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나무의 공작, 소나무 이야기 모음

道雨 2010. 5. 10. 15:41

 

 

 

 

                         나무의 공작, 소나무 이야기 모음

 

 

1. 유교문화에 미친 소나무의 상징성

 

 


<사진 : 송옥독서도(松屋讀書圖) | 일명(佚名), 명(明). 회안시박물관 소장 | 모진 세파에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투지와 의연함이 돋보인다.>

흔히 바람과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소나무를 가리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유학자의 절의와 통한다고 했다. 그런데 소나무는 세한삼우에는 포함되지만 사군자(四君子)에서는 빠진다.


유교문화권에서 대나무는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를 상징한다. 이에 비해 난초는 불우한 선비를 상징한다. 매화·국화도 선비의 상징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소나무는 벼슬길에 오른 대부(大夫)를 상징한다. 대나무처럼 절의를 상징하지만, 그것을 표방하는 주체의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적어 놓은 《논어》에 나타난 구절만큼 소나무의 상징성을 잘 표현한 말은 없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이유를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에서 우리는 소나무의 상징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소인배와 군자의 차이점은 보통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경에 처하거나 어떤 이해관계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소나무와 낙엽수처럼 그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소나무는 절벽의 틈새에서도 뿌리를 내린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변함없이 성장한다. 별도로 거름이나 물을 주거나 잔손질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살아서는 말없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죽어서는 땔감이 되거나 살신성인하듯 재목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적으나 베푸는 것은 더 많다.

소나무는 여름철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는 운치가 있고, 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으며, 눈 속에서도 우뚝하게 버티는 기백이 있다. 청백리처럼 혹독한 추위나 가뭄 때에도 굳건하게 견디며, 그늘진 곳이나 딱딱한 바위 틈새에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을 보여 준다. 모진 고난이 닥쳐도 이에 굴하지 않는 투지와 의연한 절개를 보여 주어 예로부터 사람들은 소나무의 품성을 찬탄해 왔다.

소나무는 벼슬길에 오른 사대부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소나무를 사대부와 견주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진시황이 태산을 순유하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나 큰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는데, 뒤에 이 나무를 오대부(五大夫)로 봉해 훗날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오대부송(五大夫松)’이라 불렀다. 사람도 얻기 힘든 벼슬을 소나무가 받았으니 그 소나무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온갖 나무 가운데 으뜸이니 궁궐을 짓는 데 적당하다.」고 했다. 소나무의 우람한 자태는 믿음직한 충신의 표상을 닮았다. 그래서 송나라 때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소나무는 모든 나무 중의 어른으로 공(公)과 같다.」고 한 말에 수긍이 간다.

소나무는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사계절을 통해 변함이 없다. 경망스럽게 시류(時流)에 편승해 웃자라지도 않을 뿐더러, 서둘러서 꽃을 피우거나 떨구지도 않는다. 이른바 민폐를 끼치지 않는 소나무를 유교에서는 군자와 동격으로 인정해 ‘목공(木公)’이라 칭하며, 존경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2.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소나무

 


<사진 : 교송선수도(喬松仙壽圖) | 진홍수(陳洪綏), 명(明),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 높이 솟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처럼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이 되고자 함은 아닐까.>

소나무가 유교에서는 사대부의 절의를 상징한다면, 불교에서는 만사(輓詞), 즉 만장(輓章)에 즐겨 인용되었는데, 이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상징했다.

송나라의 승려 시인 계숭(契嵩, 1007~1072)은 「세한의 지조를 가졌다 하나 / 손 안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네(持此歲寒操 手中空楚楚).」라고 하여 불교의 무상관을 소나무에 빗대어 표현했다.

