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기상현상을 1년에 몇 번씩 겪는 세상이 됐다.
정초인 1월4일 서울에는 73년 만에 가장 많은 25.8㎝의 눈이 내렸다. 드물게 쌀쌀한 봄을 보낸 뒤엔 폭염과 잦은 비로 얼룩진 여름이 찾아왔다. 장마철이 끝난 8월~9월24일 사이에는 1주일에 네댓새꼴인 36일 동안 비가 왔다. 190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수량도 역대 2위의 기록이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일대를 물바다로 만든 한가위 폭우도 서울의 9월 하순 하루 강수량과 1시간 강수량 관측기록을 갈아치웠다. 올겨울 날씨가 벌써 걱정스러울 정도다.
올해만의 현상도 아니다. 기상청의 분석을 보면, 연평균 강수량은 1970년대에 견줘 2000년대에 12%나 늘었고 집중호우 발생은 1.7배 증가했다. 이처럼 변덕스러워진 날씨의 원인을 캐들어가면 결국 기후변화에 닿는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건 불확실성 때문이다. 여태까지 쌓아온 경험과 준비가 한순간에 쓸모없어진다. 이상기상은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의 시간감각을 배반할 뿐 아니라, 과거의 데이터를 근거로 만든 하수도·제방 등 홍수방지시설을 비웃는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비하려고 서두른다는 4대강 사업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강에 일련의 거대한 보를 세워, 물을 미리 담아둬야 하는 가뭄 대비와 미리 비워야 하는 홍수 대책 모두에 쓰겠다는 발상은 세계 어디서도 실제로 적용한 적이 없다.
정부는 우리의 아이티(IT) 기술로 해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첨단기술로 자연을 제압하겠다는 오만이 기후변화 시대에도 먹힐지는 의문이다.
운영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 다목적댐도 기후변화 앞에선 운에 기댄다. 2006년 7월17일 500년 빈도의 기록적 폭우가 충주댐 유역에 내렸을 때 충주댐이 넘치거나 여주와 서울이 물에 잠기지 않았던 것은, 댐을 기준 수위 아래로 미리 비워 놓았고 비구름이 더 머물지 않고 남하했기 때문이었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당시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만일 4대강의 보가 모두 완공된 뒤 수자원 확보를 위해 보마다 물을 가득 채워 놓았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거나, 높이 10여m에 너비 40m가 넘는 보의 철제 갑문이 이상홍수 때 작동을 하지 않는 사고가 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찔하다.
4대강 공사 현장을 둘러본 일본의 원로 하천전문가인 이마모토 히로타케 교토대 명예교수도 “상상을 초월하는 홍수 앞에서 낙동강의 보 9기를 연동해서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면 보는 수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수로 떠내려온 나무로 수문이 고장나거나, 몇 개의 수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여파가 낙동강 전체로 확산되는 최악의 사태를 경고했다.
가끔 천재가 닥치던 낙동강은 이제 엄청난 인재가 잠복한 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빈발하는 이상기상, 4대강은 무사할까
»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대규모 준설도 불확실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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