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동반자들과 함께 한 경주 답사기 (신정숙)

道雨 2007. 6.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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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답사기는 해변도서관 주부독서회의 회원이신 신정숙님이 쓴 것으로, 2003년 3월 16일의 경주지역 답사 후에 써서, 해변도서관 주부독서회 잡지인 '자기사랑'에 기고된 글이다. 

   제가 주부독서회 회원들과 그 가족(총 24명)의 답사 안내를 담당하였기에 소개합니다.



  

             동반자들과 함께 한 경주 답사

                                        - 신정숙 -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 중에서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다면 그들도 내 삶의 동반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함께 뜻을 같이하고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보고 배우고 느끼기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비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우리의 답사여행은 강행되었다.


신라의 천년 고도인 역사의 도시 경주가 이번 답사지였다. 몇 번을 가 본 곳이지만 매번 다른 코스가 잡힐 만큼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살아서 숨쉬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까지 촉촉이 젖어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더불어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첫 답사지는 불국사였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 그래서 소홀해지기 쉬운 곳이라는 공감을 갖고 '토함산일출문' 앞에 섰을 때는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국사는 '1'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만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유명한 곳이다. 불국사의 핵심은 석축에 있다는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대웅전 영역, 비로전 영역, 극락전 영역의 3영역으로 나누어진 불국사 내부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보았을 때는 너무도 낯익은 모습에 그곳을 잘 알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청운/백운교 옆의 수구를 통해 석축 아래 연못터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이 수구를 통해 물을 끌어 들였다고 하니 복원되지 못한 연못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삭여야 했다. 또 회랑은 다른 절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TV에서 사극을 볼 때 궁궐에서 궁녀들이 줄지어 지나가던 그 곳이 '회랑'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회랑은 임금님이나 부처님을 모시는 아주 특별한 곳에만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국사는 격이 상당히 높은 절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석가탑과 다보탑의 수난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서글픈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10원짜리 동전에 그려진 다보탑의 의미는 1층의 억센 4각, 2층은 아담한 8각, 3층은 부드러운 원으로 모난 것이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나타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지향하는 도의 세계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무설전'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강당을 보면서 '말이 없는 곳'의 경지를 느낄 수 있어 말많은 나 자신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이른봄의 서늘한 공기와 비로 인한 싸늘함이 우리로 하여금 뜨끈뜨끈한 칼국수를 그리워하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칼국수집을 쉽게 찾지를 못하고 '구정동 방형분'을 먼저 보기로 하였다. '구정동 방형분'은 신라시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각형(方形) 고분으로 12지신상을 새긴 호석이 있었다. 특별한 것은 무덤 안의 석실을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님이 손전등을 준비하셔서 한 가족씩 들어가 보았다. 한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외부 분의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석실 안은 관2개정도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이었고 음침했다. 죽음 뒤에 오는 인생의 덧없음이랄까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허무한 마음도 잠시,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찾은 우리의 따끈따끈한 칼국수를 먹으면서 이내 행복해졌다. 막간으로 먹은 쑥떡은 진짜 ! 별미였는데 삶에 있어 미식은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새삼 느꼈다고 하면 답사의 분위기와는 안 맞는 것일까?


다음으로 간 답사지는 '영지'였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이 담긴 이 연못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냥 연못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지고, 그것이 우리의 숨결이니 더 행복해진다'는 가이드님의 말씀에 공감하였다. 어떤 것이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루하게 계속 내리던 비는 다음 답사지인 '괘릉'으로 이동할 때에 서서히 개고 있었다. 그래서 '괘릉'에 도착하자마자 모처럼 아이들은 신이 나서 '릉'주위의 잔디를 뛰어다니며 질퍽거렸고 덩달아 신이 난 어른들도 단체사진을 찍는 등 사진기의 셔터를 계속 눌러대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괘릉'은 현존하는 신라 왕릉가운데 가장 화려한 무덤으로 이 곳에 있던 작은 연못의 수면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 두어 안장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掛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서역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무인석'은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당시 서역과의 활발한 문물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웃음 가득한 장난스러운 돌사자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코스는 '원원사터'였다. 원원사(遠願寺)는 통일신라의 영원한 번영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김유신이 신인종의 고승들과 더불어 불력(佛力)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세운 절이라고 했다. 울산 방향으로 한참을 가서는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서야 만날 수 있는 이 절터는 새로 세운 절인 '원원사'를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야 있었다. 절터 특유의 허전함을 이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원원사터 3층석탑이 절터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는 듯 했다.


궂은 날씨 속에 강행된 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슴과 머릿속에는 새로운 것을 알고 느낀다는 기쁨과 역사 속에 동참한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하였다. 또 생의 동반자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으로 좋은 추억의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