승려 천석(天石)도 「바위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 세한의 지조를 내세우지만 / 뿌리 깊은 곳에 복령을 서려두고 / 천년 세월을 배불린다(偃蓋覆巖石 歲寒傲霜雪 深根蟠茯笭 千古飽風月).」고 노래했는데, 유교에서 주장하는 세한의 지조를 은근히 속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나무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는 고상한 인품을 상징한다는 유학자의 견해와 달리, 불교를 신봉하는 승려의 눈으로 볼 때는 늙어서도 집착을 끊지 못하는 유교적 삶의 무상함을 포착한 것이 돋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유교와 불교의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적 인생관에서는 오래 산다고 삶을 즐거워할 것도 아니고, 요절한다고 해서 반드시 슬픈 삶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소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늙은 소나무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어느새 백발노인이 되어 자기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당나라 때 승려 시인 영철(靈澈)은 「소나무에 죽은 가지 걸려 있고 / 무덤 위에 이끼만 무성한데 / 무덤 안에는 산 사람이 들지 않고 / 늙은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松樹有死枝 塚上唯닻笞 石門無人入 古木花不開).」고 하여 무병장수의 허망함을 소나무에 비유했다.


송나라 때 천태종 승려 지원(智圓, 976~1022)은 「유골단지 묻어 둔 소나무 아래 / 푸른 이끼와 온갖 풀이 무성하네(陶器一藏松樹下 綠苔芳草自縱橫).」라고 하여 부도탑이 즐비한 솔밭에 누워 삶의 덧없음을 읊조렸다.

이러한 소나무의 불교적 상징은 유교적 가치관의 그늘을 깨닫게 했고,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캐묻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고자 함’이 유교의 정신이라면, 불교는 그 ‘할 수 없는 것을 하고자 함’은 또 하나의 집착이라는 것을 소나무에 빗대어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승려들이 늙은 소나무에서 읽어낸 인생무상은 떠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남아 있는 자의 몫이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켜 온 소나무에서 승려들은 유교적 삶과 대비되는 불교적 죽음의 의미를 모색한 것으로 해석된다.

 

 

3. 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소나무

 


<사진 : 서각배(犀角杯) | 문추(門樞), 명(明),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 장수를 기원하며 술잔을 기울였을 선인들의 바람이 잔에 새겨진 소나무에 잘 나타나 있다.>

유교와 불교에서는 소나무를 도덕적인 인격체나 관념의 상징으로 거론하지만, 도교에서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실제적인 효용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도교 가르침의 주된 요체가 장생불사라면, 장생불사의 구체적 방법은 소나무의 약리적 작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고 도교는 가르치고 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사시사철 늘 푸른 소나무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 주자, 그 잎과 열매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여겼다.

동진(東晉)의 학자 간보(干寶)가 쓴 《수신기(搜神記)》를 보면, 어떤 신장(神將)이 이상한 나무의 열매를 요 임금에게 바쳤는데, 요 임금은 나라일이 바빠 열매 먹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그 결과 그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 열매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300살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그 나무는 간송(簡松)이라고 하는 소나무였다.

 

소나무와 관련하여 장량(張良, ?~B.C.168)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장량은 한(漢)나라의 개국공신이며, 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뒤에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갔다.

장량이 따라간 신선의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소나무의 상징은 도교의 신선술과 어느 정도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송자는 사람 가운데 신선이지만, 소나무는 나무 가운데 신선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삼을 수 있다.

 

이밖에도 진부요(陳扶搖)가 쓴 《화경(花鏡)》을 보면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인데, 껍데기는 용의 비늘 같고, 잎은 말갈기 같으며, 눈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松爲百木之長 皮粗如龍鱗 葉細如馬騣 遇霜雪而不凋 歷千年而不殞).」고 씌어 있다. 이렇듯이 오래 전부터 소나무는 장생불사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송나라 때 시인 서적(徐積)은 「동해의 한 물건은 천하에 걸물이라 / 온갖 신령이 힘을 모아 기이한 소나무를 살린다네 / 천지의 정기가 그 아래 몰려들고 / 푸른 바다 온갖 기운이 서로 만나네(東海有物天下雄 萬靈幷力生奇松 天精地粹萃其下 滄溟百道來相逢).」라고 노래했다. 이 내용에서도 소나무가 여러 나무 가운데 신선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존재라고 알려 준다.

 

많은 시인 묵객이 소나무를 매화·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로 손꼽은 까닭은 우뚝한 위용과 힘찬 기백이 온갖 나무 가운데 으뜸이고, 늙어서도 정정한 모습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학과 더불어 한 폭의 송학도(松鶴圖)를 구성하여 장생불사를 상징해 왔다.

