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재협상"은 2MB짜리 꼼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명박씨는 11월 15일 "국회가 한미FTA를 비준 동의하면서 정부에 양국 정부가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재협상하도록 권유하면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설득하겠다"고 했고 "야당에서는 왜 오바마 미국 대통령만 믿나, 한국 대통령을 믿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게 하라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변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여당과 야당에서 "대승적 해결책"이라느니 "미흡하다"느니 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담고 있는 세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며 ISD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씨의 발언을 접하면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 옳고 그른지 하는 느낌이 든다. 몇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첫째, 국회에서 협정을 비준하면 효과가 발생하는데, 나중에 "재협상"을 하겠다는 말이 궤변처럼 들린다. 협정문에 재협상에 관한 조항이 있다 해도 그것은 재협상이 아니라 새로운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초기치(baseline)는 비준된 자유무역협정이기 때문에 현재 협정이 한국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면 새로운 협상에서 한국이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는 없다. 미국이 질질 끌며 몇년을 버텨도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둘째, 지금 상태에서는 국회(야당)에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 뻔한데 그렇다면 지금 재협상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단 비준부터 해달라는 소리는 꼼수일 뿐이다. 예컨대, 비준이 끝나면 무슨 수를 쓰든 국회에서 재협상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에서 야당의원들 하나하나 의장석에서 끌어내리거나 적당히 야당의원들 뒷조사해서 겁을 주면 되는 일이다. 신문방송을 이미 장악했으니 걱정할 일이 무엇인가. (그도 안되면 박정희가 그랬듯이 장갑차를 동원하면 될 일 아닌가. 이미 "명박산성" 전문가를 측근에 앉혔으니 무서울 것이 무엇인가 말이다) 자기가 그렇다고 하여 국민들도 2MB짜리인 줄로 믿고 사탕발림으로 꼬시려는 유치찬란함이다.
세째, ISD재협상은 소송제도에 관한 협상이지 협정전반에 관한 것이 아니다. 협정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ISD재협상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판단기준인 협정문이 잘못되었다면 소송을 어디서 하든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째,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한국의 입장이다. 일단 협정이 발효가 되면 개정되기 전까지 효과가 유지되는데 미국에게 유리한 협정이라면 순순히 재협상 요구에 응할 까닭이 없다. 대체 왜 미국이 한국을 위해 그리 친절한 배려를 해야 한단 말인가? 혈맹이어서? 그런 혈맹이 걸핏하면 여자들 폭행하고 도망가는 자기 군인을 보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혈맹은 이명박씨의 생각일 뿐이다. 미국이 재협상에 응한다면 그것은 현재 협정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아니면 한국의 위협이 심각하기--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얘기지만)때문일 것이다.
다섯째,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했고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설득하겠다고 했다. 미국에 대해 당당했던 노무현씨라면 모를까 미국에 가서 부시를 위해 카트나 운전해주고 32개월된 몬타나산 스테이크를 먹겠다며 기염을 토한 이명박씨가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니 참으로 그 "용맹스러움"이 대견할 뿐이다. 게다가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설득하겠다고 한다. 촛불집회에 나온 초등학생 중학생도 설득못하는 자가 말로는 노무현씨 뺨을 칠만한 오바마를 설득하겠다니 말이 되는가.(그의 연설이 맥케인의 연설을 압도하였다) 하물며 영어는 커녕 한글도 틀려서 매번 비난을 자초하는 위인이라니... 측근이라는 자들은 돈주고 영어연설문을 작성해야 할 만큼 생각이 없는 자들이니 도대체 무슨 수로 설득을 하겠다는 것인가. 귀엽게 "아잉..."이라며 한참 어린 오바마 앞에서 뗑깡이라도 놓을 참인가?
여섯째,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책임을 말하는가? 협정이 발효되고 그것이 한국에 매우 불리하게 되어 있음을 깨달으려면 (실제 그렇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는 이미 이명박씨는 퇴임을 했을 것이다. 그때 가서 이명박씨는 무슨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노무현씨처럼 어디 인왕산에라도 올라 투신이라도 할 각오인가?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볼 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한마디로 "먹튀"를 하겠다는 소리고 그 때 가서는 별의별 핑계를 대면서 입을 씻을 작정이다.
