로서, 2021년부터 스릅스카공화국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해, 민족·종교가 같은 이웃 나라 세르비아로 합병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스릅스카공화국의 수도 반자루카에서 26일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세르비아계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2025. 02. 26 [로이터=연합뉴스]

 

 

 

세르비아계 도디크 '분리 행보' 본격화

평화의 토대 '데이턴 협정' 공개 부정

 

구체적으로 그는 스릅스카가 보스니아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국방·사법·조세 제도를 운용해야 하며, 데이턴 평화협정이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을 보스니아라는 단일 국가로 강제로 묶어 둔 게 엄청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보스니아란 국가의 토대인 데이턴 협정 자체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행동이다.

 

세르비아계 주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해 보스니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비판을 받은 데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의 압박이 거세지자, 작년 1월 8일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나 혁명을 통한 분리,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한발 물러났으나, 그 이튿날 불법화된 스릅스카 건국기념일 행사를 강행하고, 세르비아계 주민이 정신적으로 세르비아와 연결되어 있다고 발언해 민족 갈등을 조장했다.

 

루크 코피 미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발칸에서 울리는 과거의 우려스러운 메아리'란 8일 자 아랍뉴스 기고를 통해 "도디크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다"며 "최근 몇 년간 보스니아의 합법적 국가 구조와 제도를 약화하는 조처를 해왔고, 스릅스카 안에 그에 상응하는 국가 제도들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개시했다"고 말했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작년 10월초 대홍수 때 숨진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시위도중 한 시민이 "돈은 어디 있나"란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 02. 10 [로이터=연합뉴스]

 

 

 

보스니아서 국방·사법·조세 제도 분리한

도디크에 징역 1년, 정치활동 금지 판결

 

대표적으로 도디크는 국방·사법·조세 제도를 보스니아에서 분리하는 일련의 법률을 도입하는 강수를 뒀다.

보스니아의 법률 제정‧폐지와 관련한 최종 권한과 공무원 임면권은, 데이턴 평화협정 상 보스니아 내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과 협정 이행을 감독하는 크리스티안 슈미트 유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고위대표에게 있는데도, 이를 보란 듯이 위반한 것이다.

 

이에 슈미트는 이들 법률이 보스니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다면서 모두 무효화했고, 도디크는 스릅스카는 유엔 고위대표의 결정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법안을 승인했다.

슈미트는 그 법안도 무효로 만들었다.

급기야 도디크는 유엔 고위대표의 결정에 불복해 '세르비아계 분리' 입법을 강행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26일 보스니아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과 6년간 정치활동 금지를 선고받았다.

 

친러시아 성향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인 도디크는 유죄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스릅스카공화국 내에서 중앙정부 경찰과 사법부의 권한 행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보스니아 헌법재판소는 지난 7일 이 법안과 관련해 "시행되면 보스니아의 헌법 질서와 주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전까지 법안 시행을 중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도디크는 이런 보스니아 헌재의 결정도 바로 거부했다. 코피 연구원은 "데이턴 협정은 보스니아의 평화와 통합을 유지하는 데 핵심 요소"라면서 "이는 보스니아 주권과 데이턴 협정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지적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모스크바의 조국수호자재단에서 '특별군사작전'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5. 03. 06 [스푸트니크=AP=연합뉴스]

 

 

 

세르비아‧러시아, 도디크 민족주의 선동 옹호

유럽의 우크라 전 집중 방해가 푸틴 노림수?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천만한 도디크의 행보에 이웃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옹호하고 나선 점이다.

도디크에 대한 보스니아 법원의 26일 유죄 판결 직후,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스릅스카를 직접 방문해 "부끄럽고 불법적이며 반민주적인 동시에, 스릅스카와 세르비아계 주민의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의 27일 브리핑을 통해 "정치적 동기에 의한 판결"이라며, 발칸반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러시아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해, 6일 비공개로 열렸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일 외무부 성명을 통해 도디크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코피 선임연구원이 보기에, 넉 달째 이어지는 격렬한 반정부 규탄 시위와 야당의 공세에 직면한 세르비아의 부치치는, 보스니아 내 위기를 부추김으로써 국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 할 공산이 크다.

 

또한 러시아의 푸틴은, 친러 세르비아와 스릅스카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유럽의 주의를 보스니아 쪽으로 돌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 못하게 만들려고 한다. 푸틴은 나아가 이를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잖아도 EU 평화유지군인 유럽통합군(EUFOR)은 7일 성명을 통해 "모든 시민의 안전을 고려한 선제적 조치"로, 현재 1100명인 보스니아 주둔 병력을 14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중앙)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회담에서 J.D. 밴스(오른쪽) 미국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2025.2.28. AP 연합뉴스

 

 

 

"트럼프, 발칸 유사시 대처할 여력 없을 듯"

발칸, 상황 방치 때 글로벌 전쟁 비화 위험

 

일단 미국도 도디크의 분리주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7일 X를 통해 "도디크의 행동은 보스니아의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며 "위험하고 불안정한 행동에 맞서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피 연구원은 트럼프가 1990년대 미국의 발칸 위기 대응을 반복하진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은 미국의 남부 국경 상황과 함께,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이란 대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남동 유럽 상황에 대처할 여력이 거의 없을 듯하다"고 예상했다.

 

과거엔 평화유지군으로 수천 명의 미군이 보스니아 내에 배치돼 학살을 막거나, 1999년 세르비아가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행할 때 이를 막고자 미 공군을 투입하기도 했다.

 

코피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유럽이 휴전 시 뭘 할까에 집중한 상황에서, 발칸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어떤 유의미한 대응 역량은 거의 없을 것 같다"며 "따라서 발칸을 경시하지 말고, 1990년대에 어렵게 쟁취한 평화에 계속 헌신하는 건, 미국과 유럽 정책결정자들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를 보면 지역적이거나 심지어 로컬하게 보이는 지정학적 상황이 글로벌 영향을 지니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칸이 아주 적절한 사례"라면서 "역사가 보여주듯, 발칸의 긴장은, 점검하지 않은 채 놔둔다면, 더 광범위한 분쟁들을 점화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강대국 간의 역학 관계 속에서, 발칸이 다시 한번 글로벌 전쟁의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경고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