 

 

 

4. 은자의 동반자가 된 소나무

 

중국의 《이십오사(二十五史)》 중 하나이며, 629년 당나라의 요사렴(姚思廉)이 지은 양(梁)나라의 사서 《양서(梁書)》에 이르기를, 「도사 도홍경은 유난히 솔바람 소리를 좋아하여 정원에 소나무를 가득 심어놓고 늘 그 소리를 들으며 즐겼다.」고 한다.

‘쏴아 쏴아’ 하는 솔바람 소리는 청정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티끌세상의 근심 걱정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느낌을 갖게 했을 것이다. 청렴하게 살고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도 〈귀거래사〉에서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서성거린다(撫孤松而盤桓).」고 지음(知音)처럼 소나무를 아꼈다.

소나무를 가까이 한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초월적이고 은자적인 삶을 지향했고, 그런 삶 속에서의 소나무는 하나의 인격체로 반영되었다. 중국 금나라 때 왕중양(王重陽, 1113~1180)이 화북지방에서 일으킨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全眞敎) 도사 구장춘(丘長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반계집(磻溪集)》에서 소나무를 은자와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표현했다.

내 서산에 육 년 머물 때 / 서쪽 산 위에 외로운 솔이 있었더랬지 / 나직한 아침 구름 따라 누각을 감싸안고 / 부슬부슬 저녁 비 따라 동천(洞天)을 오고 갔네 / 하늘이 지어낸 이곳에 내 반려로 삼았는데 / 계곡 물이 가로막혀 멀리 서로를 바라보고 섰구나(我居西山時六年 山西上有松孤然 朝雲霏微樓關塞 暮雨淅瀝交洞天 天生此境爲吾伴 隔澗相陪遠相看)

오래된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깊은 고독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은자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 당시(唐詩) 모음집인 《백운집(白雲集)》에 태상은자(太上隱者)의 시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도 소나무는 한 점 속기(俗氣) 없는 은자를 상징하고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 돌을 베고 잠이 드니 / 달력도 없는 산 속에 / 추위가 다해도 세월 가는 줄 모른다(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日曆 寒盡不知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세월을 잊어버리고 잠들 수 있는 것은 늙은 소나무가 옆에 있어서다. 여기에서 소나무는 한낱 식물로서 여백을 채우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아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격조를 보여 오히려 은자의 외로움을 덜어 주는 동반자가 된 소나무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 779~843)의 시에서도 그런 은자의 형상으로 소나무가 묘사되고 있다.
소나무 밑에서 동자에게 물어보니 / 스승은 약을 캐러 갔다고 / 이 산 속에 있기는 하지만 / 구름이 하도 깊어 어딘지 몰라요(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이 시에서 동자의 뒤에 말없이 서 있는 늙은 소나무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면 약을 캐러 간 은자의 모습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자의 뒤에서 굽어보고 있는 소나무는 은자의 분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찾아간 은자는 구름 속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소나무를 통해 은자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약을 캐러 갔다는 동자의 말에서 은자의 신분이 도사인 것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도사의 품성도 소나무를 통해 담담하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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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 .    소나무 송.

     공작 벼슬을 얻은 소나무.

 

 

 > 소나무는 한국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어떤 민족이든 특정나무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그 나무가 

    그들 삶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소나무로 땔감을 마련하고. 소나무로 음식을 만들고. 생을 다하면 소나무로

    관을 만드는 등. 평생을 소나무와 함께했다.

    한국 사람은 소나무를 아주 사랑한 나머지 이 나무의 이름을 달리 ' 솔 ' 이라 불렀다.

    솔은 ' 으뜸 ' 을 의미하는 만큼 우리는 소나무를 나무중에 나무로 생각했다.

    소나무의 한자는 송 (松) 이다. 이 한자는 나무 목(木)과 공변될 공(公)을 합한 형성문자다.

    그런데 공변될 공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송(松)자에 들어간 공(公)은 공변될 공의 의미보다 공후백자남(公侯伯子南) 등 벼슬을 의미하는 공(公)입니다.