일곱째, 왜 오바마를 믿고 한국 대통령은 믿지 않느냐고 강변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지금까지 이명박씨가 신뢰를 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이 무엇인가? 세종시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원안대로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촛불시위로 많이 반성을 했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뒤통수였지 않은가. 노무현씨에게 약속했던 개헌은 지금 대체 어디도 들어갔단 말인가. (그때 약속했던 인간들 칼을 물고 죽을 일이다) 참으로 염치도 없는 소리다. 도대체 국가간 협상에서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오직 협상 대상자 간에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뿐이다.
여덟째,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협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미국체제로 보면 이해당사자들끼리 치열한 조사와 분석을 거쳐 협정안을 내세웠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미국에서도 갈등은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니까 흔쾌히 통과시켜준 것 아닌가--이것은 현재 협정이 한국에게 불리하다는 추론을 가능케한다) 그런데 한국은 소수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협정을 이끌면서 반대와 이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억압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좋은 협상이라고 믿으라 했다.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자를 잡아들인다거나 협박하는 짓거리가 벌어졌다. 천안함 사건과 똑같다. 합리적이나 아니냐가 아니라 믿냐 안믿냐이다(협정이 무슨 예수믿는 것도 아니고...). 악성루머의 진원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씨와 엉터리 협정을 강행한 "종미(從米)주의자"들이다.
결국 절차정당성에 큰 흠결을 안고 있는 협정이다. 이해당사자들끼리 협의하여 동의한 것이라면 모를까 일부가 주도하여 다른 당사자들을 제껴두고 맺은 협정이라면 그 자체로 무효다. 하물며 국가간 협정을 잘못 번역한 것이 수두룩한 그런 협정을 어찌 멀쩡한 협정이라 하겠는가. 그러니 나라의 주인인 시민사회가 지금의 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씨는 "나라를 위해 생각해달라. 민족과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부끄럽지 않도록 해달라"며 당부했다고 한다.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그토록 나라가 걱정되었다면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믿는 세종시원안이 확정되었을 때 국민들에게 엎드려 끝까지 호소했어야 했다.(그는 단지 입을 싹 씻고 언제 그랬냐며 무덤덤했지 않은가... 결국 애초부터 국가와 민족과는 전혀 관계없는 소리였다) 박정희도 허구헌날 나라가 어쩌구 민족이 어쩌구 하면서 결국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였다. 도대체가 왜 협정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어찌하여 민족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협정인지를 밝혀야 할 것 아닌가? 아마도 강제한일합병 때도 매국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랬다고 강변했을 것이다. 왜 나라와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최근에 죽은 카다피도 죽는 순간까지도 나라가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 것 아닌가? 하긴 자신이 국가고 왕이라고 믿는 넘덜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이 앞선다. 왜 한국이 미국에게 도도하게 굴면 안되는가? 왜 지금 다시 협상을 하자고 말하면 안되는가. 나라와 민족을 말하면서 왜 오바마의 심기를 거슬르는 것을 그리 싫어하는가. 오바마한테는 무례하면 안되고 주인인 국민한테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은 된다는 소린가? 그러니 매국노니 종미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일부 광신도들이 그랬듯이 부시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내야 한다는 자들이니 어찌 감히 오바마 앞에서 고개나 처들겠는가. 하물며 재협상을 요구한다거나 설득하려 대드는 불경스러움임에랴....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여 협정에 임하고, 왜 그 협정이 이익에 되고 손해가 되는지 하나하나 따져서 설명해주고, 그런 국민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협정을 맺고 비준을 요구하는 그런 대통령을 바라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단 말인가. 양국이 흔쾌히는 아니어도 대체로 받아들일 만한 협상을 할 수는 없는가? 하긴 대통령짓을 하라고 자리를 내줬더니 정치인이 아니라 사장이라고 불러달라며 너스레를 떠는 장사치에게서 우리는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2MB용량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오늘 비로소 깨닫는다.
2011. 11. 15
(오 마이뉴스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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