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요란할 뿐 ‘해피아’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검찰이 6일 해피아 수사와 관련해 43명을 기소하고 18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선박안전기술공단 임직원들이다. 공무원과 해경은 해수부 감사실 소속 1명, 과적 선박을 눈감아 준 해경 경정, 해운조합 압수수색 사실을 미리 알려준 해경 국장 등 몇 명에 불과하다.
해피아 커넥션의 한 축, 한국해양구조협회
세월호 민간 구조를 총괄한 (주)언딘과 해경의 유착 의혹 그 한복판에 해구협이 있다. 언딘이 민간구조 독점업체로 선정되도록 연결 고리 역할을 한 게 해구협이라는 의혹이 짙다. 언딘 대표이사가 해구협 부총재이고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과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도 부총재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해운구조협회(이하 해구협)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해구협과 해경과의 커넥션은 견고하다. 해경 출신 6명이 해구협으로부터 연봉을 받는다. 협회가 신설(2013년) 되자마자 퇴직 해경 간부의 재취업 창구 역할을 해왔다. 꼬박꼬박 출근하지 않고도 많게는 연 6천만원에서 적게는 1천8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길을 해구협이 열어준 셈이다.
해구협 신설 근거는 2012년 11월에 재개정된 수난구조법. 새누리당의 발의로 법안이 통과되자 해경이 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민관 협력 수난구조 체계를 만들겠다면서도 협회 임원을 해경 출신과 해운관련 업체와 협회 대표들로 채웠다. 기존의 다양한 구조단체들 대부분이 배제된 것이다. 출발부터 이익단체 성격이 강했다.
국회와도 커넥션 의혹이 있다. 해구협 고문인 주영순, 강창일 의원이 한국선주협의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바다와 경제 국회포럼’ 회원이고, 현재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이 이 포럼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한국선주협회는 선박회사 대표들이 만든 이익단체로 이 포럼을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이 주선하고 선주협회가 지원한 해외 투어에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함께 한 바 있다.
해구협 은폐 급급, 홈피 폐쇄 후 논란 부분 모두 삭제
세월호 참사로 해구협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자 지난 4월 말 해구협은 협회 홈페이지를 일시 폐쇄했다. 무엇 때문에 홈페이지까지 차단시켰을까. 최근 다시 시도해 보니 원활하게 접속됐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논란이 됐던 부분은 죄다 삭제된 상태다.
우선 조직도. 총재단 등 이사진 이름과 소속이 상세히 공개됐던 패쇄 전과는 달리 재개된 홈페이지에는 명단을 찾아 볼 수 없다. 조직도만 달랑 올려놓았을 뿐이다. 언딘과 해경과의 유착 의혹이 명단을 통해 확산됐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유출된 명단이다. 가린다고 가려지겠나.
연회비도 항목도 사라졌다. 해난 구조 봉사단체 성격이 강한 비영리법인이 연회비를 1000만원까지 받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여론의 질타 때문일까. ‘단체회원 연회비 200만원 이상, 특별회원 연회비 1000만원 이상’이라고 명기돼 있던 연회비 칸을 아예 없애버렸다. 논란이 될 만한 건 공개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황당한 수입 지출 내역, 엿가락처럼 늘렸다 줄였다
수입 지출 내역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홈피 일시 폐쇄 전과 재개 후가 아예 딴판이다. 홈피 폐쇄 전(4.30) ‘공시란’에 올라있던 2013년 수입은 총 20억3649만원. 하지만 재개된 홈피에는 31억8324만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차액은 무려 11억5천만원.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법에 의해 만들어진 법인인데 간단한 회계조차 이렇게 엉터리라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폐쇄 전에는 ‘기본자산출연금’을 11억315만원이라고 밝혔다가 재개된 홈피에는 5억원으로 줄여 놓았다. 반면 5억9673만원이었던 ‘회비수입’은 7억114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정부보조금 사업’ 항목은 사라지고 대신 ‘공공 공모사업’ 항목이 신설됐다. 또 폐쇄 전에 없었던 ‘기본자산전기이월금’ 항목(7억4034만원)이 새롭게 등장했다.
무슨 이유에서 수입을 크게 줄여 공시해야 했을까. 왜 수입을 11억5천만 원이나 늘려 홈피에 다시 올렸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지출내역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홈피 폐쇄 전 해구협이 ‘공시란’을 통해 밝힌 지출(2013년) 총액은 12억9615만원. 수입부(20억3649만원)와 지출부가 맞지도 않는다. 재개된 홈피에는 31억8324만원으로 수입부와 맞춰 놓았다.
내역도 엉망이다. 4억5733만원이었던 ‘지부영달금’(지부 인건비와 운영비?) 항목이 사라지고 ‘조직관리비’(10억1965만원)라는 항목이 등장했다. ‘정부보조금 사업비’ ‘안전부표 사업비’ 등이 ‘사업비’라는 항목으로 뭉뚱그려졌다. 하지만 수치는 맞지 않는다. 홈피 폐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기본자산적립금’(5억원) 항목이 재개된 홈피 ‘공시란’에 올라 있다.
대통령령에 의해 운영·감독되는 법인이 이 모양? 해체가 답
어처구니없다. 언딘, 해경과의 유착 의혹보다 더 수상한 게 해구협의 운영실태다. 법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가 이 모양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런 단체가 해경과 언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세월호 구조작업이 진행됐으니 ‘구조 0명’이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해구협을 태동시킨 근거인 수난구호법 제4장(한국해양구조협회) 제26조의 일부다.
③ 협회의 정관 기재사항과 운영 및 감독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협회에 관하여 이 법에서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가운데 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대통령령에 의해 운영되고 감독 받는 해양구조 특수법인인데 국민의 눈에는 ‘해피아의 온상’으로 보인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해구협을 통해 그대로 읽힌다.