    그래서 소나무 송자는 나무의 공작(公爵)이라는 뜻이며 이는 누군가가 나무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뜻이다.

    나무에 벼슬을 내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무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예는 조선시대 세조가 내린 속리산의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나무 송자는 중국 글자이니 만큼 중국에서 먼저 이런 예가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 같은 글자가 탄생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 송하관폭도(松下觀暴圖 ), 이인문, 조선17~18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29.0*36.5cm, 호암미술관 소장,

                                  계곡 숲속에서 한가로히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세속을 떠나 자연에 회귀한 은자들은 소나무를 벗 삼었다.

  

   소나무 송(松)자를 만든 사람은 중국 진시황제이다.

   그가 현재 산동성에 위치한 태산(泰山)에서 어떤 나무에게 공작의 벼슬을 내렸다

   진시황제가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비를 피하게 해준 고마운 나무였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에 나옵니다.

   지금도 중국 태산 중간지점에 진시황제와 관련 있다는 소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크기로 보아 백 살도 넘지 않을 만큼 작지만. 팻말에는 진시황제와 관련 있는 나무로 표기되어 있다.

   태산은 중국 오악(五嶽) 중 동쪽을 상징하는 산이라 해서 동악(東嶽)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양사언이 부른 태산가(泰山歌)에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 라고 노래했다.

   그 태산에도 소나무가 많이 있다.

 

                                                   > 제주 한라산 영실 안개속에 소나무숲.

 

    어떤 존재를 아주 애지중지(愛之重之)하다 보면 이름도 많이 짓는다.

    그래서 소나무 이름도 솔찮으니 많다.

    우리가 흔히 소나무라 부르지만 어떤 나무를 부르는지 알 수 가 없다. 사람마다 소나무를 기억하는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소나무는 이른바  ' 우리소나무 ' 입니다.

    우리 소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

    아마 잎이 두개이고 . 껍질은 붉은 것을 말할 것이다. 이는 소나무 껍질로 나무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나무껍질이 붉은 소나무를 흔히 적송(赤松)이라 부릅니다.

    혹 어떤 학자는 적송은 일본사람이 붙인 이름이라며 싫어하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도 붉은 소나무를 적송이라 불렀으니

     적송이라는 말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붉을 적(赤)은 사람이 불빛을 받는 모습에 글자입니다.

 

                                                                                       

                                                                 > 제주 한라산 관음사코스 산속에 홍송 군락지.

  

   껍질이 붉은 소나무를 때론 춘양목(春陽木)이라 부른다

   춘양은 경상북도 지명입니다. 소나무 이름에 지명이 붙었으니 옛부터 적송이 이 지역과 아주 밀접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무 이름에 지명을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송을 춘양목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지역에 이런 나무가

    많기 때문입니다. 적송은 춘양을 비롯하여 봉화와 울진에서 많이 자랍니다.

    그런데 나무 이름에 춘양을 붙인것은 이 지역이 다른곳의 적송을 모으고 흩는 집산지(集散地)여서 붙여진 이름 일테지요.

    특히 울진은 나무껍질이 붉으면서 아주곧게 자라는 소나무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울진 금강송(金剛松)이라 부른다.

    금강송은 나무재질이 금강석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또 금강송을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이름도 갖고있다.

    황장목은 나무속이 누른 창자와 닮아 붙인 이름이다.

    적송에는 미인송(美人松)이라는 이름도 있다. 미인송은 북한 금강산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나무고, 사람들이 이 나무를 미인송이라 부른것은 소나무가 다리가 늘씬한 여자처럼 하늘 높이 쭉쭉 뻗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같은 이름은 나무를 사람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 아름답다 '를 의미하는 미(美)자는 갑골문자에서 크고 훌륭한 양을 의미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한자를 만든 사람은 나무를 살지고 새끼를 잘 낳는 양에 비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나무를

    다리가 늘씬한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  분재원에 해송

 

  소나무는 껍질 색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나무가 살어가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불렀다.

   일반적으로 내륙에 살고있는 소나무를 육송(陸松)이라 불렀다. 육송의 육(陸)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버섯을 표현한 글자다.

