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수입중단이나 검역중단과 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서둘러 조처를 취하면 통상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미국 정부가 광우병 발생 사실을 발표한 것보다 더 확실한 정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 정부가 지금 말하는 것을 보면, ‘충분한 정보’라는 게 광우병 발생 소가 한국이 수입하지 않고 있는 30살 이상이라는 점, 동물성 사료에 의한 발병이 아니라는 점, 육우가 아닌 젖소라는 점 등의 내용이 될 게 뻔하다. 정부의 정보 요청 및 검역 강화 방침은 미국의 일방적인 설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벌기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엔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자 즉각 수입을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5월 수입위생조건 추가협상을 통해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단을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를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당당하게 발표한 사람이 바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종훈(새누리당 소속 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당선자)씨다. 이어 같은 해 9월엔 국회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 광우병 발생 시 검역중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검역이든 수입이든 당장 중단 조처를 취하는 게 맞다. ‘선 중단, 후 안전 확인’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건 미국과 ‘대국민 사기’ 협상을 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공개된 비밀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2008년 5월 우리 정부의 대국민 광고에 대해 “광우병 발생 시 즉시 수입중단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런데도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굴욕 협상-거짓 발표’를 했다면 국민을 두 번 속인 ‘나쁜 정부’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 2012. 4. 27 한겨레 사설 ]
‘광우병 대국민 약속’ 팽개친 이유 있었다
(최석영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
"공개적인 대응은 하지 않겠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정부의 공고문은 수용하기 어렵다."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
2008년 5월8일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담화문을 발표하고 정부가 일간지에 공고문을 낸 직후 최석영 공사(현 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가 커틀러 대표보와 나눈 대화다.
26일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우리 외교통상부와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을 종합해 보면, 최 공사는 미국 워싱턴에서 커틀러 대표보를 만나 한 총리가 담화문을 발표하게 된 국내 상황을 설명한 뒤 미국 쪽의 양해를 구하고 담화문에 대해 공개적 반박은 자제해주길 요청했다.
한 총리는 담화문에서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중단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농림수산식품부·보건복지부도 합동공고문을 발표하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광고를 8일치 주요 일간지에 냈다.
최 공사의 요청에 커틀러 대표보는 '미국 측으로서는 총리 담화문 문구는 수용 가능하지만, 농식품부와 복지부의 합동공고문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는 즉각적 조처를 하지 못하며, 과학적 근거 등 전제가 충족될 때만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미국 쪽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서울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즉각 수입 중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표가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으면 안 되느냐"고 묻자,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더라도 문제의 소가 쇠고기로 유통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수입을 중단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두 나라가 쇠고기 추가협상을 하고 5월19일 서한을 교환할 때도 커틀러 대표보는 최 공사를 불러 '광우병 발생 시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국에) 전달돼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6월 보도자료를 내어 "광우병이 추가확인 될 경우 일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조처 한다"고 명시했다. '미국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리고는 거짓말까지 한 셈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네번째로 발생한 지난 25일 여인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이 "곧바로 검역을 중단할 경우 통상 마찰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좀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조처를 취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정부는 2008년 8월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긴급한 조처가 필요한 경우 수입 중단 등을 취할 수 있다'라고 정부 재량권을 넣는 방식으로 '미국과 한 약속'을 교묘하게 집어넣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2008년 정부 광고(공고문)도 같은 해 8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법의 수위를 낮췄고, 광고문안이 짧아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측면도 있는 까닭에 정부가 약속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은주 안창현 기자ejung@hani.co.kr
미 쇠고기 '수입계속'은 매국 ... 국민에게 사기쳤다
'광우병 전문가',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 |||||||||||||||||||||||||
'뉴스자료, 기사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시장 박원순’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0) | 2012.04.27 |
---|---|
직장경력 3년차 ‘MB 아들’ 이시형 재산은 얼마? (0) | 2012.04.27 |
못말리는 맥쿼리…남산타워도 꿀꺽? (0) | 2012.04.26 |
‘검역주권 포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0) | 2012.04.26 |
검찰 집중포화 ... MB 임기말이 왔다 (0) | 2012.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