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식코'라는 영화(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한 다큐멘터리식의 영화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의 수많은 문제점 중의 하나(의료보험분야)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영화가 이번에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주도로 이루어진 의료보험 개혁 입법 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와는 달리, 오히려 문제를 향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 아래의 글은 한겨레신문에서 옮겨온 것이다.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보며
맹장염 수술 약 2000만원, 자연분만 400만원, 감기 진찰 한 번에 10만원.
보험이 없으면 미국의 의료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미국에 와서 실제로 그 금액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는 미국에서, 보험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가면 정말 큰일이다.
한 해 파산을 신청하는 가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파산 원인이 바로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민간의료보험료는 너무 비싸서 인구의 17%인 5400만명이 의료보험 없이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보험료 상승으로 직장에서 보조하는 의료보험의 비중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의료보험 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미국이기에 최근 며칠간 사람들의 눈과 귀는 온통 하원의 표결 결과에 쏠려 있었다. 3월21일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안이 결국 하원을 통과한 순간, 많은 미국인들은 환호했고 또 일부는 한숨을 내뱉었을 것이다.
미국 의보개혁 수정안의 주요 내용은 앞으로 10년간 약 9400억달러를 투입해 무보험자 약 3200만명에게 보험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인 메디케이드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산층에겐 보조금을 지급하여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또다른 중요한 조처로서 개인이 풀을 이루어 의료보험거래소에서 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보험회사들을 규제하는 조처들도 도입되었다. 1912년 루스벨트의 대선공약 이후 100년이 되도록 실현되지 못했던 전국민 의료보험의 꿈이 이제야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재원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는 다양한 비용절감안과 함께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전망이 확실치는 않다. 따라서 이번 개혁안은 중산층 이상에게는 세금 부담, 그리고 기업에는 보험료 부담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사실 혜택을 받는 이들은 적지만 부담을 지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국민여론은 의보개혁안에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또한 공적 보험을 옵션으로 도입해 과도한 민간보험료를 인하시키려는 계획은 보수파의 반발과 보험회사의 로비로 이번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은 보험료 중 상당부분을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고 의료기록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개혁은 오바마 정부 최대의 정치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트위터로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엄청난 재정적자와 국론 분열 속에서도 서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이루어낸 정부의 뚝심은 분명 부러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의는, 세금이 들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사회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복지 확대의 길을 미국이 선택했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며 오랫동안 불평등이 심화된 세계 최강대국의 이러한 전환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당연지정제도의 폐지 계획이 논란이 되었고,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도입과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은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오바마가 의회 연설에서 인용한 링컨의 명언, “내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나는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가 귓가에 울린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시장주의 시대 끝낸 오바마 개혁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개혁법안의 통과로 4600만 무보험자 중 3200만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다. 해마다 보험이 없어서 죽음에 이르는 미국인이 1만8000명에 달했다는 사실은 무보험자들이 겪은 고통을 가늠케 한다. 베트남전 때 3년마다 이 정도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잘못된 제도 탓으로 치른 대가가 아주 혹독하였다. 새 법안은 이런 야만에 대한 투쟁 선언이다.
새 의료개혁이 공공보험 없이 민간보험에만 의존한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하지만 오바마 개혁이 민간 보험회사를 정부 규제 안으로 끌어들여 영리 보험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과거 클린턴 정부 의료개혁 당시 한 보수주의 인사는 “개혁안의 성공은 복지국가 정책이 재탄생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개혁된 의료보험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체험이 정부의 복지확대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글쎄 오바마 개혁이 복지국가 부활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미국이 시장 만능과 작은 정부를 내세운 레이건주의를 벗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유럽 복지국가와는 다른 발전 궤도를 밟았다. 중산층 소득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상위 1% 부자들의 소득은 두 배가 되었다. 레이건 이래의 탈규제와 감세, 복지 축소가 이런 불평등 증가에 큰 힘이 되었다.
의료 불평등도 심각해져, 1970년대 90%였던 의료보험 가입률이 85%로 떨어졌다. 위기의 뿌리는 직장의료보험을 주축으로 한 시장주의 의료제도에 있었다. 치솟는 보험료로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제공하던 의료보험을 점차 줄였고, 비싼 보험료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들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통로를 잃었다.
새 개혁안은 정부 개입으로 95%의 보험가입률을 이루겠다는 선언으로, 한 세대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시대를 넘어서는 제2의 뉴딜을 시작하였다.
오바마 개혁에 대한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대공황기 루스벨트의 뉴딜이 공공 의료보험 도입에 실패한 이래 이어진 공보험의 공백기에 자리를 잡은 민간보험 체제에서 정부의 의료 개입을 가로막는 강력한 기득권층이 성장하였다. 민간 보험회사와 제약업계가 단단한 각오로 반대에 나섰고, 직장보험 혜택을 누리는 중산층도 세금부담 걱정에 떨떠름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오바마 개혁의 성공은 개혁세력의 지지세보다는 해법 제시 없이 반대에만 급급했던 시장주의의 무능에 힘입은 바 크다.
어쨌든 개혁법안은 통과되었으나 그 운명만큼이나 기존 제도의 관성을 이겨내고 전환을 이루는 개혁정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예도 드물다.
1977년 시작된 우리 건강보험은 단기간에 전국민 보험으로 발전하였고, 국민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복지제도로 자리잡았다. 보험이 빠르게 확장되니 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담분도 계속 늘어, 참여정부에서는 보장성이 65%로 올라섰다.
하지만 건강보험도 전환점을 맞이하여 이 정부 들어서는 보장성이 62%대로 떨어졌다. 명색은 공보험인데 정부는 민간보험식의 당사자 부담 원칙만을 내세워 뒷짐지고 있는 형국이니, 건강보험이 빠르게 늘어나는 의료욕구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 빈틈에서 자라난 민간보험은 건강보험의 절반 가까운 지출 규모로 팽창하였다. 세력이 커진 민간보험이 다시 건강보험의 앞길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시작되니, 정부의 방임으로 겪은 미국민의 모진 경험을 남의 나라 얘기로만 돌릴 수 없다.
국민의 의료욕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부의 책임의식 회복이야말로, 의료보장 발전의 갈림길에 선 우리가 오바마 개혁으로부터 배울 점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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