    적송에서 살고있는 버섯을 송이(松 . 나무목(木)변에 귀 이(耳) : 컴에 이 자가 안들었씀)라 하지요.

    송이는 적어도 수십 년 나이를 먹은 소나무에서만 자랍니다.더군다나 송이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는 버섯입니다.

    그래서 울진. 영양. 봉화등지에 많이 살고 있는 춘양목 주변에서 송이도 많이 나옵니다.

    울진. 영양.봉화처럼 육송이 울창(鬱蒼)한 모습을 송림(松林)이라 한다.

    때론 소나무가 많은 곳을 솔밭. 송전(松田)이라 부르기도 한다.

    송림을 솔수펑이라고도 하고 소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을 솔솔바람이라 한다.

    내륙. 육지에서 사는 소나무가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사는 소나무도 있겠지요. 언어 특성상  육지에 사는 소나무가 있다면

    결코 육송이라는 이름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신석기시대가 있었기 대문에 구석기시대라는 이름이 생긴것과

    같지요. 육지 곧 내륙에서 소나무 외에 다른 지역에 산다면 결국 바닷가 근처 혹은 섬밖에 없겠지요.

    바다를 의미하는 이름이 해(海)입니다. 이 글자는 넓고 깊어 어둡다는 뜻이지요.

    바다근처에 사는 소나무니 해송(海松)이라 부릅니다. 우리 말로는 곰솔입니다. 곰솔의 곰은 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해송을 때론 검을 흑(黑)자를 사용하여 흑송(黑松)이라 부릅니다.

    왜 바닷가에 사는 소나무 이름을 검다는 뜻을 가진 한자와 함께 쓸까요. 해송 껍질이 적송과 달리 검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소나무 껍질이 검은 것은 햇볕을 믾이 쬐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햇볕을 쬐면 얼굴이 타서 검게 변하지요.

    나무도 작열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스스로 껍질인 피부를 검게 만들지 않으면 살어갈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적송은 바닷가에서 쉽살이 살지 못합니다.반대로 해송이 바닷가에서 잘 사는 것은 이 나무가 짠물에도 잘 견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나무는 짠물을 먹으면 거의 살 수 가 없습니다.

    섬나라인 일본에서 해송을 흔히 볼 수 있는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욱이 해송은 바닷바람을 막어주기 때문에 바닷가 주변 농작물을 보호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벼 같은 농작물은 짠물에 아주 약하기 때문입니다.

                                    >  바닷가 우리 동네 해송.

 

    소나무 중에는 껍질이 우윳빛이 나는 백송(白松)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백송이 드물지만 중국에는 백송이 흔합니다. 중국 백송은 껍질이 아주 희면서도 붉은 반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소나무는 껍질에 따라 이름 붙이기도 하지만. 나무의 외형을 보고 붙이기도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조경수로 즐겨 심는 반송(盤松)은 나무의 모습이 소반 반(盤)처럼 납작하게 생겨서 붙인 이름입니다.

   

       > 백송은 껍질이 아주 희면서도 붉은 반점이 있다. 희귀 수종으로 원산지인 중국 서북부에도 개체수가 그리많지 않다

         사진은 북경 자금성 경산에서 촬영한 백송의 보습이다.

 

    소나무는 잎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적송과 해송과 반송은 모두 잎이 하나에 두 갈래이고 백송은 세갈래입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리기다소나무는 백송과 같이 잎이 세갈래이다.

    잎이 다섯 갈래인 소나무 계통도 있습니다. 바로 잣나무입니다. 잣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백(柏)자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 백(柏)은 중국에서는 측백나무를 의미합니다.

    잣나무는 하나의 잎에 다섯 갈래라서 오엽송(五葉松)이라고도 부릅니다.

 

                                                                                                                     > 분재원에 해송인 곰솔

 

    봄에는 소나무에서 꽃가루가 떨어집니다.

    꽃가루에 약한 사람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에 매우 싫어하지요.

    소나무의 꽃가루를 송화(松花)라 합니다. 만주에 송화강(松花江)도 봄에 소나무의 꽃가루가 강물에 흘러가기에 붙은 이름일까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소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솔방울이라 부른다.

    땔감이 없던 시절에는 솔방울도 귀한 연료 였었지요.

