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김종익은 민간인" ... 총리실은 알고 있었다

道雨 2012. 4. 5. 13:10

 

 

"김종익은 민간인"...총리실은 알고 있었다
'버럭 비서관' 이영호, 뻔뻔한 거짓말 '들통'
[단독] '2008년도 공공기관 문건'과 검찰의 '수사보고서'에서 드러나
12.04.05 08:49 ㅣ최종 업데이트 12.04.05 09:28  구영식 (ysku)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해명하고 있다.
ⓒ 유성호
 이영호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지난 3월 20일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언론에서 집중 보도되고 있는 소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2008년 9월경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국민은행 자회사인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의 개인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종익씨를 공기업 자회사 임원으로 오인하여 우발적으로 빚어진 사건입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공기업 자회사 임원'으로 잘못 알고 사찰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KB국민은행을 '공기업'으로 판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국무총리실 차장을 지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원관실을 새로 만들면서 새로운 인원들로 채웠는데 그런 부분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라며 "그러다 보니 국민은행이 공기업인 줄 알고 의심의 여지 없이 조사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지원관실의 '2008년도 공공기관' 문건과 검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처음부터 국민은행이 공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익 사찰'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진행한 민간인 불법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검찰 "국민은행=국책은행으로 알았다는 것은 거짓말"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발견된 '2008년도 공공기관' 자료. 하지만 여기에는 '공기업'이라던 KB국민은행은 없었다.
ⓒ 오마이뉴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 2010년 7월 9일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들이 삭제된 후라서 '뒷북 압수수색'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검찰은 이날 의미 있는 자료를 입수했다. '2008년도 공공기관'이라는 1쪽짜리 문건이다.

 

'2008년도 공공기관' 문건은 김충곤 전 점검1팀장의 책상에서 발견됐다. 김 전 팀장은 경찰청 보안3과 출신으로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점검1팀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 문건은 305개 공공기관을 시장형 공기업(6곳)과 준시장형 공기업(18곳), 기금관리형(14곳), 위탁집행형(63곳), 기타 공공기관(204곳)으로 분류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직후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서 "2008년 7월 28일 직후 작성된 자료"라며 "지원관실 소속 직원들에게 배포하여 업무범위를 숙지시켰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즉 지원관실이 폐지 5개월 만에 부활된 직후 직원들에게 '감찰활동 대상'을 숙지시키기 위해 작성된 자료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2008년도 공공기관' 문건에는 KB국민은행이 없었다. 지난 1963년 국책은행으로 출발했다가 지난 1995년 '국민은행법'의 폐지로 국민은행이 민영화됐기 때문에 공기업으로 분류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검찰이 지난 2010년 7월 9일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 이후 작성한 '수사보고서.
ⓒ 오마이뉴스
 김종익

검찰도 수사 보고서에서 "따라서 피의자들이 국무총리실 조사에서 국민은행을 국책은행으로 알고 업무 범위에 포함된 것으로 인식하였다는 취지의 변명은 모두 거짓말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2008년도 공공기관'이라는 문건에 의하면 피의자들은 국민은행이 업무범위에 포함되지 않음을 처음부터 인식하였으므로 ㈜KB한마음을 국민은행 자회사로 보았다 하더라도, 이는 민간업체임을 명확히 인식하였다 할 것이므로 김종익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민간인임을 인식하고서도 의도적인 조사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음."

 

지원관실이 김종익 전 대표가 민간인임을 알고도 조사활동을 벌였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민간인이 지원관실 점검대상이 아님을 출범 초기부터 명확히 인식하였다"고 덧붙였다. 결국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김종익 전 대표를 사찰한 데는 이광재 전 의원 정치자금 제공, 촛불집회 자금지원 등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작은 'VIP 비방 동영상'이었다지만 진짜 사찰 목적은?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간인불법사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각계 인사 시국선언'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민간인불법사찰

지원관실은 지난 2008년 7월 설치 직후부터 김종익 전 대표를 내사하기 시작했다. 내사의 출발점은 공기업 자회사 임원이 이명박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이후 김충곤 점검1팀장 등이 국민은행 부행장 등을 만나고, KB한마음에 찾아가 회계자료 등을 압수해갔다.

 

하지만 곧 내사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부터 이광재 전 의원 정치자금 제공과 촛불집회 자금지원 등의 의혹을 조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혹들이 확인되지 않자 결국 11월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동작경찰서는 지난 2009년 2월 무혐의로 내사종결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담당 수사관을 교체한 뒤 다시 명예훼손 혐의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같은 재수사에는 지원관실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김 전 대표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지만, 김 전 대표는 이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지원관실이 표적내사를 벌인 데 이어 검찰도 표적수사에 합류했다. 검찰은 10개월간의 먼지털이식 수사를 통해 지난 2011년 5월 김 전 대표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1억1500만여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8000여만 원의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8000여만 원 가운데 2000만 원에만 횡령 혐의를 적용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대부분이 회사 직원들의 경조사비나 명절선물비 등 회사를 위해 사용됐고 자금 관리도 다른 사람이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범죄사실이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며 6000여만 원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원관실은 '쟁점사항'이라는 문건에서 "민간인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제보를 받아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확인 결과 민간인의 법 위반 사실이 있어 경찰로 이첩했다"면서도 "다만 확인과정에서 너무 깊게 들어간 느낌은 든다"고 밝혔다.

 

전직 조사관도 "국민은행=공기업? 이해할 수 없다"

지원관실 점검1팀에서 근무한 김화기 전 조사관도 공공기관 자회사로 알고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내사한 것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전 조사관은 지난 2010년 7월 12일 검찰조사에서 "(KB국민은행은) 오래 전에 민영화된 것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공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직책도 높은 분들이 KB국민은행을 공공기관으로 착각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조사관은 "KB한마음에서 감사보고서 등 자료를 가지고 왔다는 내용이 보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자료를 보았다면 KB한마음이 국민은행의 자회사인지, 개인기업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검사가 "김충곤이나 원충연도 KB국민은행과 KB한마음이 민간회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 것임에도 왜 KB한마음을 조사한 것인가?"라고 묻자, 김 전 조사관은 "당시에는 아마 KB한마음이 산업은행이나 한국은행 등의 공공기관과 부패고리가 있어서 조사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김 전 조사관은 "그런데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KB국민은행이 국책은행이라거나 공공기관이라고 알았고, 그래서 KB한마음도 공공기관의 자회사로 알고서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저도 믿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포항 영일출신인 김 전 조사관은 동지상고와 경북실업전문대를 졸업한 뒤 경찰에 들어와 주로 치안과 수사업무를 맡아왔다. 지난 2008년 9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지원관실 점검1팀에서 근무했다. 그는 김충곤 전 1팀장 등과 심한 갈등을 겪다가 서초경찰서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