    솔방울은 소나무를 줄인 솔과 열매 모양을 닮아 붙인 합성어입니다.한자로는 송자(松子)라 합니다.

    나무열매에 아들 자(子)를 붙이는 것은 아주 흔합나다.열매에 아들 '자' 붙이는 것은 아들. 즉 남자 혹은 수컷이 자식을 낳는

    ' 씨 ' 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식물의 씨앗을 의미하는 한자에는  ' 인(仁) ' 이 있습니다. 살구 씨를 행인(杏仁)이라 부르지요.

    공자 사상의 핵심인 ' 인(仁) '도 같은 이치입니다. 나무의 씨앗처럼 사람이 살아야 할 도리도  '인 '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씨앗이 나무를 키우듯 '인'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이지요.

    

          

              > 대궁묘소 금송패,조선 19세기 중반, 지름 8.2cm, 두께 2.7cm, 대궁묘소를 지키는 산림감시원에게 주던 일종의 신분증,

                 조선시대의 숲은 19세기 들어 급속히 황폐해져서 소나무가 많은 숲의 경우는 왕명을 통해 엄격하게 관리했다.

 

    소나무에서는 다른 나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끈적끈적한 송진(松津)이 있습니다.

    송진을 달리 송지(松脂)라 합니다. 이는 소나무의 기름이라는 뜻이지요.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할때 소나무의 기름으로 비행기를 운행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소나무가 많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남어 있는 소나무 중에서는 송진을 채취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 빠진 소나무 심정은 어떨까요. 사람도 진 빠지면 아주 힘들지요.

    소나무 기름은 가지를 잘라 불에 태우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송유(松油)라 부릅니다. 소나무 기름에는 진한 향기가 납니다. 그래서 소나무 기름을 송향(松香)이라 합니다.

    소나무 잎, 송엽(松葉)은 늘 푸르지만 2년마다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세하게 관찰하지 않기에

    늘 같은 잎이 붙어 있는 줄 착각합니다.

    이 처럼 늘 푸른 소나무잎을 갉아먹는 나방의 어린벌래를 송충(松蟲)이라 불렀다.

    요즘에는 거의 볼 수 없지만 1960~70년대에는 아주 많어서 초등 학생들조차 수업삼아 산에가서 직접 손우로 잡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각자의 분수를 얘기할 때 " 송충이는 솔잎을 갉아 먹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또 소나무 잎은 시루에 떡을 찔 때 깔었다. 떡에 솔 향이 베이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오래보관해도 쉬이 상하지 않지요

    그래서 솔잎을 깔고 만든 떡을 송편(松片)이라 불렀다. 송편은 떡을 의미하는 한자 병과 합해서 송병(松餠)이라 합니다.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늘푸른 소나무를 곧은 절개에 비유해서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의미하는 송백(松柏)은 절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송백지조(松柏之操)라고도 한다.

    지조를 의미하는 이러한 한자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論語) ' 에서 유래합니다.

    논어는 말(語)을 논(論)했다는 뜻입니다.

    언어는 독백(言)과 대화(語)로 나눕니다. 언은 갑골문에서 쥘손이 있는 날붙이를 의미하는 신(辛)과 입(口)합한 회의문자다.

    죄 받을 것을 전제한 맹세이지요. 그러니 말은 언제나 신중하지 않으면 벌을 받지요.

    언(言)과 오(吾)를 합한 어(語)는 번갈아 말한다는 뜻입니다. 오(吾)는 서로를 의미하는 호(互)와 같은 뜻입니다.

 

                                           

" 나무 아래에서 " 이인상,1754년, 종이에 먹,80 * 40 cm, 평양조선박물관 소장.  이인상은 소나무의 지조와 기백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松  .  소나무 송.

      더 알아두기.

   . 반송 (盤松) :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뻗어서 퍼진 소나무.

   . 백사청송 (白砂靑松) : 흰 모래톱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

   . 경송 (勁松) : 서리나 눈에도 시들어 죽지않는 강한 소나무. 정신에 비유.

   . 취송 (翠松) : 짙푸른 소나무.

 

      > 강 판권 지음 .  나무열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